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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CHO의 롤링수톤] 마이클 잭슨의 ‘배드’ 눈으로 보는 음악

 

음악을 듣는 걸로만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텔레비전의 발명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음악을 보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보는 음악의 즐거움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가수가 있습니다. 마이클 잭슨입니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전례 없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미국 최초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지요. 마틴 루터 킹과 말콤엑스를 포함한 수많은 흑인 인권 운동가가 주체적인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저항 운동을 벌이지 않았다면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흑인의 인권을 신장시킨 사람이 있습니다. 가수 마이클 잭슨입니다. 잭슨은 본인이 가진 재능인 노래와 춤으로 인종 대통합, ‘위 아 더 월드’를 만들어 냅니다. 노래로 어떻게 가능했냐고요? 이야기는 잭슨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됩니다.

 

 

잭슨이 바꾼 음악의 패러다임

 

그룹가수 잭슨 파이브로 활동하던 당시 마이클 잭슨의 모습.

 


잭슨은 5살 때 형제들과 함께 ‘잭슨 파이브’라는 그룹으로 데뷔했습니다. 이때부터 남달랐던 음악적 재능으로 마이클 잭슨은 음악가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그룹 활동을 거친 뒤, 잭슨은 솔로로 데뷔합니다.

 

첫 앨범부터 크게 성공합니다. 그러나 잭슨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 뛰어난 앨범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앨범 ‘스릴러’를 만듭니다. 달 위를 걷듯 스르륵 뒤로 미끄러지는 춤 ‘문워크’의 탄생도 이때였지요. 초반에는 그저 미끄러지듯 뒤로 걷는 동작만 했지만, 이후 옆으로 가거나 회전하는 동작을 추가해 대중에게 다양한 모습을 선보입니다.

 

 

스릴러 앨범이 나온 1980년대는 기술도 상당히 발달했던 시기입니다. 이것은 잭슨의 최고 전성 기를 이루는 발판을 만들어줍니다. 덕분에 몸을 30° 가량 기울이는 묘기에 가까운 춤 ‘린’은 특수 장치를 이용한 춤으로 특허를 받기도 했습니다. 잭슨의 춤은 후대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준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국립 무용수 명예의 전당에도 올라갔지요. 창의적인 뮤직비디오는 잭슨을 팝의 황제로 안내하는 레드카펫과 같았습니다. 텔레비전 발명 이후 영상이 중요해지자, 잭슨은 뮤직비디오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영화 제작진과 함께 영화 같은 대규모 뮤직비디오를 제작해 큰 화제가 됐지요. 잭슨은 세련된 곡에 멋진 춤, 화려한 퍼포먼스, 획기적인 뮤직비디오, 그리고 독특한 패션으로 보는 음악의 시대를 열어 버린 것입니다.

 

 

 

인종의 벽을 넘은 팝의 황제

 

그러나 혼자 힘으로는 깰 수 없는 벽이 잭슨을 가로막습니다. 미국 채널 MTV에서 잭슨의 뮤직비디오를 틀지 않았던 것이었지요. 당시 MTV는 백인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만 틀어 사실상 백인 음악 방송과 다름 없었습니다. MTV는 잭슨의 검은 피부색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흑인 가수가 최고 인기를 누리는게 싫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잭슨의 소속사는 잭슨의 뮤직비디오를 틀지 않으면 소속사의 다른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도 제공하지 않겠다고 대응합니다. 잭슨이 속한 기획사에는 유명한 가수가 많아 뮤직비디오를 틀지 않으면 MTV에 막대한 손해였습니다. 결국 MTV는 잭슨의 뮤직비디오를 방송에 내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방송에 나온 뒤 뮤직비디오는 연일 화제가 됐습니다. 동시에 잭슨의 앨범 ‘스릴러’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음반이자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라는 쾌거를 달성합니다. 상업적 성공과 예술적 성공을 한순간에 이룬 것이지요.

 

이 앨범은 흑인이 음악으로 세계를 정복한 상징이 되며, 흑인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실어줬습니다. 당시 암암리에 있던 방송국의 인종차별을 완화시키는 데도 일조했지요. 백인 음악가의 음악만 온종일 송출하던 방송국이 잭슨의 음악과 뮤직비디오만큼은 틀어야 했으니까요.

 

 

잭슨의 또 다른 노력도 있었습니다. 잭슨이 활동하던 당시는 팝의 장르가 세분화돼 세대별로, 인종별로 즐기는 음악이 달랐습니다. 백인은 헤비메탈을 듣고, 흑인은 주로 랩과 펑크★를 들었습니다. 흑인 음악을 기반으로 곡을 만들던 잭슨은 백인도 팬으로 포섭할 방법을 찾습니다. 그래서 최고 인기를 누리던 백인 뮤지션이나 유명 헤비메탈 기타리스트와 협업해 곡을 만듭니다. 결국 잭슨은 원하던 대로 백인을 팬으로 흡수하는데 성공합니다.

 

펑크★

1960년대 중반 아프리카계 미국인 음악가들이 만든 음악 장르,

 

그러나 2009년 잭슨의 주치의가 잭슨에게 마취제를 다량으로 투입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팬들은 허무하게도 영원히 잭슨과 이별하게 됩니다.

 

잭슨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인종 간의 음악 장벽을 부수어 없앴으며, 듣는 음악의 시대에서 보는 음악의 시대를 연 인물이기 때문이지요.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마이클 잭슨이야말로 음악으로 인종 대통합을 이룬 인권 운동가가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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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4호 수학동아 정보

  • 조혜인 기자(heynism@donga.com)
  • 참고자료

    ‘Scaffoldings and Spines: Organizing High- Dimensional Data Using Cover Trees, Local Principal Component Analysis, and Persistent Hom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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