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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과 수학의 필연적 만남

‘데구르르~.’


집안 어디선가 굴러다니는 연필. 세련된 샤프와 볼펜에 비하면 볼품없지만, 수학 문제를 풀 때 이만한 필기구가 없다. 게다가 얇고 긴 몸통 곳곳에 수학이 숨어있다고 하는데 과연 수학과 연필은 어떤 관계일까?

 

 

세련된 샤프와 볼펜에 비하면 연필은 왠지 촌스러운 구식 필기구 같아요. 값도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잃어버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요. 그런데 연필은 샤프, 볼펜, 홀더, 전자펜 같은 필기구에 밀리지 않고 대략 500년 동안 명맥을 유지한 베테랑 필기구입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연필의 가장 큰 장점은 저렴하고 튼튼하며 쉽게 쓰고 지울 수 있다는 겁니다. 가끔은 의도하지 않게 번지거나 지워지기도 하지만, 수학 문제를 풀 때처럼 지울 일이 많은 상황에 적합하지요. 게다가 연필심의 종류도 많아서 취향에 맞게 골라 쓸 수도 있고, 연필로 글자를 쓸 때 들리는 ‘사각사각’ 소리는 기분도 좋게 만들어 줍니다. 과학적으로 밝혀지진 않았지만, 이 소리를 들으면 심리적으로 안정되거나 기분이 좋아진다고 해요.

 

1938년, ‘뉴욕 타임스’에는 타자기가 손으로 쓰는 필기구인 펜과 연필을 몰아낼 것이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타자기는 빠르고 편리하게 글자를 쓸 수 있어서 더 이상 펜과 연필이 필요 없다고 예측했지요. 그럼에도 연필은 여전히 전 세계에서 연간 100억 자루가 넘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연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까요?

 

 

내게 맞는 등급을 찾아라


붕어빵의 핵심이 팥이라면, 연필의 핵심은 흑연과 점토를 섞어만든 ‘연필심’이에요. 누가 최초로 흑연을 사용해 연필심을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처음 사용한 사람은 스위스의 내과의 사이자 자연학자였던 콘라트 게스너입니다. 평소 필기구에 관심이 많았던 게스너는 1565년에 발간한 화석에 관한 책에서 흑연을 나무로 둘러싼 필기구를 그렸는데, 그것이 요즘 사용하는 흑연 연필의 시초입니다.

 

점토보다 흑연의 비율이 크면 연필심이 진하면서 부드럽고, 작으면 연하면서 딱딱합니다. 연필에 적힌 ‘등급’은 연필심의 진하기와 딱딱한 정도를 나타내는데, 보통 그림을 그릴 때 쓰는 스케치용 연필은 딱딱하다(Hard)는 뜻의 H와 검다(Black)는 뜻의 B, 견고하다(Firm)는 뜻의 F와 숫자를 조합해 등급을 표시하고, 글씨를 쓸 때 사용하는 필기용 연필은 숫자로만 표시해요.

 

 

 

육각형 연필이 최고인 이유


요즘 연필은 대부분 단면이 원인 연필심과 단면이 육각형인 나무 몸통으로 만들지만, 처음에는 연필심과 몸통을 자르기 쉽게 사각형으로 만들었어요. 그러나 사각형 연필은 손에 쥐고 쓰기 불편했기 때문에 연필심은 둥글게, 몸통은 원이나 팔각형으로 만들기 시작했지요.

 

19세기에 연필을 주로 사용했던 공학자나 설계사, 목수들은 연필을 오래 쥐어도 손이 아프지 않으면서 책상이나 경사진 설계판에 놓아도 굴러 떨어지지 않는 연필을 원했어요. 그래서 만든 삼각형 연필은 잘 굴러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엄지, 검지, 중지 세 손가락으로 쥐기에 딱 맞는 모양이었지만, 만들 때 낭비하는 나무가 많았어요. 그래서 굴러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쥐기에 편한 육각형 모양의 연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에도 육각형 연필이 대부분이지만, 용도에 따라 원, 삼각형, 사각형 연필을 만들기도 합니다. 삼각형 연필은 연필을 처음 잡아보는 어린이가 쥐기 편하고, 사각형 연필은 굵은 선을 그리기 쉽고 책상에서 잘 굴러 떨어지지 않아서 목수들이 주로 사용하지요.

 

 

 

깎는 것도 입맛 따라!


나무 연필을 쓰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펜나이프’라는 작은 칼을 가지고 다니며 연필을 깎거나 사포를 이용해 연필을 갈아서 썼어요. 칼로 깎으면 솜씨가 좋아도 연필을 매끈한 원뿔 모양으로 깎기 어렵고, 사포를 이용하면 연필심이 울퉁불퉁해져서 글씨를 쓸 때 불편했지요.

 

지금 우리가 쓰는 연필깎이처럼 기울어진 칼날이 회전하며 깎는 방식은 프랑스 수학자 버나드라시몽이 처음 고안했어요. 라시몽은 1828년 최초로 연필깎이의 특허를 냈으나 아쉽게도 상용화 되지는 못했지요. 보통 연필심과 깎인 면이 이루는 각도가 약 20°가 되도록 깎지만, 요즘은 칼날의 각도를 바꿀 수 있어 연필을 원하는 만큼 뾰족하게 깎거나 뭉툭하게 깎을 수 있어요.

 

단, 너무 뭉툭하게 깎으면 종이와 깎인 면이 이루는 각도가 작아져 글씨를 쓰기 힘들고, 너무 뾰족하게 깎으면 연필심이 잘 부러집니다. 글씨를 쓸 때 연필에 작용하는 힘을 수학적으로 분석한 미국의 공학자 도널드 크론퀴스트는 뾰족하게 깎은 연필을 일정한 각도로 기울여 눌렀을 때, 늘 연필심의 깎은 부분의 지름이 연필심 원래 지름의 1/3이 되는 지점에서 부러지고 연필심을 얇고 길게 깎을수록 조그만 힘에도 쉽게 부러진다는 사실을 밝혔어요. 취향은 존중하지만, 과유불급이니 적당한 각도로 깎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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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호 수학동아 정보

  • 김우현 기자(mnchoo@donga.com)
  • 참고자료

    헨리 페트로스키 ‘연필’, 제임스 워드 ‘문구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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