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지식] 네 번째 요리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로그와 햄버거

고독한 미식(美式)가의 식탁


 
한 끼 한 끼가 소중한 미식가지만,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한 끼 때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땐 햄버거만한 음식이 없습니다. 기다릴 틈도 없이 나타나 순식간에 허기를 채워주니까요. 느껴지는 익숙한 그 맛은 지친 혀를 달래줍니다. 건강엔 별로라지만, 우리가 햄버거와 영원히 헤어질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햄버거와 아주 닮은 식이 있다고 하는군요. 과연 오늘은 어떤 이야기가 식탁 위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을까요?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우리가 마주치는 수가 점점 거대해지고 있습니다. 수십 메가바이트에 불과했던 컴퓨터 하드디스크 용량이 테라바이트를 넘어섰고, 돈의 단위도 수십억이 우습습니다. 연필과 종이만으론 큰 수를 다루기 힘들죠. 그래서 계산기가 필요합니다. 계산기만 있으면, 복잡한 셈도 몇 번의 두드림으로 쉽게 풀립니다. 주문과 동시에 나오는 햄버거처럼 말입니다.

문제는 계산이야!

계산기가 없던 옛날에는 어땠을까요? 그땐 지금보다 작은 숫자만 썼을 테니, 연필과 종이로도 충분했을까요? 그렇진 않았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큰 숫자에 시달려온 분야가 있었으니, 바로 천문학입니다. 지금도 ‘천문학적’이라는 단어는 ‘엄청나게 크다’라는 뜻으로 통하고 있죠. 고대에는 천문학과 수학이 따로 있지 않았습니다. 거대한 우주의 크기를 다루는 일이 곧 수학이었죠.

망원경으로 더 멀리 더 많이 우주를 관찰하게 되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집니다. 볼 수 있는 거리가 급격히 늘어났고, 분석해야 할 자료도 감당 못할 만큼 쌓였습니다. 아주 큰 수를 처리할 ‘계산법’이 필요했습니다. 가장 문제가 된 건 곱셈이었습니다. 더하고 빼는 일이야 그럭저럭 할만 했지만, 태양까지의 거리를 제곱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사람들은 큰 수의 곱셈을 간단히 해줄 방법을 찾아 다녔습니다. 마침내 삼각함수를 이용하면 복잡한 곱셈이 비교적 쉬운 덧셈으로 바뀐다는 걸 알아냅니다.



르네상스가 무르익어 가던 16세기 말, 유럽의 천문학자들은 이 방법을 이용해 우주의 비밀을 하나하나 풀어 갔습니다. 당대 최고의 천문학자, 덴마크의 티코 브라헤도 그 중 한 명이었죠.

스승의 은혜는 끝이 없어라

티코 브라헤의 제자였던 요하네스 케플러는, 스승이 남기고 간 방대한 관측 자료를 분석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좋은 재료는 많은데 이걸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죠.
이때 케플러에게 로그의 동아줄이 내려옵니다. 로그를 씌우자, 공전주기의 제곱이 궤도 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바로 케플러의 제3법칙입니다. 케플러는 행성의 운동법칙에 관한 자신의 책을 존 네이피어에게 헌정합니다.

마법의 모자, 로그

비슷한 시기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도 간단한 계산법을 찾느라 열심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수학자는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계산을 좋아하던 존 네이피어였습니다. 그는 지친 마음을 달래고 싶을 때면 홀로 계산에 몰두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덴마크에 다녀온 지 얼마 안 된 절친 존 크레이그가 네이피어를 찾아옵니다. 덴마크에서 우연히 티코 브라헤를 만났던 크레이그는 브라헤가 쓰던 ‘계산법’을 네이피어에게 알려줍니다. ‘간단한 계산’을 추구하던 네이피어에겐 신선한 자극이었죠. 네이피어는 ‘거듭제곱’과 ‘삼각법’을 바탕으로 기발한 계산법을 발명해냅니다. 모든 양수를 1이 아닌 양수의 거듭제곱값으로 나타내고, 이 값이 덧셈과 곱셉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로그가 태어난 순간입니다.

8은 2의 세제곱입니다. 8에 밑이 2인 로그를 씌우면 3이 나옵니다. 로그는 이처럼 1이 아닌 양수를 다른 1이 아닌 양수의 거듭제곱수로 나타내는 표기법입니다. 특별히 밑이 10인 로그를 상용로그, 밑이 e인 로그는 자연로그라고 부릅니다. 보통 ‘로그를 씌운다’는 표현을 하는데, 그건 위에서처럼 어떤 수의 로그값을 구한다는 뜻입니다.



로그를 발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네이피어는 세상을 떠났지만, ‘로그의 전성시대’는 그때부터 시작됩니다. 수학자들은 상용로그 값을 계산해 로그표를 만들었습니다. 로그표만 갖고 있으면, 누구나 큰 수를 손쉽게 계산할 수 있었죠. 프랑스의 위대한 수학자 라플라스가 “로그 덕분에 천문학자의 수명이 2배는 늘었다”고 표현할 만큼, 로그는 계산에 걸리던 시간을 ‘천문학적’으로 줄여 줬습니다. 계산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로그는 가장 완벽한 ‘계산기’였습니다.

로그는 단위를 정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소리의 크기인 데시벨(dB), 산성도(pH), 지진의 강도(리히터)처럼 크기 간의 비율로 정해지는 값들은 로그로 단위를 정합니다. 예를 들어 데시벨이 2배 크면 실제로는 10배 큰 소리고, 리히터규모가 2만큼 크다면 1000배 더 큰 에너지의 충격이었다는 뜻입니다.

속도로 승부한다, 햄버거

빠른 계산을 위해 태어난 로그처럼, 햄버거도 ‘효율성’을 위해 태어난 음식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햄버거는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예전부터 비슷한 음식들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둥근 빵 사이에 두툼하고 기름진 패티를 끼워 먹기 시작한 건 100년 전쯤의 일입니다.

당시 미국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습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했습니다. 배움이 짧던 그들이 할 수 있는건 주로 거친 노동일이었습니다. 동시에 목장이 된 대평원에선 소고기가 끊임없이 생산됐습니다. 이미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미국 어디서나 소고기 가 넘쳐 났습니다.

하지만 젊은 노동자들은 예외였습니다. 소고기를 사먹기엔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습니다. 이때 목장주와 가난한 노동자를 모두 만족시킬 음식이 나타납니다. 값싼 고기에 갖은 재료를 섞어 맛을 낸 패티가 둥근 빵 사이에 끼어 있는 햄버거가 태어난 겁니다.

비록 값싼 고기를 갈아 만든 패티였지만, 허기진 노동자의 배에 기름기를 채워주기엔 충분했습니다. 둥근 빵에 끼어 있는 덕분에 어디서나 먹을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습니다. 남들처럼 식당에 앉아 마음 편히 식사를 할 수 없던 노동자들에게, 단돈 몇 센트면 공사장에서도 따뜻한 고기와 빵을 먹을 수 있는 햄버거는 축복이었습니다.

햄버거는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사업’의 원조이기도 합니다. ‘싼 값’을 유지하기 위해선, 누구나 쉽게 햄버거를 만들 수 있어야 했습니다. 똑같은 설명서와 냉동재료가 보급되자 언제 어디서나 쌍둥이 같은 햄버거가 만들어졌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항상 빨라야 한다고 속삭입니다. 멈춰 있으면 남들은 앞서가고, 너는 뒤쳐진다고 짐짓 협박을 하기도 하죠. 느긋하고 싶다가도 이런 소리를 들으면 겁부터 나고 스스로가 게으르게만 보입니다. 어느 음식보다 값싸고 빨리 허기를 채워주는 햄버거의 모습이 묘하게 떠오릅니다. 하지만 혹시 압니까? 빨리 빨리 무언가를 하려다보면, 로그처럼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를 생각해 낼지도. 유난히 지치고 힘든 오늘, 미식가의 선택은 햄버거입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5년 04월 수학동아 정보

  • 이한기(dryhead@donga.com) 기자
  • 사진

    포토파크닷컴
  • 사진

    위키미디어

🎓️ 진로 추천

  • 천문학
  • 수학
  • 물리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