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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자의 1마감1게임] 시험 기간 금지 게임, 미니 메트로

 

노선도를 잇기 전(왼쪽)과 후(오른쪽). 새로운 동그라미역이 여의도 남쪽에 생겼다. 화면 오른쪽의 파랑, 초록, 주황 동그라미는 내가 만들 수 있는 노선의 색깔이다. 오른쪽 위 ‘4’라는 숫자는 지금까지 태운 승객의 수다. 매주 일요일마다 새로운 노선과 터널, 열차와 같은 아이템을 준다.

 

 

저는 키가 작습니다. 혼잡한 지하철에서 키가 작은 사람은 큰 사람보다 몇 배는 더 힘들어요. 키 큰 자들이 산소를 몽땅 흡입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무거운 이산화탄소는 아래에 많고 가벼운 산소는 위에 많을 테니 합리적인 추측이죠. 숨 쉬기도 버거운 지하철에 탈 때면 저는 생각합니다. “이 놈의 교통을 다 뜯어고쳐야 해!”

 

드디어 기회가 왔습니다. 지하철 노선도를 설계하는 게임 ‘미니 메트로’를 시작했거든요. 런던과 도쿄, 파리 같은 도시에 무작위로 등장하는 지하철역을 연결해 자기만의 노선도를 만드는 게임입니다. 2015년과 2016년에 각각 PC버전과 모바일 버전으로 나온 미니 메트로는 마침내 2016년 12월 서울 지도를 추가했습니다.

 

게임에서 서울을 선택하니 위와 같은 첫 화면이 떴습니다. 중앙에 좌우로 한강이 흐르고 여의도도 보이네요. 하얀 동그라미와 세모, 네모는 지하철역입니다. 교통계획가답게 동그라미역은 주거구역, 세모역은 상업구역, 네모역은 사무구역이라고 생각하기로 합시다. 금융회사가 밀집된 여의도에 네모역이 있는 건 우연일까요?

 

승객은 까만 도형으로 나타납니다. 동그라미역옆의 까만 네모가 바로 승객이에요. 네모 승객은 네모역에, 세모 승객은 세모역에 가고 싶어 하죠. 모든 승객은 자기가 선 역과 다른 모양의 역에 가려고 합니다. 세모역에선 세모 승객이 안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지하철역을 이어 노선도를 그리면 승객은 전철을 타고 원하는 역에 내립니다. 강을 건너는 노선은 터널이 필요합니다.

 

게임의 목표는 역에서 기다리는 승객 수가 너무 많아지지 않도록 노선도를 그리고 열차를 배치해 최대한 많은 승객을 태우는 겁니다. 터널과 노선, 열차는 정해진 수만큼만 쓸 수 있어요. 도시가 커지면 승객과 지하철역도 많아집니다. 지하철역의 종류도 세모와 네모, 동그라미 외에 십자 모양과 별, 마름모 등 다양하게 등장하죠.

 

1호선이 붐비는 이유를 찾아라


서울 지도에서는 한 역에서 기다리는 승객이 5명을 넘으면 카운트다운이 시작됩니다. 이 상태로 대략 8초가 지나면 ‘게임 오버’가 되고 말죠. 게임오버가 될 때까지 태운 승객 수가 게임 기록입니다. 기록을 올리기 위해 “한 판만 더 해볼까” 고민 하게 되기 때문에 미니 메트로는 시험 기간에 하기에 상당히 위험한 게임입니다.

 

 

저도 수십 번쯤 새 게임을 시작했지만 결국 부딪히는 문제는 늘 똑같았습니다. 위 그림은 제가 승객을 301명 태웠을 때 서울 지도에 나타난 지하철역입니다. 동그라미역이 아래쪽에 밀집돼 있죠. 사무구역보다 주거구역이 많고, 주거구역이 한 곳에 밀집된 현실을 매우 잘 반영합니다.

 

동그라미역에는 동그라미 승객이 없기 때문에 동그라미역을 연속해서 이으면 열차는 금세 꽉 찹니다. 내리는 승객이 없으니까요. 꽉 찬 열차가 역에서 기다리던 승객을 태우지 못하고 떠나는 순간,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

 

이처럼 동그라미역이 한 곳에 몰려있는 상태를 도시공학에서는 ‘토지 불균형’이라고 합니다. 부천과 성남 등 신도시에 주거구역이 모여 있는 수도권이 대표적인 사례예요. 토지 불균형 상태에서는 교통 체증이 발생하기 쉽습니다. 출근 시간에 부천에서 지하철을 탄 사람은 사무구역이 나타날 때까지 지하철에서 내리지 않을 테니까요. 아침마다 1호선이 미어터지는 이유입니다. 저 같은 게이머의 속이 터지는 이유기도 하고요.

 

기록 올리는 만능 해답 있을까


2014년 12월, 미국과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일 했던 세계적인 교통전문가 자렛 워커는 미니 메트로가 나오자마자 흥분을 금치 못했습니다. 자신의 블로그에 미니 메트로가 어떻게 현실을 반영하는지 긴 글을 쓰고 자기만의 필승 전략을 제시했죠. 그가 제안한 해법은 ‘격자’입니다. 새로 만든 동네에 가면 십자형 도로가 연속해서 놓여있죠? 이게 대표적인 ‘격자형 구조’입니다.

 

워커는 지하철역이 10개 이하 정도로 도시가 작을 때에는 모든 노선이 네모역처럼 개수가 적은 종류의 역에서 만나는 방사형 구조가 유리하지만, 도시가 커질수록 격자형이 좋다고 말합니다. 좌우와 위아래 방향의 노선이 격자 형태로 만나서 모든 승객이 1번만 환승하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말이죠. 지하철역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불균형하게 분포하던 토지가 균형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큰 도시에서는 격자형 구조가 좋다는 겁니다.

 

최적의 지하철 노선을 만드는 전략에 대한 이런 토론은 지금도 세계 곳곳의 온라인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2017년, 블로그 사이트 메타필터에서 닉네임 ‘pwnguin’을 쓰는 유저는 워커의 글을 읽고 또 다른 전략을 내놓았습니다. 서울의 2호선처럼 순환하는 모양으로 노선을 만드는 게 유리한 이유를 수학적으로 설명했지요.

 

○, △, ○, ○, △ 역을 연결한다고 합시다. 첫 번째 역에서 마지막 역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T일 때, 직선 노선이라면 첫 번째 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돌아오는 데 2T의 시간이 걸립니다. 반면 순환형 노선이라면 열차가 마지막 역 다음에 첫 번째 역으로 가기 때문에 시간이 줄어들죠. 다시 말해, 열차 수와 노선 수는 같은데 열차가 역에 돌아오는 횟수가 늘어납니다.

 

물론 워커와 pwnguin의 전략이 항상 옳은 건 아닙니다. 강의 위치와 지도의 모양, 지하철역의 수와 분포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할 수밖에 없죠. 그래도 1초라도 덜 낭비하고 싶다면 워커와 pwnguin처럼 나만의 전략을 찾으며 두뇌 훈련을 하는 게 좋겠네요. 여러분은 어떤 모양으로 노선도를 만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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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3호 수학동아 정보

  • 이다솔 기자(dasol@donga.com)
  • 사진

    Dinosaur Polo Club
  • 참고자료

    Jarrett Walker의 ‘learning from “mini me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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