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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CHO의 롤링수톤] 지미 헨드릭스의 ‘퍼플 헤이즈’ 기타의 신과 27클럽

분야별 최고를 손에 뽑다 보면, 시기별로, 주최별로 달라지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나 기타리스트는 이견이 없습니다. 록 역사상 가장 고유하고 창의적이며 영향력 있는 기타리스트는 지미 헨드릭스입니다. 내로라하는 천재 기타리스트들조차 헨드릭스의 연주를 보고 자괴감이 들어 기타를 그만둬야 할지 고민했을 정도였어요.

 

※ 편집자 주 - 가장 유명한 미국 음악 잡지 ‘롤링스톤’을 표방하는 롤링수(數)톤. 롤링수톤에서는 음악 이야기뿐 아니라 음악 속에 숨겨진 수학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습니다. QR코드를 찍어 음악을 들으며 읽으면 더 재밌을지도~!

 

 

지미 헨드릭스가 실제로 연주했던 기타. 헨드릭스는 미국 중고시장에서 이 기타를 구매한 뒤 3년 정도 연주했던 걸로 알려져 있다. 2016년 말에 경매에 부쳐졌다.

 

“왼손으로 악수합시다. 그쪽이 내 심장과 더 가까우니까.” 미국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가 수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린 한 마디입니다.

 

기타에 대해 잘 모른다고요? ‘장장장’하고 다소 지저분하게(?) 들리는 기타 소리는 들어본 적이 있을 거예요. 이 소리의 시초가 헨드릭스입니다. 지난번 소개했던 비틀즈는 영국 음악가로 미국을 점령했다면, 같은 시기 지미 헨드릭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영국에서 명성을 꽃피운 음악가 입니다.

 

기타의, 기타에 의한, 기타를 위한


혹시 공연 중에 기타리스트가 기타 줄을 이로 물어뜯어 연주하거나 바닥에 드러누워 기타를 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요? 이런 기타 퍼포먼스의 시작이 헨드릭스입니다. 그뿐이게요? 무대 위에서 불을 피워 기도하는 퍼포먼스를 하거나 기타를 치다가 바닥에 내동댕이쳐 부숴버리기도 합니다. 헨드릭스의 공연을 처음 본 관객은 놀라고 충격을 받았지만 이 반항적인 쇼를 또 보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헨드릭스는 여기에 사운드 조작까지 합니다. 소음과 음악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질 정도로 과장된 기계 소리를 내는가 하면, 다양한 사운드 조작 기계를 음악에 활용했습니다. 그래서 헨드릭스를 사운드의 조각가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헨드릭스가 회자되는 또 다른 이유는 반문화의 상징적인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반문화란 어떤 사회의 지배적인 주류 문화에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저항하는 문화를 뜻합니다. 여기서 주류 문화는 이념이나 제도 문제부터 생활방식까지 모든 것을 말합니다.

 

주류에서 벗어난 소수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공유하는 하위문화를 갖게 됩니다. 그들은 문화를 공유할 뿐만 아니라 지배 문화에 대항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러면서 집단의 결속력은 높아지고 하나의 반문화로 성장하지요.

 

헨드릭스가 결성한 3인조 밴드 익스피리언스의 공연 모습! 현란한 조명 효과와 환각적인 분위기가 특징인 사이키델릭 록의 대중화에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주류 계층의 삶에 반감을 표하며 자유와 평화에 가치를 두는 삶의 태도를 추구한 히피들의 문화가 반문화로 자리 잡았는데, 대표적 인물이 헨드릭스였지요. 그리고 이런 히피 문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인 음악 축제에서 헨드릭스는 존재감을 한 번 더 떨칩니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1969년 8월 15일부터 3일간 미국 뉴욕 주의 베델 근처 농장에서 열렸습니다. 여기서 헨드릭스는 30만 명의 사람들 앞에서 기타로 미국 국가를 연주했습니다. 반문화를 상징하는 음악가가 국가를 연주한다니, 아이러니합니다!

 

이날 헨드릭스는 미국 국가를 어느 누구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름끼치고 괴기한 굉음을 섞어 연주했습니다. 특히 ‘하늘로 폭발하는 폭탄’ 구절의 연주는 마치 당장이라도 공습이 벌어져 전쟁이 날 것만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지요. 혹자는 당시 베트남 전쟁을 일으키고 있던 미국 정부에 대한 반전 메시지라 합니다. 소설가는 글로, 만화가는 만화로 생각을 표현하듯, 헨드릭스는 자기 자신과도 다름없는 기타로 표현한 거지요. 이후 이 공연은 전설로 남습니다.

 

그러나 시대의 아이콘이자 기타의 신, 반문화의 상징이었던 이 천재 음악가는 안타깝게도 너무 젊고 아까운 나이 27살에 세상을 떠납니다.

 

악마가 질투한 재능


27세. 대중음악계에서 27은 악명 높은 숫자입니다. 미스터리를 넘어 공포의 숫자로 여겨졌지요. 27세에 천재 음악가들이 많이 죽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27세에 죽은 음악가를 부르는 27클럽
이라는 명칭까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27클럽의 음악가를 가리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음악적 재능을 얻었다고 얘기 합니다. 그 나이에 죽은 음악가들의 뛰어난 재능을 추켜세우며 요절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낸 표현이지요. 얼마 전 우리나라의 가수 샤이니 종현도 27살 나이에 세상을 떠나며 27클럽에 이름이 올랐습니다.

 

뮤지션과 27. 정말 관련이 있을까요? 호주 시드니대학교 음악심리학과 다이아나 케니 교수는 대중음악가에게 27세의 죽음이 특별한 것인지 검증하기 위해 통계를 이용해 분석했습니다. 1950년에서 2010년 사이에 활동한 다양한 장르의 대중음악 가수 1만 1054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27세에 죽은 음악가는 144명, 전체의 1.3%였습니다. 28세에 사망한 음악가는 1.4%, 26세에 사망한 음악가는 1.2%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7세는 그다지 특별한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24세부터 42세까지 죽은 음악가의 수는 비슷비슷했습니다. 케니 교수는 27세가 다른 연령보다 사망 위험률이 높다고 결론 짓기 위해서는 적어도 1.5% 라는 수치가 나왔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27세의 죽음이 특별한 건 아니고 단지 시대를 뒤흔든 유명한 음악가 중에 27세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 우연히 많았다는 것을 말해 주지요.

 

최근에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음악은 영원히 남을 거라는 의미로 포에버27클럽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음악으로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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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2호 수학동아 정보

  • 조혜인 기자(heyn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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