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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소설 I 멋진 신세계] 영웅의 아들 제1화

“너희 아빠는 영웅이었어.”

평생 이 말을 듣고 살았다. “너희 아빠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영원히 우주를 떠돌게 됐을 거야.”

본 적도 없는 아빠였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자연히 어깨가 으쓱거렸다. 어딜 가서 자기소개를 해도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지거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낯선 사람도 제하림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곧바로 반갑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네가 그 분의 아들이구나….”



그게 하림이 살아가는 힘이었다. 그런 말로 아빠와 엄마가 없는 설움을 달랠 수 있었다.

그래도 마음이 허전할 때는 학교 옥상에 혼자 올라가서 아빠가 구해냈다는 세상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옥상 위에서는 시야가 멀리까지 탁 트였다. 사무실 건물과 주택가, 공원이 깔끔하게 정돈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기묘하게도 땅이 멀어질수록 둥글게 위로 말려올라가고 있었다. 가장 멀리 보이는 건물은 하림이 보기에는 수평으로 누워 있었다.

그 뒤부터는 높은 천장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하림은 자신의 머리 위쪽 천장 너머에 거꾸로 매달린 도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만약 앞을 향해 쭉 걸어간다면 한 바퀴를 돌아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밖에서 본다면 도넛의 안쪽을 쭉 걸어서 한 바퀴 도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우주에서도 사람과 건물이 땅, 정확히 말하면 도넛 모양의 안쪽 껍데기에 붙어 있을 수 있는 건 도넛이 회전하면서 생기는 원심력 덕분이었다. 그게 하림이 평생 동안 알고 지낸 유일한 세상이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신세계 호’라고 불렀다.

지구를 떠나 낯선 행성으로 가고 있는 신세계 호는 그 자체로 인구 10만 명이 사는 도시였다. 지구를 떠난 지는 벌써 700년이 돼 가고 있었다. 처음에 출발한 사람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그 후손들이 살았다.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는 앞으로 80년. 지금 15살인 하림도 도착할 때까지 살아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아마도 하림의 아들이나 손자쯤 돼야 행성이라는 곳에 발을 디뎌볼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도착하면 사람들은 그곳을 제2의 지구로 삼아 뿌리를 내릴 계획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목적지가 가까워지면서 개척할 행성을 더 자세히 관측할 수 있었는데, 지구에서 관측한 결과와 많이 달랐던 것이다. 일단 그곳이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이라는 결과가 나오면서 신세계 호는 큰 충격에 빠졌다.

그러자 지금이라도 다른 행성을 찾아서 우주선의 진로를 바꾸자는 주장이 나왔다. 신세계 호는 앞으로 1000~2000년은 더 버틸 수 있으니 살기 좋은 행성을 찾아 가자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원래 계획대로 여행을 멈추자고 주장했다. 시간을 갖고 노력하면 환경이 나쁜 행성도 바꿀 수 있고, 하루라도 빨리 후손에게 새로운 터전을 마련해주는 게 낫다는 이야기였다. 이때 몇몇 과격한 사람들이 테러를 계획했다. 신세계 호의 엔진 하나를 폭파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면 우주선이 속도를 줄일 수 없어서 목적지를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이 엔진 테러 사건을 막은 사람이 제하림의 아빠인 제다검이었다. 엔지니어였던 제다검은 테러리스트를 방해해 폭탄이 엉뚱한 곳에서 터지게 했고, 폭발에 휘말려 희생됐다.

여론은 순식간에 한쪽으로 쏠렸다. 다른 행성을 찾자던 사람들은 의견을 접고 몸을 낮췄다. 제다검은 우주선을 구한 영웅이 되었다. 아내가 임신 중이라는 사연이 드러나자 모두가 눈물을 쏟았다. 몇 달 뒤 제하림이 태어났을 때는 신세계 호의 모든 사람이 주목하고 있었다.


15년 뒤.

삐릭~ 삐릭~

몇 초에 한 번씩 알림이 울렸다. 하림은 귀찮은 듯이 알림을 끄며 투덜거렸다.

“세상 사람이 전부 내 생일을 안다는 것도 참 피곤하구먼.”

신세계 호에서 제하림의 생일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해마다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도 한두 명이 아니었다.

삐릭~
알림이 또 울리자 주위에서 짜증 섞인 투덜거림이 들렸다. 가장 가까이 있던 김고율이 말했다.

“야, 단말기 좀 아예 끄면 안 되냐? 네 생일인 거 우리 반 애들 다 안다고. 유세할 필요 없잖아.”

“아, 그래? 난 또~. 축하한다는 놈 하나 없길래 아무도 모르는 줄 알았지. 큭큭.”

“아항, 그러셔? 축하는 배터지게 받고 있을 텐데, 뭘 우리한테까지….”

고율이 녀석이 빈정거리고는 다른 데로 가 버렸다. 다른 아이들도 이내 시선을 돌렸다.


그랬다. 신세계 호 전체로 보자면 제하림은 영웅의 아들이었지만, 학교에서만큼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신세계 호 최고의 엘리트 기술학교에 입학한 게 특혜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곳은 우수한 학생만 올 수 있는 최고의 이공계 학교였다. 졸업한 뒤에는 대부분이 신세계 호를 유지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중요한 일을 맡았다.

솔직히 말해서 제하림은 우수한 학생이 아니었다. 수업을 따라가기도 벅차서 성적은 항상 바닥이었다. 그래도 계속 다닐 수 있는 건 ‘마고’ 덕분이었다.

마고는 신세계 호를 운영하는 인공지능이었다. 신세계 호를 설계한 과학자들은 인간으로 이뤄진 사회가 수백 년 동안 변화없이 굴러가지 않을 거라고 보았다. 그래서 인공지능에게 그 임무를 맡겼다.

엔진 테러 직후 마고는 제다검의 아들을 보살펴주겠노라고 발표했고, 실제로 제하림이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학교도 좋은 곳으로 보내준 덕분에 하림은 기숙사에서 살며 공부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학급 친구들은 그게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교사들은 하림에게 친절했지만, 정작 친구여야 할 학생들은 쌀쌀맞게 굴었다. 하림은 기가 죽기보다는 반발심이 생겨 오히려 더 뻔뻔하게 굴었다. 따돌림당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삐리릭~ 알림 소리가 나자 또 다시 아이들이 하림을 노려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말기 알림이 아니었다. 책상 위의 화면이 켜지면서 알 수 없는 문구가 하나 떠올랐다.
 


 
‘이게 뭐지?’

갑자기 다들 조용해지더니 책상 위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하림이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에 아이들이 하나둘씩 단말기를 집어들더니 교실을 나가기 시작했다.

“어? 뭐야, 너희들 다 어디 가?”

하림이 고율이를 붙잡고 물었다. 고율은 혀를 차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어디 가긴? 수업 들으러 가지. 여기에 수업 장소가 나와 있잖아.”

“뭐? 이게? 수업 장소? 그게 어딘데?”

“나 참. 우리학교를 다니면 이 정도 암호는 풀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고율은 하림의 손을 뿌리치고 나가 버렸다.

“어, 자, 잠깐….”

순식간에 아이들이 사라져 버렸다. 하림은 하릴없이 혼자 서서 투덜거렸다.

“재수 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지들만 살겠다고. 지들이 멀쩡히 사는 게 누구 덕분인데….”

그때 누가 조용히 하림의 어깨를 건드렸다. 깜짝 놀라서 돌아보니 인희였다. 평소 조용하게 지내는 여자 아이, 하림과는 데면데면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인희가 조용히 단말기 화면을 보여줬다. 화면에는 교과서 표지가 떠올라 있었다.

유기화학.

인희는 다시 들어왔을 때처럼 말없이 나가버렸다.

‘아하! 그러고 보니 오늘 유기화학 수업이 있었지! 그런데 장소는 어디지? 그건 직접 알아내라는 건가? 힌트만 준 거야? 쳇.’

하림은 다시 책상 위에 떠 있는 문구를 쳐다보았다. 힌트를 봐도 금세 풀리지는 않았다.

‘저 숫자가 유기화학이라는 뜻이 되는 건가? 그러면….’

아이들한테 무시당한 게 화가 난 하림은 끈질기게 매달린 끝에 암호를 풀어냈다.

‘아…. 여기였군.’
 


 
그러나 이미 15분이나 지난 뒤였다. 수업은 벌써 시작하고도 남았다. 지금 들어가도 선생님은 하림을 꾸짖지 않을 테지만, 오히려 그게 더 싫었다. 아이들이 하림을 더 싫어하게 될 뿐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땡땡이나 치자.’

하림은 몰래 학교를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러려면 하나 뚫어야 할 게 있었다. 바로 마고였다. 마고는 하림이 5살 되던 해에 조그만 드론을 선물했다. 그 드론은 마고의 분신으로 하림은 언제든지 마고와 이야기할 수 있었다. 특별한 선물이었지만, 이럴 때는 족쇄였다. 학교 안까지 따라 들어오지는 않지만, 건물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마고가 들러붙었다. 둘도 없는 친구기도 했지만, 학교를 땡땡이칠 때면 엄마처럼 잔소리를 해댔다.

‘정문은 안 될 테고, 이번에는 서쪽 벽을 넘어 볼까?’

도넛 모양의 우주선 안이라 당연히 동서남북은 없었다. 그냥 방향을 나타내기 위해 정해 놓은 약속일 뿐이었다.

담을 넘는 건 쉬웠다. 넘자마자 학교 옆에 있는 공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소용 없었다. 100m나 갔을까. 어느새 뒤에 따라붙은 마고가 말을 걸었다.

“또 학교에서 도망친 거야?”

“에휴, 역시 소용없군. 신경 쓰지 말라고. 어차피 난 수업 들어도 이해 못하니까.”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해야지.”

“엄마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마고는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아직이야?”

“그래. 아직이야.”

사실 아까부터 하림이 기다리는 게 있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서 수백 개씩 들어오는 생일 축하 메시지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다. 유일하게 의미 있는 축하 메시지가 있었다. 바로 엄마가 보내는 편지였다.

하림의 엄마는 하림을 낳은 직후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수많은 사람이 이유를 궁금해하는 수수께끼였다.

그런데 매년 생일이 되면 손으로 쓴 편지가 도착했다. 어떤 경로로 오는지도 몰랐다. 우주선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출처를 알 수가 없었다. 마고조차도 편지 보낸 곳을 역추적하지 못했다. 엄마는 언제나 하림을 생각하고 있지만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만날 수 없다며, 하림이 그걸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매년 편지를 보낸다고 했다.

‘그런데 왜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 거야?!’

하림은 엄마가 원망스러웠지만, 뭔가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하며 참고 있었다.

한숨을 쉬며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는데, 뭔가 손가락을 찔렀다.

‘응? 이게 뭐지?’

꺼내 보니 쪽지였다.
 

‘아니, 언제?’

하림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쪽지를 펼쳐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의 편지였다. 그런데 평소와 좀 달랐다. 훨씬 짧은 데다가 시간이 없었는지 급하게 쓴 티가 났다.
 

 
엄마는 결코 자신이 어디 있는지, 무슨 일 때문에 만날 수 없는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래도 편지에는 항상 다정함이 묻어났다. 하림은 어딘가 꺼림칙했다. 매년 오는 편지와 달랐다.

“왜 그래?”

마고가 물었다.

“뭔가 이상해…. 뭔가 달라….”

“맞춤법이 많이 틀렸군.”

“맞아. 그것도 이상해. 엄마는 맞춤법을 절대 안 틀렸는데….”

그때 하림의 머릿속에 뭔가 떠올랐다. 하림은 마고를 보며 외쳤다.

“그래! 편지에 무슨 메시지가 숨어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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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호 수학동아 정보

  • 고호관 기자
  • 일러스트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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