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마다 보는 웹툰이 한 개쯤 있나요? 그 안에 수학이 숨어있을지 모릅니다. 분야도 게임이론부터 위상수학까지 다양하죠. 랑또의 ‘가담항설’부터 하일권의 ‘마주쳤다’까지 웹툰 찢고 건져온 수학을 여기에 공개합니다!
움직이는 웹툰이 어느새 익숙해졌습니다. 네이버 웹툰의 ‘가담항설’도 그중 하나죠. 가담항설은 ‘약빤’ 개그로 유명한 랑또 작가가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하게 만들어서 화제인 작품입니다. 가담항설 속 세계에서는 말과 글에 힘이 있어 의미를 깊이 이해하면 현실에서 그대로 이룰 수 있습니다. 글 공부만 열심히 하면 화살 쏘고 사람 고치고 못하는 게 없죠.
화려한 전투와 판타지 설정을 실감나게 보여주기 위해 랑또 작가는 움직이는 효과를 사용합니다. 스크롤을 움직이면 없던 그림이 나타나거나 특정 그림이 강하게 흔들립니다. 스크롤 위치와 관계 없이 비가 내리고 별이 반짝이는 연출도 등장하죠. 가담항설 외에 ‘원주민 공포 만화’와 ‘모태솔로수용소’에서도 간혹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런 특수효과는 2011년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호랑 작가가 단편 공포 만화 ‘봉천동 귀신’과 ‘옥수역 귀신’에서 절묘한 때에 무서운 것이 튀어나오도록 했죠. 독자를 놀라게 한 연출 덕에 두 만화는 크게 성공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호랑 작가는 독자의 스크롤 위치를 인식하기 위해 해킹 기법을 써야 했다고 합니다. 웹페이지에 명령 코드를 몰래 심어 적절한 때에 애니메이션을 재생한 거죠. 네이버가 접근을 막아놨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2015년, 네이버 웹툰은 ‘효과툰 에디터’를 만들었습니다. 모든 작가가 이런 효과를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요. 덕분에 특수효과는 이제 웹툰계에 쉽게 보이는 기법이 됐습니다. 물론 만화의 변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게임이론으로 훔친 하일권 그림체
최근 웹툰은 상호작용 효과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2018년 1월까지 네이버 웹툰과 하일권 작가가 연재한 ‘마주쳤다’가 대표적이죠. 이 만화는 주인공이 독자입니다. 특정한 때에 독자가 사진을 찍도록 해 이를 자동으로 작가의 그림체로 바꿔 등장시킵니다. 위 사진과 그림처럼요.
비결은 컴퓨터과학자 이안 굿펠로우가 2014년 처음으로 제안한 ‘생성적 적대신경망(GAN)’입니다. 굿펠로우는 GAN의 원리를 지폐 위조범과 경찰의 대결로 설명합니다. 위조범은 가짜 지폐를 진짜처럼 만듭니다. 경찰은 처음엔 속겠지만 결국엔 가짜와 진짜를 구별해내려고 하죠. 서로 견제하는 과정에서 위조범과 경찰은 함께 실력이 향상됩니다.
GAN에서 위조범은 생‘ 성 모형’이고 경찰은 ‘판별 모형’입니다. 진짜 지폐는 작가가 그린 얼굴, 가짜 지폐는 흉내 낸 그림입니다. 네이버 랩스는 GAN을 훈련하기 위해 실제 사진과 이를 그린 그림을 학습 데이터로 준비했습니다. 각 쌍의 표정도 웹툰에서 표현하려는 수만큼 마련했죠. 이런 데이터 수천 장으로 GAN의 생성 모형을 뛰어난 위조범으로 만든 겁니다.
뛰어난 위조범이 나오는 이유
자세히 살펴볼까요. 생성 모형은 무작위로 만든 데이터를 받아 학습 데이터와 비슷한 패턴의 데이터로 바꾸도록 학습합니다. 판별 모형이 가짜를 진짜로 오해하도록 말입니다. 판별 모형은 입력 받은 데이터가 진짜일 확률을 잘 계산하도록 학습합니다.
굿펠로우는 게임이론 중 하나인 ‘최소극대화 게임’을 바탕으로 GAN을 설계했습니다. 최소극대화란 최악의 상황에서 예상되는 손실을 최소화하는 의사결정원칙입니다. 위조범에게 최악은 경찰이 완벽히 학습을 마칠 때입니다. 이때 위조범이 기대할 수 있는 가장 낮은 경찰의 정확도는 50%입니다. 답을 맞힐 확률과 틀릴 확률이 반반이라 찍는 거나 다름없는 상태죠.
수학자 폰 노이만은 참가자의 모든 이익을 더하면 0이 되는 제로섬 게임에 2명이 참여할 때, 최소 극대화 게임의 해가 1개라는 걸 증명했습니다. 위조범과 경찰이 최소극대화 원칙으로 행동할 때 균형을 이루는 결론이 있다는 거죠. 굿펠로우는 이게 판별 모형의 정확도가 50%일 때라는 걸 보였습니다. 생성 모형이 판별 모형도 못 알아보는 가짜를 만드니, 생성 모형만 떼어다 웹툰에서 쓰면 됩니다.
GAN도 한계는 있습니다. 아무리 학습해도 경찰이 바보면 위조범도 다른 사람이 보기엔 엉망일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판별 모형만 미리 학습시키기도 합니다. GAN은 요즘 인공지능 분야에서 가장 뜨거운 기술이라, 이외에도 다양한 해결 방안이 나오고 있답니다.
답답해서 직접 만들었다 VR웹툰
효과툰의 출발선을 끊었던 호랑 작가가 최근 재밌는 시도를 했습니다. 3차원에서 만화를 보는 가상현실(VR)용 웹툰앱 ‘스피어툰’과 전용 제작도구, VR용 작품을 만든 겁니다.
‘comixV’ 같은 기존 앱은 평면 만화를 360˚ 벽면에 두를 뿐이라 입체감이 부족했습니다. 한 눈에 그림을 볼 수 없어 말풍선을 찾아 헤매는 문제도 있었죠. 스피어툰은 전용 제작도구로 두 문제를 해결합니다. 사물과 캐릭터를 배경보다 가까이 놓거나, 자막이 시선을 따라갈 수 있게 했죠.
2차원 배경을 그리는 것도 어려운데, 3차원을 상상하는 건 힘들지 않을까요? 사실 웹툰 작가 대부분은 ‘스케치업’ 같은 3차원 모형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씁니다. 웹툰의 공간적 배경을 3차원으로 설계해놓고, 필요할 때마다 캡쳐해 배경에 붙여 넣는 거죠.
호랑은 스케치업의 확장 프로그램을 만들어 마우스 클릭 한 번에 작가가 만든 모형을 VR용 배경으로 추출하게 했습니다. 그러면 아래 그림처럼 정육면체 전개도 파일이 나옵니다. 위상수학의 성질을 이용하면, 360˚ 배경은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위상수학은 구멍의 개수로만 물체를 구분하는데, 구멍이 없는 정육면체와 구는 위상적으로 같아 모든 점이 1:1 대응하기 때문이죠.
배경과 분리된 캐릭터와 사물은 2차원으로 그린 뒤, 독자와의 거리를 달리하며 입체감을 줍니다. 호랑 작가는 캐릭터와 사물의 위치를 직교좌표계 대신 구면좌표계와 비슷하게 새로 만든 좌표계로 조정하게 했습니다. 직교좌표계가 각 축에서의 거리로 위치를 나타내는 것과 달리, 구면좌표계는 원점과의 거리를 이용합니다. 원점에 고정된 독자의 입장에서 위치를 파악하기 쉬운 방법이죠.
스피어툰은 3월 중에 서울 용산CGV에서 오프라인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VR 기기가 없다면 이곳을 방문해도 좋겠네요. 호랑의 공포 단편은 상당히 무서우니 마음 단단히 먹으세요!
호랑 작가는 개발자인가요, 웹툰 작가인가요?
그냥, 이것저것 다 하는 사람?(웃음) 직업을 한정 짓는 게 싫었어요. 하나만 하면 재미없잖아요. 새로운 세계를 온전하게 구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어요. 그래픽과 개발, 시나리오, 연출을 모두 포함하는 게 사실 게임이에요. 그래서 어릴 땐 게임 개발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죠. 웹툰작가는 어쩌다 된 거예요. 게임 회사에서 나와서 공모전에 작품을 냈다가 얼떨결에 됐지요.
게임은 언제 처음 만들었어요?
중학생 때 어느 고등학교 축제에서 게임을 전시한 걸 보고, ‘나도 해봐야지’ 생각했어요.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실제로 했죠. 앞으로 달려가면서 총을 쏘는 PC 게임인데, 아직 남아있을지 모르겠네요. 그 뒤로는 디자인 회사와 게임 회사에서 일하면서 3차원 가상 세계를 구축하는 일을 했어요. 3차원 모형 제작과 개발 경험이 혼자서 웹툰과 게임, VR콘텐츠를 만드는 원동력이 됐죠.
혼자서 만들어서 출시한 게임도 있다면서요.
다녔던 게임회사가 둘인데 출시한 게임이 하나도 없어서요. 내 이름으로 내보자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처음 출시한 게 ‘바나냥’이라는 게임인데 다운로드 수가 40만으로 제법 돼요. 최근엔 VR게임도 만들어서 3월이나 4월 중에 출시할 예정이에요.
VR웹툰은 왜 만들었나요?
기존 VR웹툰은 360°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웹툰의 말풍선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형태라 VR웹툰에 기대를 가진 분들이 실망할까 봐 걱정됐죠. VR웹툰에 어울리는 기술로 기초적인 문법과 틀을 잡아놔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올해 안에 시작하실 거라는 웹툰 차기작은 어떤 거예요?
로봇물을 준비하고 있어요. 로봇물은 그리기가 힘들어서 웹툰엔 거의 없죠. 저는 3차원 모형을 이용하기 때문에 다른 작가보다 작업 시간이 짧아요. 나만 할 수 있는 걸 해보자고 생각해서 로봇물을 기획하게 됐어요. 특수 효과는 안 넣으려고요. 스토리보다 기술에 강하다는 이미지를 벗어나고 싶어요. 만화는 내용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