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직선이 구부러지는 공간, 곡면에 두면 돼요.”
“구부러진 곡면?”
유클리드 공준은 구부러지지 않은 평평한 면이나 공간에서만 성립했다. 곡면에서 유클리드의 다른 공준은 여전히 성립하지만, 다섯 번째 평행선 공준이 성립하지 않았던 것이다.
“ 많은 수학자가 유클리드 아저씨의 공준을 증명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구부러진 공간에서는 다섯 번째인 평행선 공준만 맞아떨어지지 않았죠.”
단은 유클리드 이후의 수학자들이 유클리드의 기하학을 발전시켜 새로운 기하학을 만들었다고 덧붙여 말했다. 후대 수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유클리드의 공준을 그대로 유지하되, 특정한 조건에서만 성립하는 공준을 부정했다.
“평행선 공준이 달라진다고 다른 공준에 모순이 생기는 건 아니었거든요. 예를 들어 구면기하학이나 쌍곡기하학에서 다루는 공간인 구나 쌍곡면 위에서는 두 직선의 관계가 평면에 있을 때와 완전히 달라요.”
“또 다른 것도 있나요?”
“물론이지요. 이외에도 사영기하학, 복소기하학처럼 여러 종류의 기하학이 만들어졌어요. 단언컨대 최고는 리만 기하학이지요!”
“리만 기하학?”
“아저씨가 정립한 유클리드 기하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라고 하는데, 굽어 있는 공간에서 도형을 연구하는 거예요. 그중 하나가 독일 수학자 베른하르트 리만이 정립한 리만 기하학이에요. 리만은 정말 위대한 수학자예요. 약 10년 동안 어마어마한 업적을 이뤘거든요!”
“그렇군요. 저보다 더 훌륭한 수학자로군요….”
“하하, 그렇지 않아요. 리만이 위대한 수학자인 건 맞지만, 유클리드 아저씨가 없었으면 리만 기하학도 없었을 거예요.”
유클리드가 자신의 이론이 부정됐다는 사실에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이자 단이 황급히 덧붙여 말했다.
“리만 기하학에서는 평행선이 없어요. 어떤 직선 두 개는 무조건 한 점 이상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지요. 나중에 우주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시공간이 뒤틀리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도 도움이 됐답니다.”
단이 떠들고 있는 사이에 유클리드와 단이 서 있던 곳이 조금씩 뒤틀리며 곡면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내 두 사람이 서 있던 두 직선이 한 점에서 만나게 됐고, 그곳에 다음 장소로 이동할 수 있는 문이 열렸다.
“마침내 저 문이 열렸네요.”
단은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가는 곳마다 수학자가 갇혀 있었고, 그럴 때마다 단은 어떻게든 구출해내려 고군분투했었지만, 아무리 풀어내도 끝도 없이 문제가 나오니 문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최후의 적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문 너머에서 단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수학자가 아닌 마왕이었다. 누구보다 이 순간을 기다려왔던 단이었지만, 처음 마왕과 마주쳤을 때 느꼈던 두려움이 떠올랐다.
“후우, 드디어….”
그러나 마왕은 더 이상 무시무시한 모습이 아니었다.
스스스슥, 스스스슥.
“앗, 벽이 부서지고 있잖아?”
거대한 먼지 더미가 발밑으로 뚝 떨어져내려 쳐다보니, 벽이 무너지고 있었다. 벽이 무너지는 강도는 점점 더 심해졌다. 급기야 흩날리는 잿더미 때문에 눈도 뜰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꼬맹이 녀석, 대단하군. 여기까지 오다니”
마왕이 힘없는 목소리로 단에게 말했다.
“수학자들을 왜 가둬놓았어!?”
단이 마왕에게 물었다.
“세상에서 수학을 없애 버리려고. 수학처럼 논리적인 학문은 내 일에 방해가 된다!”
“그럼 도대체 왜 나를 이곳에 데려온 거야? 나는 수학자도 아니라고!”
“너를 잡아 온 이유? 너는 여기 가둬놓은 수학자만큼 재능이 있기 때문이었지. 더 이상 여기 있는 수학자 같은 사람이 나오지않게 했어야 하니까 싹부터 잘라내야 했지. 영리하다고는 생각했지만 탑 꼭대기까지 올라올 줄은 몰랐는데….”
마왕은 체념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순간 탑이 무섭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쾅쾅쾅쾅.
“잘 가라, 녀석아! 이번에는 내가 물러나지만 이게 끝은 아닐거다!”
“으아악!”
단은 탑이 무너지는 소리에 겁을 먹고 두 팔로 머리를 감싸 안은 채 소리를 질렀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적막함에 단은 고개를 들었다. 탑은 완전히 무너져 내려 더 이상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됐다. 그렇게 마왕과 마왕의 탑은 사라졌다.
지금까지 ‘마왕의 탑’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