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서울 동대문에 위치한 클라이브 공연장. 수많은 관객들이 싸이의 콘서트에 열광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 시각 일본에서도 일본 팬들이 싸이 콘서트에 열광하고 있었고, 미국에서도 싸이가 신곡 ‘행오버’의 홍보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싸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빅뱅, 투애니원, 소녀시대 등 K-pop 스타들이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공연을 펼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홀로그램콘서트 전성시대
올해 1월, 클라이브 공연장이 개관했다. 이곳에서는 하루에 4번씩 싸이, 빅뱅, 투애니원이 각각 ‘강남 스타일’과 ‘젠틀맨’, ‘판타스틱 베이비’, ‘내가 제일 잘 나가’를 부르는 공연이 펼쳐진다. 바쁜 월드 스타들이 어떻게 매일 한자리에 모여 공연하는 걸까?
그 비밀은 ‘홀로그램 콘서트’에 있다. 클라이브는 홀로그램 전용관으로, 마치 진짜 가수가 등장한 듯 실감나는 공연을 볼 수 있다. 또한 일본 치바현에 위치한 YG 전시관에서도 홀로그램 콘서트가 매일 열린다. 덕분에 세계 곳곳의 수많은 팬들이 K-Pop 스타들의 공연을 좀 더 자주,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게 됐다.
사실 ‘홀로그램 콘서트’나 ‘가상 콘서트’ 등으로 불리는 공연은 몇 해 전부터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해에는 서울 강남역의 한 무대에서 소녀시대 가상 콘서트가 열렸다. 당시 언론은 소녀시대가 3차원 홀로그램으로 생생하게 구현됐다는 기사로 떠들썩했다. SM에서도 일본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홀로그램 전용관을 열고 엑소, 샤이니,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등의 홀로그램 콘서트를 상영하고 있다. 홀로그램 콘서트가 한류의 열풍을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홀로그램 콘서트의 열기는 해외에서도 뜨겁다. 지난 5월에는 미국 빌보드뮤직 시상식에서 2009년 사망한 마이클 잭슨의 홀로그램 콘서트가 열렸다. 사망한 지 이미 5년이 지난 마이클 잭슨이 실물과 똑같아 보이는 영상으로 부활해 무대 위에서 16명의 댄서들과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자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며 환호했다.
일본에서는 아예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캐릭터가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2007년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만들어진 가상의 캐릭터 보컬 하츠네 미쿠가 2010년 도쿄돔에서 홀로그램 콘서트를 연 것이다. 하츠네 미쿠는 진짜 가수가 아니기 때문에 미리 만들어 놓은 영상을 틀고 1만 명의 관객들 앞에서 콘서트를 했다. 도쿄돔에서 콘서트를 하는 것은 일본 가수들에게 하나의 꿈이자 영광으로 여겨질 정도로 도쿄돔은 상징적인 장소다. 이런 곳에서 진짜 가수가 아닌 가상의 캐릭터가 성황리에 콘서트를 열면서, 홀로그램 기술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홀로그램 콘서트가 홀로그램이 아니라고?
<;스타워즈>;, <;아이언맨>;과 같은 SF 영화를 보면 홀로그램을 띄워 먼 곳에 있는 사람과 연락을 하거나, 컴퓨터 작업을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홀로그램 콘서트의 영상은 이런 영화 속 홀로그램과 같은 걸까?
홀로그램이란?
홀로(holo)란 그리스어로 ‘전체’를, 그램(gram)은 ‘정보’를 뜻한다. 즉 홀로그램이란 ‘전체 정보’란 의미로, 어떤 물체의 3차원 입체 정보를 완벽하게 보여 주는 이미지를 말한다. 실제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처럼 물체를 공간에 재현하는 것이다. 이때 홀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이나 원리를 ‘홀로그래피’라고 부른다.
홀로그래피는 사진이 이미지를 보여 주는 방법과는 원리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선 빛은 파동의 성질을 갖고 있는데, 파동을 이루는 파장에 여러 가지 정보를 담고 있다. 파장의 진폭을 통해 빛의 세기를, 파장이 변화하는 모습(위상)을 통해 빛이 어떤 시간에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알 수 있다. 즉 위상은 물체의 깊이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사진은 물체에서 반사된 빛이 렌즈를 통과하며 맺힌 상을 필름에 기록한다. 그런데 이때 중요한 빛의 정보를 잃어버리게 된다. ‘진폭’만을 필름에 기록하고 위상 정보는 기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상 정보 없이 세기 정보만 재생하면 입체는 구현할 수 없다. 따라서 사진은 2차원으로만 재생된다.
하지만 홀로그래피는 어떤 물체에 대한 빛의 세기와 위상 모두를 스크린에 기록하기 때문에 3차원 영상으로 재생할 수 있다.
홀로그램이 만들어지는 과정
❶ 레이저 빛을 둘로 나눈다.
❷ 두 빛 중 하나는 홀로그램을 기록하는 스크린에 직접 비추고(기준광), 나머지는 물체를 비춘 뒤 반사된 빛(물체광)이 스크린에 닿도록 한다.
❸ 기준광과 물체광이 같은 스크린에서 만나 간섭을 일으키며 간섭무늬가 스크린에 기록된다. 즉, 이 간섭무늬가 물체에 대한 빛의 상대적인 위상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이다.
❹ 간섭무늬가 기록된 스크린에 다시 기준광을 비추면, 스크린 뒤쪽에 홀로그램이 재현된다.
홀로그램 콘서트의 원리
놀랍게도 홀로그램 콘서트의 원리는 사실, 홀로그램의 원리와 전혀 관계가 없다. 따라서 홀로그램 콘서트는 잘못된 표현이다. 홀로그램 콘서트라고 불리는 것들은 대부분 ‘페퍼스 고스트’라고 불리는 홀로그램을 흉내낸 영상 기술로 만들어진다.
‘페퍼스 고스트’란 이름은 1800년대 극장에서 착시 효과를 이용해 연극 무대에 환영을 연출한 ‘존 헨리 페퍼’의 이름에서 따왔다. 페퍼스 고스트는 무대 위에 45°로 기울어진 투명한 스크린을 설치한 뒤, 이 스크린에 비친 영상이 마치 홀로그램처럼 보이도록 관객들의 눈을 속이는 기술이다. 스크린에 떠오른 영상을 본다는 뜻에서 페퍼스 고스트를 ‘플로팅 홀로그램’이라고 부른다. K-pop 스타들과 마이클 잭슨의 가상 콘서트가 바로 플로팅 홀로그램의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한편, 하츠네 미쿠의 콘서트는 또 다른 종류의 영상 기술이다. ‘프리 포맷’이라 불리는 이 기술은 무대 뒤에 설치된 프로젝터가 무대 위 스크린에 직접 영상을 비추는 방식이다. 프리 포맷의 스크린은 페퍼스 고스트에서 쓰이는 투명 스크린과 달리, 마치 모기장처럼 생긴 스크린에 영상을 직접 비춘다. 무대 구조를 복잡하게 설계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무대 설치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하지만 무대 뒤에서 프로젝터가 쏘는 빛을 관객이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에 현실감이 떨어지는 게 단점이다.
플로팅 홀로그램이 만들어지는 과정
① 무대 천정에 달린 프로젝터에서 바닥을 향해 미리 녹화한 영상을 비춘다.
② 무대 바닥에 있는 스크린으로 쏘여진 영상은 다시 무대 위에 45°로 설치된 투명한 스크린으로 반사된다.
③ 관객은 프로젝터나 바닥 스크린은 보지 못하고, 무대 위에 설치된 투명한 스크린에 반사된 영상만을 보고 허공에 영상이 등장한 것 같이 착각한다.
홀로그램, 어디까지 왔나?
홀로그램 콘서트에 진짜 홀로그램 대신, 눈속임 기술을 사용하는 이유는 뭘까? 현재 홀로그램 기술의 수준과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알아보자.
활발히 활용되는 정지 홀로그램
홀로그래피의 원리를 처음 생각해 낸 사람은 헝가리 태생의 영국 물리학자인 데니스 가보르다. 1947년, 그는 전자현미경의 해상도를 높이는 연구를 하다가 홀로그래피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런데 선명한 홀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빛의 간섭이 잘 일어나고 가느다란 빛으로 퍼지지 않으면서 멀리 나아가는 레이저가 필요하다. 하지만 당시에는 레이저가 발명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가보르는 수은등의 빛을 아주 작은 구멍에 통과시켜 빛의 간섭이 잘 일어나는 광원을 얻으려고 했다. 하지만 수은등의 빛은 너무 약하고 자꾸만 흩어져서 도저히 선명한 물체의 상을 기록할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당시에는 홀로그래피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이후 1960년대에 레이저가 발명되면서 가보르는 선명한 홀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됐다. 데니스 가보르는 홀로그래피의 원리를 발견하고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1971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주변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홀로그램은 홀로그램 스티커다. 신용카드에는 위조 방지를 위해 반짝거리는 홀로그램 스티커가 부착돼 있다. 음반이나 게임 CD 등에서도 정품을 인증하는 장치로 홀로그램 스티커가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홀로그램은 복제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다양한 곳에서 위조를 방지하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
홀로그램이 풀어야 할 과제
원래 홀로그램은 실제 보는 것처럼 어떤 각도에서 봐도 그 물체의 입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움직이는 홀로그램의 경우, 시야각이 최대 24° 정도에 불과하다. 이 시야각에서 벗어나면 영상을 볼 수가 없다. 게다가 화면 크기도 매우 작다. 그래서 홀로그램 콘서트에서도 진짜 홀로그램 대신, 눈속임 기술을 사용해 무대를 재현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2008년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이병호 교수 연구팀이 가로세로 약 4cm의 화면에 시야각 약 23°인 움직이는 홀로그램을 만들었다. 움직이는 홀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공간광변조기’라는 일종의 작은 화면이 필요하다. 공간광변조기 한 개의 시야각은 2~3°에 불과하기 때문에, 많은 연구팀들이 이 작은 화면을 여러 개 붙여 시야각과 화면의 크기를 넓히고자 시도하고 있다. 이병호 교수팀은 12개의 공간광변조기를 붙여 약 23°의 시야각 내에서 움직이는 홀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다.
움직이는 홀로그램이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화면의 크기를 키우고 시야각을 넓히는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또한 색상이 뚜렷하지 못하고 선명하지 못한 문제 역시 해결해야 한다. 이병호 교수는 “공간광변조기의 픽셀을 작게 만들어 홀로그램의 선명도를 높이면서 동시에 큰 화면을 만들어야 한다”며, “하지만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키기란 매우 어려운 문제”라고 설명했다.
영화 속 홀로그램과 같은 영상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려운 문제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홀로그램 기술은 3D 영상의 최종 목표로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연구 열기가 뜨겁다. 눈속임 기술이 아닌 진짜 홀로그램 콘서트를 생생하게 즐길 그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