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2018년 8월 1일 열리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세계수학자대회 개막식에서 만 40세 미만의 젊은 수학자가 받을 수 있는 최고 영예, 필즈상 수상자가 정해 집니다. 올해는 누가 수상의 영광을 누리게 될까요? 7개월간 필즈상 후보자 10명을 뽑아 소개합니다.
네 번째 필즈상 후보는 최근 정치가로 변신해 화제를 모은 프랑스 수학자이자 필즈상 수상자 세드릭 빌라니 교수의 제자 알레시오 피갈리 교수 입니다. 혹자는 빌라니 교수만큼 지식을 스폰지 처럼 잘 흡수한다고 하는데요, 젊은 나이에 여러 성과를 올린 잘나가는 수학자지만 언제나 겸손하고 성격도 유쾌해 주위에 사람이 많답니다.
어딜 가나 칭찬일색인 피갈리 교수의 연구 분야는 ‘최적 운송 이론’입니다. 친구에게 택배로 선물을 보낼 때 알아보는 것 중 하나가 회사별 택배비용이지요. 수학자는 x에서 y 지역으로 대량의 물자를 운송할 때 드는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편미분방정식을 풀어 찾아냅니다. 피갈리 교수 역시 다양한 방법으로 이 분야를 연구하고 있지요.
피갈리 교수의 가장 큰 업적은 유명한 수학 학술지인 ‘악타 마테마티카’ 2016년 9월호에 실린 연구입니다. 복소수를 원소로 갖는 n×n 랜덤 행렬 중에서 자기 자신과 켤레 전치★가 같은 에르미트 행렬은 랜덤 행렬이 어떤 분포를 갖던 상관없이 공통적인 성질이 있다는 것을 밝힌 겁니다.
켤레 전치★ 복소수 a+bi에서 허수 부분의 부호만 a-bi로 바꾼 뒤 행렬의 행과 열을 교환한 것.
참 어려운 말이죠. 랜덤 행렬은 어떤 분포를 반드시 가집니다. 그게 정규분포일 수도 있고, 포아송분포, 잘 알려지지 않은 분포일 수도 있죠. 랜덤 행렬이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에르미트 행렬이라고 하는데, 어떤 분포의 이 행렬을 봐도 고유의 성질이 있다는 겁니다. 사람은 저마다 생김새가 다르지만 머리는 하나고 팔은 두 개, 다리도 두 개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처럼요.
두 번째 업적은 최적 운송 이론에서 중요하게 쓰이는 비선형 편미분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방법과 관련이 있습니다. 비용을 최소로 하는 운송 계획법을 찾으려면 ‘몽쥬-앙페르 방정식’이라는 비선형 편미분방정식을 풀어야 하는데, 이 방정식에는 두 번 편미분한 녀석이 있어 바로 풀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한 번 편미분한 녀석만 있도록 이 식을 적분방정식으로 바꿉니다. 그러면 비교적 쉽게 답(약해)을 찾지만, 원하는 답보다 더 많은 해를 찾기 때문에 원래 해(부드러운 해)만 남도록 어떨 때 두 번 편미분한 녀석을 만족하는지 구해야 하지요. 피갈리 교수가 이 아이디어를 이용해 약해가 언제 부드러운 해가 되는지를 부분적으로 해결한 겁니다.
하승열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피갈리 교수는 최근 수리물리의 문제를 최적 운송 이론으로 풀어 주목을 받았다”면서, “피갈리 교수가 쓰고 있는 도구는 기상 문제를 풀 때도 쓰이기 때문에 최적 운송 이론은 물론 기상학의 발전에까지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1년 만에 박사 학위를 받은 수학계 유망주
피갈리 교수는 학부 2년, 석사 2년, 박사는 1년 만에 마쳤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뛰어나도 박사 과정을 1년 만에 끝내는 게 불가능한데요, 해외 대학에서는 박사를 받을 자격이 충분한 연구를 발표하면 곧장 학위를 주기도 한답니다. 덕분에 2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교수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죠. 유럽 수학자라면 필즈상을 받기 전에 꼭 받는 상이라고 해서 ‘유럽 필즈상’이라고 불리는 유럽수학상도 28살에 받았습니다.
이처럼 피갈리 교수는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이번 필즈상 수상만큼은 확실치 않다는 입장이 지배적입니다. 받아도 수긍이 가지만 못 받아도 이상할 건 없다는 겁니다. 피갈리 교수가 최적 운송이론 분야에서는 엄청난 성과를 내고 있는 건 인정하지만, 수학계 전체로 봤을 때는 아직 부족하다는 거지요. 하 교수는 “한 번 더 기회가 있는 만큼 랜덤 행렬 연구와 같은 성과가 또 나온다면 다음 번에는 필즈상 수상 0순위가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필즈상은 4명이 영예를 차지하게 되는데요, 매번 두 자리는 확실히 점쳐지는 후보가 있고, 나머지 두 자리는 여러 후보가 각축을 벌입니다. 피갈리 교수가 이번에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요? 8월 1일을 기다려주세요!
한국 수학계가 꼭 필즈상을 받기를 바라는 수학자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만, 초등학교부터 대학원 석사 과정까지 우리나라에서 교육을 받은 한국계 미국인 허준이 박사입니다.
허 박사가 수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2012년입니다. 박사 학위도 받기 전에 가장 권위있는 수학 학술지인 미국수학회지에 단독 논문을 실어 관심을 받았습니다. 바로 조합론 분야 45년 난제인 ‘리드 추측’을 해결한 겁니다.
허 박사는 조합론 언어로 쓰인 이 문제를 기하학의 언어로 바꾼 다음 대수기하학 도구를 이용해 문제를 풀었습니다. 그 결과 본래 추측보다 더 강력한 성질을 밝혔습니다.
어떤 그래프에서 이웃한 꼭짓점을 서로 다른 색으로 칠할 때 q개 이하의 색만 써서 칠하는 방법의 수를 나타낸 식을 채색다항식이라고 합니다. 이 식의 계수에 절댓값을 씌워 살펴봤을 때 등비수열보다는 완만하게 변한다(로그 오목성)는 것을 증명했지요. 예를 들어 1, 2, 4, 8…은 2배씩 커지는 등비수열입니다. 만약 계수가 1, 3, 4, 5… 라면 등비수열보다는 완만하게 변하지요.
허 박사는 3년 뒤 리드 추측을 일반화한 문제인 ‘로타 추측’도 두 명의 수학자와 함께 해결합니다. 리드 추측이 그래프의 채색다항식의 성질을 밝히는 문제라면 로타 추측은 그래프뿐만 아니라 벡터 공간에 있는 유한 집합의 특성다항식까지 포함하는 일반적인 상황으로 범위를 확장한 겁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기하학적인 대상을 조합론 문제로 대응시킬 수가 없어 난항을 겪었습니다. 기하학적 대상이 있으면 따라오는 대수적 구조(코호몰로지)가 있는데, 기하학을 건너뛰고 조합론에서 대수기하학으로 바로 가면 이 성질을 만족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허 박사가 조합론에서 대수기하학으로 가도 여러 성질을 만족한다는 것을 보이면서 로타 추측을 해결한 것이지요.
허 박사의 석사 과정 지도 교수인 김영훈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석사 과정 때 해결한 문제에 썼던 도구를 발전시켜 로타 추측이라는 큰 문제까지 해결했다”며, “그 방법을 이용하면 조합론의 다른 문제도 풀 수 있기 때문에 기존 필즈상 수상자의 업적과 견주어 봐도 밀리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남 따라하는 공부법이 성공 요인?
허 박사를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지켜본 김 교수에 따르면 문제 푸는 집중력이 좋아 관심이 갔다고 합니다. 수학 실력 또한 여느 학생보다도 뛰어났다고 밝혔지요.
하지만 허 박사 자신은 수학을 잘하지 못해 수학자를 만나면 그들이 생각하는 방법을 며칠씩 흉내내며 연구 방법을 배우려고 애쓴다고 2014년 본지와 했던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김 교수는 “연구하기에 가장 좋은 공부법을 일찍 터득한 것 같다”며, “학자라면 누구나 글을 읽을 때 저자가 무슨 생각을 하며 한 단어 한 단어를 썼는지 저자와 대화하듯이 그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허 박사는 2017년 봄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장기 펠로우십에 선정됐습니다.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장기적 지원을 해주는 프로그램으로, 수학자라면 누구나 부러워하는 제안입니다. 연구성과가 뛰어나야만 지원하기 때문에 젊은 수학자가 뽑힌 경우는 역대 세 명밖에 없을 정도로 매우 드뭅니다. 그 중 두 명은 필즈상 수상자인 만큼 혁혁한 공을 세워야 가능하지요. 이런 프로그램에 선정됐다는 건 프린스턴 고등연구소가 허 박사의 가능성을 높게 사고 있는 겁니다.
허 박사는 필즈상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초청강연자로 브라질에 갑니다. 그 자리에서 곧바로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을지, 아니면 4년 뒤를 기약할지 그 결과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