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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는 의사에게, 의사는 수학자에게


 
올 여름, 전 세계를 뒤덮은 ‘에볼라 공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는 에볼라로부터는 아직 안전하지만,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2009년 신종독감, 최근 조류독감과 같은 질병은 사회 문제로 떠오를 만큼 심각했다. 수학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국내외 수학자들은 ‘질병 수리 모델’ 연구를 통해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 과연 수학은 질병의 질주를 막고 무고한 희생자를 구할 수 있을까.

전염병 감시는 수리 모델로


지난 11월, 에볼라로 인한 사망자가 5000명을 넘어섰다. 1976년 처음 에볼라가 발견된 이래로 이토록 많은 사람이 감염된 적은 처음이다. 풍토병 수준이었던 에볼라가 이제는 범유행병으로 발전하며 전 세계를 공포로 밀어 넣고 있다.

에볼라는 올 봄 서아프리카의 기니를 시작으로 주변 나라인 라이베리아, 시에라이온으로 퍼져 나갔고, 유럽이나 미국은 물론 이젠 아시아도 안심할 수 없는 상태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염되고 있는 에볼라는 기존의 다른 전염병과 어떻게 다른 걸까?

전염성이 강한 질병은 시간이 지날수록 환자가 새로운 환자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질병의 확산 속도를 줄이고 추가 발병을 막으려면, 감염 경로에 대해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수학자들은 먼저 에볼라의 특징을 분석해 새로운 변수를 추가했다.

전염병 수리 모델★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변수는 시간이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각 집단의 개체수가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수학자들은 서아프리카의 특별한 장례 문화를 고려해 기존 전염병 수리 모델에서 쓰던 변수를 재정비했다.

에볼라, 서아프리카의 특별한 장례 문화가 변수!

서아프리카는 문상객이 죽은 이에게 입 맞추는 풍습이 있다. 죽은 이에게 작별을 고하는 의식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 의식 때문에 에볼라의 감염자가 더욱 늘어났다. 에볼라가 환자의 침과 같은 체액을 통해 감염되기 때문이다.
죽인 이에게 입 맞추면서 문상객은 자연스럽게 환자의 침과도 닿았다. 또한 에볼라의 가장 치명적인 증상은 ‘내부 출혈’인데, 감염 환자는 대부분 내장이 녹아 입으로 피를 쏟으며 죽게 된다. 그런데 죽은 이를 씻기던 가족도 환자의 혈액이 닿아 에볼라 바이러스에 노출되며 전염 속도가 빨라졌다.

수리 모델★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논리를 알기 쉽게 정리해 나타낸 대표적인 도구다.

기본 변수로는 전체 사람 수 N, 시간 t, 전염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는 사람 수 S, 이미 전염병에 걸린 사람 수 I, 전염병에 걸렸다가 회복된 사람 수 R이 있다. 에볼라 모델에는 에볼라 환자와 접촉한 적이 있는 사람 수 E, 에볼라로 입원 중인 사람 수 H, 에볼라로 사망한 사람(장례를 치름) 수 F를 변수로 추가했다. 이를 근거로 에볼라 수리 모델을 다이어그램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변수를 모두 결정하면 이들의 관계를 설명할 수학식을 세워야 한다. 이때는 시간이나 공간과 같은 기본 요소 이외에도 바이러스의 잠복기가 있는지, 백신이 있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지난 10월, 미국 버지니아공대 생물정보학연구소는 학술지 ‘플로스 바이올로지’에 왼쪽과 같은 수학식과 함께 ‘에볼라 수리 모델’을 발표했다. 이렇게 복잡한 미분방정식은 주로 컴퓨터를 이용해 해를 구하고, 그 결과를 표와 그래프로 나타내 해석한다. 연구팀은 에볼라 수리 모델을 이용하면 에볼라 환자 발생 경로를 예측하고, 에볼라의 확산 속도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심장 연구도 수학으로 활발!

수학의 역할은 전염병이 퍼지는 과정을 예측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복잡한 생명 현상을 연구해 질병의 치료를 돕는다. 이렇게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 수학을 특별히 ‘생명수학’이라고 부른다.

생명수학은 수학을 바탕으로 생물학, 의학, 생리학은 물론이고 유체역학, 물리학, 컴퓨터 과학까지 분야를 넘나들며 진행하는 연구가 대부분이다. 개인적인 질병에 관한 주제만 해도 결핵, 당뇨병, 신종 독감, 심장 질환, 폐 질환 등 다양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심장 질환 연구가 활발하다. 예를 들어 몇해 전부터 심장의 움직임을 연구하고 있는 정은옥 건국대 수학과 교수는 이상이 있는 심장을 판별할 수 있는 방정식을 개발했다.

“혈액이 심장의 좌심실에서 나와 온몸을 돌고 다시 우심방으로 돌아오는 체순환 과정을 수학적으로 분석한 거예요. 실제로 심장 질환이 있는 사람과 정상적인 사람의 심장 운동이 어떻게 다른가를 의료진이 비교 ·분석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죠. 심장의 운동을 방정식으로 나타내면,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심장의 움직임을 그래프로 확인할 수 있어요.”
 

심장 방정식에서 변수는 압력(P), 혈류량(Q), 부피(V), 저항(R), 탄성력(C)이고, 각 변수가 달라질 때 혈액의 움직임과 심장 내의 혈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할 수 있다. 이 방정식은 판막의 역할을 분석하는 데도 쓰인다. 정 교수는 심장에서 판막이 없을 때 혈액 순환이 어떻게 가능한지도 연구해 논문을 발표했다.

태아는 수정 3~4주 뒤에 심장 판막이 생기는데, 판막이 생기기 전에도 혈액의 순환을 관찰할 수 있다. 이런 태아의 혈액의 흐름을 추적해 새로운 수리 모델을 설계한 것이다. 이러한 심장 방정식은 판막의 기능이 약해진 환자의 치료를 돕는 데 쓰인다.

심폐소생술, 지금 방법이 최선인가?

심장 방정식으로 출발한 정 교수의 연구는 새로운 심폐소생술에 대한 개발로 이어졌다. 심폐소생술이란 심장과 폐의 활동이 갑자기 멈췄을 때 실시하는 응급처치다. 구조자가 인공적으로 호흡을 돕고 심장 부위를 반복해서 압박해 동맥이나 정맥에 원활하게 혈액이 공급되도록 돕는 기술이다.

정 교수는 먼저 기존 심폐소생술의 성공률을 조사했다. 그 결과 병원 안에서는 심정지 환자가 심폐소생술로 살아날 확률이 약 10%, 병원 밖에서는 3% 정도였다. 정 교수를 비롯한 수학자들은 심폐소생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심폐소생술을 개발하고자 했다. 수학이론 중 하나인 최적제어이론을 활용했다. 최적제어이론은 기존 체계에 대하여 그 입력값에 따라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하는 데 쓰인다.

그 결과 심폐소생술은 몸무게에 따라 압박 부위를 달리하는 게 좋다는 결론을 얻었다. 어린아이와 같이 몸무게가 적게 나가는 경우는 가슴 압박에 집중하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경우는 가슴 압박과 동시에 복부 압박을 하는 게 살아날 확률이 더 높았다.

생명을 구하는 수학

생명을 구하는 수학은 생태계 연구에서 시작했다. 1925년 이탈리아의 수학자 비토 볼테라와 미국의 생물학자 알프레드 로트카가 만든 ‘로트카-볼테라 방정식’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대표적인 수학식이다. 이 방정식은 미분방정식의 한 종류로 생태계에서 먹는 자와 먹히는 자의 관계를 나타내면서 자리를 잡았다.

예를 들어 활발한 어업 활동으로 한 종류의 물고기 수가 감소하면, 그 물고기를 잡아먹는 상어의 수도 따라서 감소한다. 둘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를 수학적으로 설명하는 게 바로 ‘로트카-볼테라 방정식’이다.

로트카-볼테라 방정식은 발전을 거듭해 전염병 연구에도 쓰이기 시작했다. 특히 전염병이 집단 안에서 퍼지는 모양과 속도를 설명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이후 수학자들은 이 방정식을 기초로 독감, 홍역, 에볼라와 같은 전염병을 이해하기 위한 수리 모델을 세우기 시작했다.

1972년 스코틀랜드의 수학자 윌리엄 컬맥과 예방역학자인 앤더슨 맥켄드릭은 로트카-볼테라 방정식을 활용해 SIR 모델을 만들었다. 감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을 S, 감염된 사람들의 모임을 I, 회복된 사람들의 모임을 R이라고 하고, 세 모임 사이에서 전염병이 어떻게 전파되는지를 보여 준다. 이 모델은 전염병이 유행하는 초기 환경 조건과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퍼져나가는 확산 정도를 예측한다. 앞에서 다룬 에볼라 수리 모델은 SIR에 변수 3개를 더 추가한 것이다.
 

더 나아가 인체를 분석해 질병을 알아내려면 혈액 같은 유체의 움직임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로트카-볼테라 방정식 외에 ‘나비어-스톡스 방정식’을 함께 사용한다. 영국의 수학자 조지 가브리엘 스톡스가 물의 흐름을 수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만든 식이다. 여기에 프랑스의 물리학자 클로드 루이 나비어가 실험 결과를 토대로 식을 완성했다.

이를 이용해 심장을 최초로 수학적으로 분석한 사람은 미국 뉴욕대 부속 쿠랑 수리과학연구소의 찰스 페스킨 박사다. 페스킨 박사는 1977년 사람의 심장을 2차원 수리 모델로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 모델을 바탕으로 슈퍼컴퓨터로 방정식의 근사해를 구하면 심장 기능을 분석할 수 있다. 페스킨 박사는 최근 심장을 3차원 수리 모델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같은 연구 성과는 우리나라 연구자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시작된 수학 이론은 오늘날 자연의 신비한 현상 중 하나인 인체와 질병의 수수께끼를 조금씩 풀어내고 있다. 미래에는 병으로 죽는 사람이 없도록 수학이 우리의 생명을 지켜줄 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

2014년 12월 수학동아 정보

  • 염지현(ginny@donga.com) 기자
  • 사진 및 도움

    정은옥 교수
  • 사진

    R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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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tockPhoto
  • 사진

    동아일보
  • 사진

    포토파크닷컴
  • 자료출처

    질병관리본부 전염병대응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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