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h Pioneer(매스 파이오니어)’를 만난 지난 8월 18일은 신일고의 개학날이었다. 교문을 들어서자마자 굵직굵직한 남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 학기의 활기찬 기운이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동아리 활동을 하는 수학교실에는 30명이 넘는 동아리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수학 동아리 취재 이래 가장 많은 학생들을 한꺼번에 만난 것 같았다.
사실 매스 파이오니어와 수학동아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4년 전 이들의 선배들도 수학동아에서 소개한 적이 있다. 지도교사인 이윤민 선생님은 처음 매스 파이오니어를 만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학생들과 함께 해왔다. 이 선생님은 “초창기 때보다 훨씬 더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이 자발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영재반과 연계해 더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수학자가 들려 주는 수학 이야기
매스 파이오니어의 정기 활동 중 하나는 수학독서활동이다. 수학자들이 자신의 이론과 연구, 그 역사적 배경과 후일담을 이야기하는 <;수학자가 들려주는 수학이야기>; 시리즈 책을 활용한다. 리만이 들려주는 적분, 오일러가 들려주는 최적화 이론, 네이피어가 들려주는 로그 등 88명의 수학자가 88가지 주제에 관해 이야기한다. 학생들은 관심 있는 주제를 자유롭게 골라 읽는다.
학생들이 먼저 책을 읽고 수학 독서활동 보고서를 제출하면, 선생님이 이를 읽고 평을 달아 준다. 각자 15분 내외의 발표를 준비하는데, 그 주제는 학생들마다 다양하다. 수학자의 삶에 대해 발표하는 학생도 있고, 그의 이론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는 학생도 있다. 발표 후에는 질문 시간을 갖고, 꼬리에 꼬리를 물며 심도 있는 토론을 이어간다.
수학독서 담당교사인 류재구 선생님은 수학독서활동에 대해 한 가지 원칙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학생들이 아직 배우지 않은 개념에 관한 책을 읽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수학 개념을 배우기 전에 이론의 역사적 배경과 탄생 과정, 실생활 속 활용 같은 내용을 수학자의 시선으로 먼저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개념을 모르기 때문에 처음엔 어려울 수 있지만, 나중에 수업에서 그 내용을 배울 땐 오히려 쉽게 접근할 수 있죠.”
“딱딱한 교과서와 달리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수학 개념을 알게 되니까 나중에 배울 때도 기억이 잘 나더라고요. 또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하면서 어려운 부분도 설명해 나가는 과정에서 저 스스로 더 잘 이해하게 돼서 좋았어요.” 3학년 정천영 학생의 말이다.
그냥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 안에 수학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수학 개념을 정리하게 된다. 또 수학자가 어떻게 문제에 접근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어 새롭다. 류 선생님은 “고등학교 수학을 막 시작하는 1학년들에게는 혼자서라도 꼭 수학독서활동을 해보길 추천한다”고 말했다.
어려운 수학을 쉽고 재미있게
매스 파이오니어는 ‘대한민국과학창의축전’, ‘수학문화축전’ 등 여러 수학 관련 축전에 참가한다.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수학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도 수학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매스 파이오니어는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수학의 신대륙을 개척한다는 의미의 동아리 이름처럼 이들은 수학 축전에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주제를 골라 다룬다. 평소 새로운 수학 논문을 자주 접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들의 눈빛에선 자부심과 함께 사명감마저 느껴졌다.
‘2014 대한민국과학창의축전’에서는 ‘파도반 수열’을 이용한 퍼즐을 선보였다. 파도반 수열은 첫 번째 항과 두 번째 항, 세 번째 항이 1이고 n번째 항을 P(n)이라고 했을 때, P(n)=P(n-2)+P(n-3)을 만족하는 수열이다.
영국의 저명한 수학자 이언 스튜어트가 수학으로 하는 재미있는 게임으로 소개했던 수열이기도 하다. 파도반 수열을 숫자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1, 1, 2, 2, 3, 4, 5, 7, 9, 12, 16 …
학생들은 이 수열을 초등학생도 금방 맞힐 수 있는 퍼즐 게임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도형으로 나타냈더니 수열에서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성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였다. 3학년 권용현 학생은 “수열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니까 숫자로는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를 통해 도형의 넓이 합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공식도 유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교내 축제에서는 TV 프로그램 <;더 지니어스>;에 등장한 게임인 ‘흑과 백’, ‘인디언 포커’ 등을 간단히 변형해 누구나 쉽게 수학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우리는 수학으로 동고동락하는 사이
매년 여름 매스 파이오니어는 ‘수학 영재캠프’를 떠난다. 올해는 8월 2일부터 4일까지 3일간 캠프를 진행했다. 첫째 날에는 ‘과학창조한국대전’을 관람하고, 둘째 날에는 국가기술정보연구원(KISTI)에서 슈퍼컴퓨터와 첨단과학기술연구망을 견학했다. 저녁 시간에는 학생들이 준비한 세미나를 진행하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마지막 날에는 해수욕장에서 함께 물장구를 치면서 놀기도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같이 활동해도 그럴 기회가 없잖아요. 과학창조한국대전에서는 다른 학교 학생들이 어떤 수학 부스를 준비하는지 관람객의 입장에서 볼 수 있었죠.” 이윤민 선생님은 매스 파이오니어 학생들의 견문을 넓혀 주고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
2학년 정영준 학생은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이라도 입시에 도움을 받기 위해 동아리를 들었는데 활동하면서 그런 생각은 잊어버렸다”며, “자유롭게 수학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3학년 김동현 학생도 “예전에는 공부에서 의미를 찾지 못했는데,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수학이 더 재미있어졌다”며, “학습 동기가 분명해지니 성적이 저절로 올랐다”고 말했다. 앞으로 이들은 또 어떤 수학의 신대륙을 찾아 떠날까. 매스 파이오니어의 탐험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