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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피아니스트가 된 수학 영재, 고희안 교수


재즈라고 하면 흔히 어두운 술집과 자욱한 담배 연기, 자유로운 예술가 등을 떠올린다. 그런데 오늘 만나 볼 재즈 피아니스트는 소위 말하는 모범생이었다. 심지어 수학 문제를 푸는 게 취미인 수학 영재였다. 재즈와 수학, 도무지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수학 영재가 재즈 피아니스트가 된 걸까?
 


이과생, 피아니스트가 되다

뿔테 안경과 단정한 옷차림, 선한 인상의 그를 만난 곳은 삼성동의 한 피아노 연습실이었다. 이곳에서 그가 이끄는 재즈 밴드 ‘프렐류드’와 합동 연습을 한다고 했다. 아무리 봐도 그냥 음악가 같았다. 그는 정말 수학을 좋아할까?

“중학교 3학년 때 수학의 즐거움을 알았어요. 학원에서 일본 도쿄대 본고사 수학 문제를 접했는데 재미있더라고요. 수학을 정말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했고, 곧잘 했던 것 같아요. 수험생 시절에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수학 문제를 풀곤 했어요. 제가 깔끔하게 정리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수학 문제를 풀면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라 스트레스도 풀리더라고요.”

그러다가 고2 때 처음 재즈를 접하고, 음악을 하겠단 결심을 했다. 하지만 음대를 준비하기엔 너무 늦은 시기였다. 고민 끝에 고려대 공대에 진학했지만, 2학년을 마친 뒤 자퇴하고 1년 동안 열심히 음악 공부를 했다.

“이후 과감하게 미국으로 떠나 버클리음대에 무작정 지원했어요. 지원 기간은 한참 지났는데, 직접 찾아가 당당하게 입학할 수 있는 방법이 없냐고 물어 봤지요. 교수들은 이런 제가 신기했던지, 아니면 간절해 보였던지 따로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줬어요. 그 결과 합격할 수 있었지요. 이런 일은 그 전이나 이후에도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운이 좋았다. 하지만 그냥 운이 좋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기회를 스스로 만들었고, 성실하게 수행한 결과 지금의 고희안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었다.

“남들보다 늦게 피아노를 시작했지만, 여러 경험들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어렸을 때 클래식 기타를 배운 덕분에 ‘음감’을 익힐 수 있었어요.

또 중3때까지 유도를 했어요. 덕분에 체력과 즉흥 연주에 필요한 민첩성도 배울 수 있었지요. 수학 덕분에 이성도 발달했어요.

클래식 기타와 유도, 수학.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음악에 필요한 감성과 체력, 이성을 키워 지금의 제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즉흥 연주란 수많은 경우의 수를 고려하는 것

재즈란 어려운 음악이란 편견이 있다. 고희안 재즈 피아니스트가 이끄는 재즈 밴드 ‘프렐류드’와 ‘고희안 트리오’의 음악을 들어보면 밝고 유쾌한 분위기에 듣기 편하다. 그가 생각하는 재즈란 무엇일까?

“재즈를 연주한다는 건 즉흥 연주를 한다는 걸 뜻해요. 재즈에는 똑같은 곡은 있지만 똑같은 연주는 하나도 없어요. 재즈 피아니스트는 매번 같은 곡을 다르게 연주해야 돼요. 어떻게 같은 곡을 매번 다르게 칠 수 있을까요? 전 즉흥 연주를 할 때 수학적인 방법을 활용해요. 수학 잘 하는 친구들이 재즈를 하면 진짜 잘할 걸요?”

인터뷰 중간, 생각지도 못한 대목에서 수학이 툭 튀어 나왔다. 이게 무슨 말일까?

“피아노는 88개의 건반으로 이루어져 있고, 음은 12개밖에 없습니다. 이 안에서 어떻게 연주할 것인가가 재즈의 관건입니다. 즉흥 연주라고 해도 아무렇게나 치는 건 아니에요. 정해진 코드 안에서 자유롭게 연주하는 거예요. 즉, 재즈란 ‘틀 안의 자유로움’이에요.

예를 들어 한 마디에 4개의 코드를 배열한다고 할 때 몇 가지 구성이 나올까요? 4!=4×3×2×1=24가지입니다. 즉, 한 마디 안에 4개의 코드를 쓴다고 할 때 24가지 구성이 나옵니다. 한 곡을 최소 32마디로 구성한다고 할 때, 이 32마디를 배열하는 경우의 수가 나오지요. 또 같은 구성이라고 해도 음의 강세에 따라 또 다르게 연주할 수 있거든요. 한 곡을 즉흥 연주하기 위해 정말 수많은 경우의 수가 탄생하는 거예요.”

그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매일같이 연습하고, 무대에서는 오히려 연습한 걸 다 잊어버린 채 자유롭게 쏟아낸다고 한다.

“재즈와 수학 사이에 공통점이 있네요. 재즈는 똑같은 곡을 끊임없이 변주하고, 수학은 한 문제에 여러 가지 풀이법을 적용해 보잖아요. 또 재즈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철저히 연습해야 매번 다른 연주를 할 수 있어요. 수학 역시 기본 공리를 정확히 익혀 둬야 여러 풀이법도 생각해 낼 수 있죠.”
 
 

수학 기자의 돌발 인터뷰

Q 즉흥 연주를 들어 보고 싶습니다!
A 하하! 원래 이렇게 갑자기 연주를 부탁하시면 안 되는데…. 혹시 작년에 <;미드나잇 인 파리>;란 영화 보셨나요? 그 영화에 나온 곡을 들려 드리죠.

Q 작곡 노트도 보여 주세요!
A 전 프렐류드의 6집에 수록된 곡을 모두 작곡했어요. 작곡도 수학적으로 하냐고요? 아뇨. 작곡은 전혀 계산하지 않고 떠오르는 악상으로 바로 만들어 내요. 이성이 아니라 감으로 하는 거죠. 제가 만든 곡은 만드는 데에 30분 이상 걸린 곡이 없어요. 재즈는 진실된 음악이에요. 솔직하게 내 얘기를 하는 거지요. 그런데 30분 이상 걸리는 건 꾸며 내는 것이고,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요.

Q 앞으로 계획을 들려 주세요.
A 음악 하는 사람이니 당연히 제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께 기쁨을 드리고 싶어요. 올해는 제가 속한 프렐류드 7집이 발매될 예정이에요. 프렐류드가 활동하는 동안 많은 재즈 밴드들이 해체됐어요.
 
전 한국 재즈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역할을 해나가고 싶어요. 현재 여러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있는데요, 학생들에게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롤 모델도 되어 주고 싶습니다.

또 음악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도움을 주면서 살고 싶어요. 피아노 건반을 두드릴 때 몸으로 전해지는 소리의 떨림을 통해 치유가 일어난다는 보고도 있어요. 그래서 병원 콘서트도 꾸준히 하고 있고, 지난 달엔 난치병 자선 음악회도 열었지요.
 

Q 진로를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려요!
A 자신이 꿈꾸는 미래와 부모님이 원하는 진로가 다를 수 있어요.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아요. 일단, 자신의 꿈이 진짜 하고 싶은 건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세요. 청소년기에 대충 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성급하게 진로를 정하지 마세요. 어떤 경험이라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 열심히 해 보는 거예요. 청소년기에 축적한 여러 경험들이 여러분의 진로를 결정하는 날이 올 거예요.

그러고도 정말 하고 싶다면, 가슴 속에 자신의 뜻을 품고 머리를 써야 합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때를 기다리며 방법을 찾아야 해요. 학생이라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혀 놓으세요. 그리고 때가 됐을 때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도전하세요.

2013년 02월 수학동아 정보

  • 김정 기자
  • 사진

    남승준(Studio AZA), 고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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