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물줄기
최근 어느 일요일, 아이들과 함께 런던 북부 하이게이트 지역을 찾아갔다. 나들이의 목적지는 그 동네에 있는 웅장한 공동묘지였다. 하이게이트 공동묘지는 1835년에 만들어진 빅토리아 시대 유적으로, 현대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역사적 인물 여럿이 묻혀 있는 자리로 유명하다. 조지 엘리엇, 존 걸스워시, 크리스티나 로세티 같은 문인은 물론이고, 마이클 페러데이와 허버트 스펜서와 같은 과학자, 그리고 역사학자인 에릭 홉스봄 등의 묘를 볼 수 있다.
우리도 여러 유명 인사들의 묘비를 읽고 고풍스러운 석상을 감상하며 비교적 한적한 오후 산책을 즐겼다. 도시 안에서도 조용한 동네에 위치한 넓은 터에 초록이 우거져 있어 런던에서는 일종의 자연 오아시스로도 알려져 있다.
그런데 잔디 사이를 혼란스럽게 가로지르는 작은 흙길 중 하나에 윌리엄 킹던 클리퍼드와 그의 아내 루시의 겸허한 묘비가 세워져 있었다. 1845년 5월 4일에 태어나 1879년 3월 3일에 작고했다는 글 아래에는 ‘나는 존재하지 않다가 태어나서 사랑하고 조금 일한 후에 없어졌고, 슬퍼하지 않는다’라는 조용한 시구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50년 후 죽은 그의 아내 이름 아래에는 ‘보라, 이런 찬란한 은빛 물줄기 둘이 만날 때면 주위 강변의 영광이리라’라는 셰익스피어의 문장이 인용돼 있었다.
클리퍼드는 내가 예전에 일하던 런던대학 수학과의 역사에서 수학적 귀납법을 체계화한 오거스트 드모르간이나, 현대 행렬이론을 정립한 중심인물인 제음스 조셉 실베스터와 함께 전설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수학자다. 하지만 가공할 독창성이 풍부했던 그는 결핵과 과로가 겹쳐 학문적 전성기에 요절했다. 1882년 출판된 논문집 표지에는 ‘그가 살았더라면 우리가 무언가 이해했을 것이다’라는 인용문이 삽입돼 있다.
나는 최근 그의 논문집을 보면서 클리퍼드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론에 대해서도 선견지명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1876년에 출판된 그의 논문 ‘물질에 대한 공간이론’을 보면, 리만 기하학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 후에 다음과 같은 4가지 주제를 제시했다.
❶ 공간의 미세적인 구조가 언덕과 웅덩이의 결합처럼 구겨져서, 보통 공간기하의 원리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
❷ 이런 공간의 곡률은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파동처럼 전해진다.
❸ 관측할 수 있는 물체의 운동은 이런 곡률의 변환 작용으로 설명될 수 있다.
❹ 물질세계에는 이와 같은 변환 현상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해서 아인슈타인보다 30년 전에 그런 상상을 했는지 짐작이 되지 않을 정도다. 그래서 공간의 구조에 대한 이런 제안과 클리퍼드의 신비한 대수와의 연결점을 생각하게 되었다.
-1의 제곱근
클리퍼드가 발견한 새로운 수 체계 이야기는 수의 확장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수 가운데 1, 2, 3과 같이 쉬운 수도 있지만, 공부할수록 해석하기 어려운 수들이 점점 많아진다. 가령 음수만 하더라도 처음 배울 때는 조금 까다롭다. 그것은 수를 ‘양’으로만 해석하려고 고집했을 때 만 나는 어려움이다. 수를 ‘방향’과 결합해서 생각하기 시작하면 이러한 어려움은 금방 해결된다. 어떤 원점으로부터 출발해서 한쪽 방향으로 거리를 측정할 때, 양수를 쓰면 반대 방향으로의 거리는 음수로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따라서 요즘은 고층 건물 엘리베이터 안에 1, 2, 3 층과 함께 -1층, -2층 등이 적힌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유럽에서는 미적분학의 개발과 함께 음수의 사용이 정착됐다고 한다. 즉, 증가와 감소의 방향성을 생각하면서 수 자체의 방향성이 자연스럽게 느껴진 듯하다. 또 물건을 쪼개는 작업에 익숙하면 분수의 개념은 오히려 쉽다. 그런데 한층 더 고등한 사고를 요구하는 것이 무리수다. $\sqrt{2}$만 하더라도 유리수가 아니라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사람들을 상당히 괴롭혔다. 그러나 변의 길이가 1인 정사각형의 대각선 길이가 $\sqrt{2}$가 되는 별수없는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이런 무리수를 받아들이게 한다.
사실 무리수 가운데 가장 간단하다고 할 만한 제곱근은 이미 엄청난 유용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1의 제곱근 $i$는 16세기 중반에 지롤라모 카르다노에 의해서 발견돼 $a+bi$꼴의 복소수 체계의 초석이 됐다. 애당초 동기는 다항식의 해를 표현하는 것이었지만, 20세기에 와서는 양자역학이 개발되면서 복소수가 자연계에도 존재함이 밝혀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복소수가 지수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e}^{i}$ 등의 수가 양자역학에서는 꼭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의 복소수 제곱은 다음과 같은 희한한 등식을 만족한다.
${e}^{a}$+${e}^{bi}$=${e}^{a}{e}^{bi}$=${e}^{a}(cos(b)+isin(b))$ … ❶
여기서 ${e}^{a}$는 보통 실수 지수를 가지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지만, 순허수 지수를 가진 ${e}^{ib}$는 $cos(b)+isin(b)$가 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예를 들자면 ${e}^{πi}$=-1과 같은 식도 성립한다.
허수 지수가 양자역학에서 필요한 것은 핵 주위를 도는 전자의 상태를 나타내는 슈뢰딩거 방정식 때문이다. 양자역학은 전자의 상태를 시공간의 함수 $φ(t, x, y, z)$로 묘사하는데, 슈뢰딩거 방정식은 다음과 같은 꼴의 식이다.
$i\frac{h}{2π}\frac{∂ψ}{∂t}+\frac{h²}{8π²m}[\frac{∂²ψ}{∂x²}+\frac{∂²ψ}{∂y²}+\frac{∂²ψ}{∂z²}]-\frac{C}{\sqrt{x²+y²+z²}}ψ$=0 … ❷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이 방정식을 풀었을 때 전자의 상태가 시간 $t$에 따라서 $φ(t, x, y, z)$=${e}^{ct}f(x, y, z)$와 같은 식으로 변해간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지수함수의 성질에 의해서 상수 $c$가 0이 아닌 실수인 경우에는 시간 $t$가 커짐에 따라서 해는 0($c$<0 경우)이나 무한대($c$>0 경우)에 가까워진다. 따라서 핵 주위를 맴도는 평형상태를 나타내려면 $c=bi$꼴의 순허수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렇듯이 20세기 슈뢰딩거는 16세기 카르다노를 이용해 버리고 말았다. -1의 제곱근이 전자 상태의 수학적 기술에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미분의 제곱근
슈뢰딩거 방정식의 발견 몇 년 후, 양자역학과 특수상대론을 결합하려는 폴 디락의 노력에 의해서 또 다른 제곱근 하나가 주목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슈뢰딩거 방정식이 특수상대론에 위배된다는 사실에서부터 시작된다. 특수상대론에 위배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상대론에 의하면 관측자에 따라서 시간 좌표와 공간 좌표가 섞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을 따르는 미분의 차수가 다른, 그러니까 시간은 1차, 공간은 2차 미분이 들어간 슈뢰딩거 방정식은 엄밀하게 보면 성립할 수 없다.
상대론적 원리를 철저히 반영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정식인 클라인-고든 방정식도 다음과 같은 꼴로, 시간과 공간의 미분차수가 같다.
$\frac{1}{c²}\frac{∂²ψ}{∂t²}-\frac{∂²ψ}{∂x²}-\frac{∂²ψ}{∂y²}-\frac{∂²ψ}{∂z²}-m²c²ψ$=0 … ❸
($m$은 입자의 질량, $c$는 빛의 속도)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이 방정식의 해가 입자의 공간 분포를 나타내기 위해서 시간에 대한 미분이 1차를 넘어가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디락은 클라인-고든 방정식을 다음과 같이 바꾸자고 제안했다.
($A\frac{1}{c}\frac{∂}{∂t}+B\frac{∂}{∂x}+C\frac{∂}{∂y}+D\frac{∂}{∂z}+mc$)×($A\frac{1}{c}\frac{∂}{∂t}+B\frac{∂}{∂x}+C\frac{∂}{∂y}+D\frac{∂}{∂z}-mc)ψ$=0 … ❹
그러면 방정식의 일부, 즉 ($A\frac{1}{c}\frac{∂}{∂t}+B\frac{∂}{∂x}+C\frac{∂}{∂y}+D\frac{∂}{∂z}-mc)ψ$=0만 만족하는 함수 $ψ$는 저절로 클라인-고든 방정식을 만족하게 돼, 후자보다 더 근본적인 1차방정식이 생긴다. 이것이 바로 디락 방정식이다. 그런데 방정식 ❸이 ❹와 같이 쓰이려면 거기 나타나는 미분 작용 사이에 다음과 같은 관계가 성립해야 한다.
($A\frac{1}{c}\frac{∂}{∂t}+B\frac{∂}{∂x}+C\frac{∂}{∂y}+D\frac{∂}{∂z})²$=$\frac{1}{c²}\frac{∂²}{∂t²}-\frac{∂²}{∂x²}-\frac{∂²}{∂y²}-\frac{∂²}{∂z²}$
즉, 시공간을 따라서 두 번씩 미분하는 과정 자체인 다음과 같은 제곱근을 구해야 한다.
$\sqrt{\frac{1}{c²}\frac{∂²}{∂t²}-\frac{∂²}{∂x²}-\frac{∂²}{∂y²}-\frac{∂²}{∂z²}}$
그리고 이를 구하기 위해서는 결국 다음과 같은 등식을 모두 만족해야 한다.
A²=1, B²=-1, C²=-1, D²=-1
AB+BA=0, AC+CA=0, AD+DA=0,
BC+CB=0, BD+DB=0, CD+DC=0
그런데 이런 등식을 만족하는 수는 보통수로는 불가능하다. 바로 이런 등식을 성립하는 수 체계를 19세기 중반에 클리퍼드가 발견했고, 그 체계가 지금은 클리퍼드 대수라 불리고 있다. 클리퍼드가 발견한 이 수 체계는 전자 상태의 내부 스핀을 설명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클리퍼드가 이런 대수를 공부한 동기와 시공간 제곱근 이야기는 9월호에 계속하기로 하자. 이러한 내용이 이 글을 학생들에게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창조적인 영감이 공부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지혜가 되길 염원하며, 클리퍼드 대수 이야기를 엮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