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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평범한 듯 특별한 SW 수업

순천 선혜학교


정보 수업 교실에 미리 와 있던 고등학교 2학년 3반 학생들은 실습실 벽면을 둘러싸고 늘어서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교실 가운데에 책상이 둥글게 배치돼 있었다.

“자, 여러분. 수업 시작할게요. 하고 있던 일 모두 멈추고 가운데 책상으로 오세요.”

정보 교육을 담당하는 윤인한 교사가 수업 시작을 알리자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학생들이 하나 둘 교실 가운데에 있는 자리에 와서 앉았다. 컴퓨터 없는 책상에 둘러앉아 어떤 SW 수업을 하는걸까.

선혜학교는 지적장애 학생이 다니는 특수학교다. 이 학생들에게 컴퓨터를 이용해 알고리즘을 짜는 코딩 교육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윤교사는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이 할 수 있는 SW교육을 궁리했다. 윤 교사는 이들도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많이 진행하는 언플러그드 수업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모든 학생이 칠판을 바라보는 책상 배치는 종이와 펜을 주로 이용하는 언플러그드 수업에 적합하지 않았다. 바로 책상 배치부터 바꿨다. 수업 내용에 맞게 교실 환경도 바꿔야 한다는 게 윤 교사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책상 배치의 수수께끼가 풀렸다.

오늘 수업의 주제는 컴퓨터 언어였다. 컴퓨터는 0과 1, 두 개의 숫자를 이용해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에 컴퓨터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이진법을 배우는 건 필수적이다.


게임처럼 재미있는 수업
“영길이와 승현이가 이진 게임 대결을 해보자!”

두 학생의 책상에는 각각 종이 세 장이 놓여있었다. 종이 앞면에는 점이 찍혀 있는데, 점의 개수는 왼쪽부터 각각 4개, 2개, 1개다. 종이 반대쪽은 비어있었다. 이 ‘점 카드’는 마치 컴퓨터 언어처럼 앞과 뒤, 두 가지 방법으로만 구별된다.

윤 교사는 이 게임카드를 이용해 이진법을 가르쳤다. 세 장의 카드 위에 교사가 1 또는 0이 적힌 숫자를 올려놓으면, 학생은 숫자 1 아래에 있는 카드는 점이 찍힌 면이 보이도록, 숫자 0 아래에 있는 카드는 빈 면이 보이도록 뒤집는다. 선생님이 올려놓은 카드는 이진법 수를 나타내고, 학생이 점 카드로 만든 점의 개수는 십진법 수를 나타낸다. 교사가 이진법으로 만들어 놓은 숫자에 맞게 카드를 빨리 뒤집는 사람이 승리한다.

“영길이와 승현이의 이진 게임~!”

교사가 노래를 부르며 게임의 시작을 알리자 학생들은 익숙하다는 듯이 따라 불렀다. 대결하는 두 학생을 뺀 나머지 학생들은 두 손으로 책상을 두들기며 긴장감을 조성했다. 윤 교사가 “5!” 하고 외치며 두 학생의 점 카드 위에 각각 1,0,1을 올려놓았다. 한 학생이 재빠르게 가운데 카드만 빈 면으로 뒤집더니 점 다섯 개를 만들어 게임에서 승리했다. 윤 교사는 이긴 학생에게 작은 사탕을 선물했다. 윤 교사는 “집중력이 좋지 않은 학생들에게 게임과 같은 오락 요소는 필수”라며, “수업하면서 종종 보상까지 해주면 수업 집중도가 더 높아진다”고 말했다.

특수학교 맞춤 수업
특수학교지만 언플러그드 수업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얼마 뒤 교실에는 오조봇과 햄스터 로봇이 등장했다. 물론 다른 학교에서 흔히 하는 코딩 활동은 아니었다. 이전 수업처럼 윤 교사는 특수학생에 맞는 방식으로 SW 수업을 했다.

“오른쪽에 있는 집으로 가야 하는데, 교차로가 있으면 어떻게 할까요?”

윤 교사는 길을 걷다 교차로를 맞닥뜨린 상황을 설명하며 오조봇의 원리를 설명했다. 목적지에 따라 교차로에서 갈 방향을 결정하듯 오조봇도 목적지로 가기 위해 방향을 찾는다. 교사가 짝을 지어준 두 학생은 머리를 맞대고 길을 찾아주기 위해 한참을 고민했다.

또 다른 한 쪽에서 학생들은 햄스터 로봇으로 축구 경기를 하고 있었다. 햄스터 로봇의 방향을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건전지로 만든 골대에 스티로폼 공을 넣는 축구 게임이다. 조금 서투르지만, 마침내 공을 몰고 가던 햄스터 로봇이 골대에 골을 넣었다.

이렇게 특수학생에 맞는 수업을 찾기까지는 시행착오도 있었다. 처음에 윤 교사는 일반 학생들 커리큘럼에 맞춰 똑같은 방식으로 수업하려고 했다. 그러자 도저히 수업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윤 교사는 바로 잘못됐다는 점을 깨닫고, 특수학생에 맞는 수업을 개발했다.

선혜학교의 고등학생은 보통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과 수준이 비슷해서 윤 교사는 수업을 준비할 때 초등학교 저학년 SW 수업을 많이 참고했다. 그 결과 교사도 보람 있고, 학생도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수업을 만들 수 있었다.

교사의 노력은 필수
대개 학생들은 수업을 듣고 나면, 내용을 대부분 이해한다. 다음 수업 시간에도 전부는 아니지만, 이전 수업 내용의 많은 부분을 기억한다. 그러면 교사는 지난 수업보다 조금 더 깊이 있는 내용을 가르칠 수 있고, 지적으로 성장한 학생들을 보며 보람도 느낀다. 첫 수업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던 학생도 다음 수업 시간에 같은 질문을 받으면 대답할 수 있다. 일반 학교에서는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선혜학교는 정신지체아동 대상의 특수 학교다. 교사가 아무리 열심히 수업해도 학생들의 반응이 다르다. 매 수업마다 비슷한 내용을 가르쳐도 매번 처음 듣는 것처럼 반응하니 맥 빠지는 기분이 들지는 않을까?

“물론 일반 학생만큼 눈에 띄는 변화는 찾기 힘들어요. 하지만 매우 소수라도 수업할 때마다 향상되는 학생들이 보여요. 짧은 시간에 큰 변화는 없지만, 장기간으로 보면 미미하게나마 차이가 분명히 나타나거든요.”

어떤 과목이든 마찬가지지만 특수학생과 SW수업을 할 때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사고력이 향상되는 모습이 바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교사는 처음부터 특수학생은 일반 학생보다 훨씬 느리게 배운다는 생각으로 지도해야 한다.

윤 교사는 선혜학교에 오기 전에 일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수업해 본 경험이 있다. 정보올림피아드를 준비반을 담당했던 적도 있다. 일반 학교와 특수학교 두 군데서 수업을 해봤으니 SW 교육의 방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정식 교과가 되고 시험을 보게 되는 순간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들이 많아져요. 일단 시험은 잘 봐야 하니까 그냥 외우려고 하게 되지요. 교사는 학생들이 SW 수업을 들을 때 시험을 잘 보려고 하기보다는 수업 자체에 재미를 느끼도록 해야 해요. 그래야 궁극적으로 절차적 사고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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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2호 수학동아 정보

  • 조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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