※편집자 주. 미국 음악 잡지 ‘롤링스톤’을 표방하는 롤링수(數)톤. 롤링수톤에서는 음악 이야기뿐 아니라 음악 속에 숨겨진 수학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습니다. QR코드를 찍어 음악을 들으며 읽으면 더 재밌을지도~!
2018년 새해가 밝았다며 새해 계획을 세운 게 엊그제 같습니다. 폭염으로 땀을 뻘뻘 흘리던 여름도 며칠 전 같은데, 칼날처럼 찬바람이 쌩쌩 부는 추운 겨울이 왔네요. 우리는 한 해의 끝 무렵을 연말이라고 부릅니다. 연말이 되면 올해 열심히 노래한 가수들이 콘서트를 열어 해를 마무리하지요. 연말 분위기 물씬 느끼게 해줄 멋진 가수를 초대했습니다.
‘아모르파티! 삐요옹 뿅뿅 뿅뿅뿅 삐요요용 삐용뿅 삐용용 삐요요용’
경쾌한 트로트 리듬에 강력한 전자음악(EDM)을 얹어 앉은 자리에서도 엉덩이가 절로 들썩이게 만드는 마성의 음악이 있습니다. 트로트 가수 김연자의 ‘아모르파티’입니다. 본래 중년층을 대상으로 발매된 트로트 곡이었지요.
그러던 2017년, 화려한 옷을 입은 한 중년 가수가 무대를 장악해 버립니다. 이 가수의 손짓 하나하나에 넋을 잃고 무아지경으로 온몸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대학생들이었습니다. 이날 대학교 축제에서 찍힌 영상은 여기저기로 퍼져나갔고, 아모르파티는 ‘한 번도 안 들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들은 사람은 없는 노래’로 유명해집니다.
이후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흥을 돋우기 위한 단골 음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렇게 이 노래는 20대의 마음을 사로잡더니 급기야는 10대들에게까지 전파됩니다. 지난 11월 15일 음악 플랫폼 기업 ‘지니 뮤직’은 10대를 대상으로 ‘시험 앞두고 피해야 하는 중독성 강한 노래’를 조사했는데, 각종 아이돌 곡을 제치고 아모르파티가 당당히 1위로 뽑혔습니다.
어른들의 음악으로 여겼던 트로트에 요즘 세대들의 음악인 전자음악이 가미됐으니, 그 자체로 특이하며 곡을 향유할 연령층을 넓히기에 충분했습니다. 여기에 가수 김연자의 탄탄한 가창력과 무대매너로 세대를 가리지 않고 음악을 들은 모두를 팬으로 흡수해 버립니다. 인생을 꿰뚫어 보는듯한 가사는 곡이 히트하는 데 화룡정점을 찍었지요.
가수 김연자는 ‘천하장사 만~만~세에~’로 시작하는 ‘씨름의 노래’와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울려 퍼진 곡이자,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삽입된 곡으로 알려진 ‘아침의 나라에서’를 부른 가수로 이미 실력으로는 흠잡을 수 없는 가수입니다.
자신에게 실망 하지 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파티♪
심오한 뜻의 아모르파티
아모르파티는 라틴어 ‘사랑(AMOR)’과 ‘운명(FATI)’을 합친 말로 직역하자면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망치를 든 철학자’라는 별명의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사용하면서 유명해졌지요. 니체는 자신의 글 ‘즐거운 지식’에서 이 말을 쓰며 삶에 대한 태도를 표현했습니다. 고통과 상실을 포함해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긍정적이고 선한 마음으로 바라보라는 것이지요.
그저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주어진 운명을 감수하고 살아가는 데 그치지 말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긍정적으로 살아가라는 거지요. 니체 철학의 핵심인 ‘영원 회귀’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니체는 인생은 마치 카세트테이프처럼 반복돼 돌아간다는 주장했습니다.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매 순간순간이 반복돼 돌아간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자신의 삶에 대해 만족하고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영원 회귀는 니체가 쓰면서 유명해졌지만 오래 전부터 있던 관념입니다. 인도의 종교나 고대 이집트 문화에서 이미 발견됐고, 이후 기원전 6세기 피타고라스학파에서도 다루던 것으로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꾸준히 관심을 가졌습니다. 사전적으로는 우주의 모든 존재가 반복되고 계속 자기와 유사한 형태로 반복 된다는 뜻입니다.
니체가 푸앵카레를 만났을 때?
다시 니체가 살던 19세기 말로 다시 돌아올게요. 1889년 1월 21일은 당시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국왕이었던 오스카르 2세의 60번째 생일이었습니다. 오스카르 2세는 노벨 수학상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국왕입니다. 과학, 특히 수학에 후한 지원자였던 오스카르 2세는 자신의 생일을 맞아 사람들에게 두루 기억에 남을 행사를 고민하다 국제수학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전세계 학자들을 대상으로 수학 분야에 4가지 문제를 냈습니다. 그중 하나는 ‘태양계의 행성들은 서로 잡아당기면서 공전하는데 과연 태양계는 영원히 안정적인 궤도로 도는가?’에 대한 문제로 태양계의 운명을 다루는 내용이었습니다.
프랑스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는 ‘3체문제’의 일반해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우승 상금을 손에 넣었습니다. 3체문제는 세 행성 간의 중력이 어떻게 작용하고, 그 결과 어떤 궤도로 움직이는지를 다루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뉴턴 시대 이후로 수학자를 사로잡습니다.
하지만 이 논문에는 출판 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오류가 있어 푸앵카레가 대회 상금을 재출판하는 비용으로 써버리는 해프닝도 발생했습니다.
이때 푸앵카레가 떠올린 또 다른 수학 정리가 ‘푸앵카레 재귀정리’입니다. 수학적으로 특정한 조건이 주어진 공간에서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거의 모든 점에서 초기상태로 무한히 계속해서 돌아간다는 내용의 정리이지요.
즉 푸앵카레는 전체 크기가 유한한 공간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공간에서 변환을 여러 번 시행했을 때 어떤 집합에서 출발해 결국에는 처음 상태로 돌아올 확률이 1이라고 증명했습니다. 그러니 만약 당시 푸앵카레가 니체를 만났다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시간은 무한하고, 우주가 유한하면 당신의 말은 확률 1로 옳습니다.”
물론 엄밀하게 말하자면 수학적인 조건이 더 필요하겠지만요. 어찌됐든 우리 모두 아모르파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