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이기자의 1마감1게임] 게팅 오버 잇 위드 베넷 포디

 

잠깐만요! 심호흡 좀 하고요. 게임 개발자 베넷 포디한테 정신적 폭행을 3일 동안 당했더니 의식이 몽롱합니다. 주인공이 항아리에 들어가 있어서 ‘항아리 게임’이라고 불리는 이번 게임은 2017년 11월부터 유행해 대도서관을 포함한 수많은 크리에이터의 영혼을 탈탈 털어버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포디가 “사람들을 해치기 위해” 만든 항아리 게임의 악랄함에는 수학도 한 몫 한다는 걸 저는 목격하고 말았습니다.

 

 

지하철역 개찰구에 도착하자마자 교통카드를 집에 놓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의 기분을 상상해보세요. 밤새도록 숙제를 했는데 깜빡 잊고 학교에 가져오지 않았던 때도 좋습니다. 상상만으로 혈관이 수축하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나요? 축하합니다. 당신은 인간입니다.

 

미국의 신경학자 로버트 새폴스키는 자신의 책에서 인간과 그 밖의 사회적 영장류만이 생각만으로 심장이 빨리 뛰고 뒷골이 당기는 스트레스 현상을 겪는다고 말했습니다. 원래 스트레스란 적과 마주쳤을 때 모든 에너지를 생존에만 쓸수 있도록 발달한 능력인데, 인간의 뇌는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해 호랑이를 만나지 않아도 스트레스를 충분히 받을 수 있다는 거죠.

 

게임유통사이트 스팀에서 닉네임 ‘Jackeloko’를 쓰는 유저가 게임 화면을 일일이 찍어서 만든 전체 탑의 모습입니다. 저는 ‘악마의 침니’라고 불리는 곳을 통과하는 데까지 세 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물론 탑에서 추락하면 이 끔찍한 곳을 또 통과해야 합니다. …탑이 높네요.

 

 

 

항아리 게임은 만병의 근원


이처럼 똑똑해서 멍청한 인간의 능력을 저는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항아리 게임이 이런 특성을 활용해 효과적으로 스트레스를 주거든요. 게임의 주인공은 항아리에 몸이 단단히 낀 남자입니다. 걸을 수 없으니 망치로 땅을 찧은 뒤 몸을 띄워 앞으로 나아갑니다. 목표는 가파르게 쌓인 탑의 꼭대기까지 가는 것. 바로 이게 문제입니다. 가파른 탑!

 

망치를 헛디디는 작은 실수에도 저는 맥없이 추락했습니다. 그리고는 첫 번째 돌부터 다시 올라야 했죠. 좌절을 한 번 겪은 다음부터는 저절로 손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또 떨어지면 어떡하지? 여기까지 어떻게 다시 올라오지? 나는 왜 고생을 사서 하지? 수많은 의학 전문가는 저처럼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았다간 궤양과 우울, 소화계 장애, 심혈관계 장애가 나타난다고 말하더군요.

 

2017년 11월, 유튜브 크리에이터 풍월량은 21시간 연속으로 항아리 게임을 하다 결국엔 포기해버렸습니다. 다음날 다시 도전해 끝내 엔딩을 보긴 했지만요. 풍월량보다 게임을 못하는 저는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게임이 어딘가 잘못된 게 분명하다고. 그리고 발견했습니다. 망치로 몸을 옮기는 게 얼마나 힘든지 말입니다.

 

 

항아리 게임이 힘든 건 당연!

 

주인공은 망치를 땅에 찧은 뒤 회전운동을 합니다. 회전운동을 만드는 힘을 물리학은 ‘돌림힘’이라 불러요. 물체를 앞뒤좌우로 움직이는 힘과 구분하기 위해서죠. 오른쪽에서 주인공의 오른손은 몸을 받치기 위해 망치를 땅 쪽으로 누르고, 왼손은 몸을 들어 올리기 위해 망치 위로 힘을 줍니다. 몸을 띄우는 데 쓰이는 왼손의 돌림힘만 살펴 봅시다.

 

 

몸을 띄워 회전시키려면 특정한 크기 이상의 돌림힘을 줘야만 합니다. 만약 중심점에서 힘점까지의 거리(r)를 늘리면, 왼손이 주는 힘(F)을 줄여도 되므로 보다 쉽게 회전을 할 수 있겠죠.

 

 

어렵게 느껴지면 시소를 떠올려 보세요. 아래 사진에서 무거운 엄마를 들어 올리려면 아이는 중심점에서 최대한 멀리 앉아야 합니다. 중심점 까지의 거리인 r이 크면, 아이의 가벼운 무게(F)로도 충분히 엄마를 들어 올릴 수 있거든요. 아이가 만드는 돌림힘이 엄마가 만드는 돌림힘보다 커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게임에서 주인공은 손으로 망치를 당겨 자신의 몸뚱이를 들어 올립니다. 이를 시소에 비유하면 주인공이 손으로 망치를 당기는 힘은 아이의 무게에 해당하고, 주인공이 들어 올려야 하는 자신의 몸뚱이는 엄마의 무게에 해당합니다. 회전운동의 중심인 망치의 끝은 시소의 중심점에 해당 하고요. 문제가 뭔지 눈치 챘나요?

 

 

망치의 끝에서 손까지 거리보다 몸뚱이까지 거리가 더 멉니다! 이건 자기 몸을 들어올리기 위해 실제 몸무게보다 더 큰 힘을 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른손이 망치를 땅 쪽으로 눌러야 한다는 것과 항아리와 망치 무게까지 생각하면 필요한 힘은 어마어마해집니다.

 

미국의 유튜브 크리에이터 매튜 패트릭은 망치의 길이를 1m 18cm로 추정했습니다. 게임 속 런던 공중전화 부스 높이와 망치 높이의 비율을 나타내는 비례식에 실제 공중전화 부스의 높이인 2m 51cm를 대입했죠. 주인공은 3m도 안 되는 거리를 움직일 때마다 자기 몸뚱이보다 훨씬 무거운 바벨을 하나씩 들어야 하는 겁니다.

 

포디는 게임 개발자일 뿐만 아니라 철학자기도 합니다. 호주의 멜버른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딴 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와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중독과 자유의지에 대해 연구했죠. 그래선지 제가 탑에서 추락할 때마다 명언을 하나씩 읊어줬습니다. 그중 하나를 아래에 옮깁니다. 사서 고생하는 저를 비웃는 것처럼 들리는 건 저뿐인가요?

 

“가시가 없는 장미는 없다. 부지런한 수학자는 가시를 피해 꽃을 모을 것이다.” - 사티야 사이바바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8년 04호 수학동아 정보

  • 이다솔 기자(dasol@donga.com)
  • 사진

    Bennett Foddy
  • 참고자료

    로버트 새폴스키의 ‘스트레스: 당신을 병들게 하는 스트레스의 모든 것’

🎓️ 진로 추천

  • 철학·윤리학
  • 심리학
  • 물리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