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깊은 바다 밑에 동화 속 주인공들이 살고 있다면?
잠잠한 심해를 가르며 멋진 새가 날아다니고, 백마 탄 왕자님이 공주를 만나러 바다 밑을 달린다고 상상해 보세요. 호주의 사진작가이자 스쿠버다이버인 안드레아스 프랭크는 전에 없던 새로운 세계를 사진에 담았답니다.
[왕자들이 궁전을 떠난 사이, 공주들은 정원에 모여 앉아 맛있는 케이크와 과일을 먹었지요. 서로 “우리 왕자님이 제일 멋있어!” 하며 자랑하다 보니, 금세 왕자님이 그리워졌나 봅니다.
이웃나라 왕자를 사랑한 공주도 있었습니다. 몰래 성을 빠져 나온 공주는 무작정 왕자를 찾아가기로 합니다. 평소 마차를 타고 다니던 공주가 백마에 우아하게 올라탔지요.
드디어 공주가 왕자를 만났습니다. 이웃나라의 신하들에게 들킬까 다급히 왕자의 손을 잡고 뛰어가는 공주가 왕자의 눈에는 너무나도 사랑스럽습니다.]
잠든 전함에 생기를 불어넣다
인공 어초는 물고기가 모여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줍니다. 덕분에 인공 어초 주변은 해양 생물이 가득해 스쿠버 다이버에게도 인기지요. 동화의 배경이 된 ‘USNS 호이트 반덴버그 장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수송선으로 쓰였던 배입니다. 지금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인공 어초로 사용되고 있지요. 전쟁 틈에서 미군의 물자를 날랐던 용감한 배가 플로리다 해안의 약 40m 밑에 고이 잠들어 있는 겁니다.
작가는 바로 이곳에 생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과 동식물을 그대로 옮겨왔답니다. 그러자 거칠고 투박하게만 보였던 낡은 배가 르네상스 시대 귀족의 궁전이 됐습니다. 사슴은 배 위를 뛰어 놀다 멈춰 서서 물고기가 신기한 듯 바라보고, 여자들은 정원에 모여 웃음꽃을 피웁니다. 성을 몰래 빠져 나온 공주는 마차 대신 말을 타고 사랑하는 왕자님을 만나러 길을 나섭니다.
[물고기떼를 따라 아름다운 바닷속을 노닐던 공주가 그만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주변은 온통 해조류로 둘러싸여 있고, 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들어와선 안 되는 곳까지 들어와버린 걸까요?
이 사실을 안 바다의 마녀는 공주에게 마법을 걸었습니다. 마녀의 저주로 공주는 그만 깊은 잠에 빠지고 맙니다. 공주의 잠을 깨울 수 있는 건 사랑하는 왕자님의 입맞춤뿐입니다.]
[백마 탄 왕자님이 해조류 사이를 헤쳐 공주를 찾으러 달려왔습니다. 살며시 다가가 공주에게 입을 맞추곤, 공주가 깰 때까지 숨기로 했지요.
왕자님의 입맞춤으로 마법에서 풀려난 공주는 물고기들에게 누가 마법을 풀어 줬는지 물었지요. 공주는 설레는 맘으로 왕자님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립니다.]
잠자는 바닷속의 공주
바다와 숲은 많이 비슷합니다. 흙과 돌, 다양한 식물과 동물들이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지요. 파란 하늘은 푸른 빛의 바닷물과 닮았고, 숲 속 이곳 저곳을 날아다니는 새는 바다 밑을 누비는 물고기와 닮았습니다. 자연의 매력에 흠뻑 취해 걷다 잘못 들어서면, 길을 잃기 십상이라는 것도 똑같습니다. 바닷속을 헤매던 공주가 마녀의 마법에 빠져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공주의 잠을 깨울 수 있는 건 오직 왕자의 입맞춤뿐이지요.
바닷속에 일상을 가라앉히다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프랭크
안드레아스 프랭크는 무척 열광적인 여행자다. 스쿠버다이빙과 사진에 대한 열정은 그를 전 세계로 이끌었다. 깊은 바닷속을 다니면서 그는 현실과 환상 사이의 새로운 세계를 꿈꾸곤 했다. 해초와 난파선, 인공 어초 사이에서 마주친 낯선 풍경에 익숙하고 생기 넘치는 일상을 포갰다. 그렇게 탄생한 게 바로 ‘가라앉는 세계’ 시리즈다.
특별한 건 사진뿐만이 아니다. 그는 뉴욕 같은 대도시가 아닌 깊은 바다 밑 한가운데서 전시회를 열었다. 고요한 바다 밑에서 난파선과 그 난파선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공존하도록 한 것이다. 그 분위기는 사뭇 신비롭기까지 하다. 기발한 아이디어의 주인공인 안드레아스 프랭크를 인터뷰했다.
어떻게 가라앉는 세계를 떠올리게 됐나요? 바다 밑 난파선과 생동감 넘치는 일상, 이 둘은 서로 굉장히 다르잖아요.
25살 때부터 저는 다이버로 활동했습니다. 전 세계의 바다에 가라 앉아 있는 난파선으로 다이빙을 많이 다녔죠. 아이디어가 떠오른 건 이집트 바다에 난파된 영국 군함인 ‘SS 띠슬곰’에 다이빙했을 때였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몹시 흥분했었죠. 마치 하나의 무대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 무대를 생기 넘치는 일상의 장면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정말 바다 밑에서 사람들이 숨 쉬며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떤 과정으로 이런 작품이 완성된 건가요?
이런 프로젝트에서는 사전 작업이 굉장히 많습니다. 촬영 전에 스태프들과 모여 모델들의 의상부터 조명, 소품, 구도까지 아이디어를 쏟아 놓고 장면 하나 하나 세세히 계획합니다. 그 모든 요소를 섬세하게 조합해 하나의 컨셉트를 완성하기 때문입니다. 촬영 날엔 미리 완성된 계획을 그대로 이미지에 담기 위해 노력합니다. 스튜디오에서 각 장면을 촬영한 뒤, 사전에 골라둔 깊은 바닷속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합성합니다.
예술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직하게 말하자면, 제 예술 작업은 자연에 의해 완성됩니다. 저는 늘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장면을 창조하고 싶습니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낯선 신비로움은 깊은 바닷속의 자연환경이 없었다면 표현할 수 없었을 겁니다. 수중 전시회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주변을 떠다니는 물고기들이 작품에 오래된 느낌의 녹청을 더해 더욱 독특한 느낌을 낼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제 작업에 있어 자연은 예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이버들이 작품의 배경이기도 한 난파선에서 열린 수중 전시회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