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식 수학 교과서를 펴낸 피에르 헤리곤
우리는 각도를 표기할 때 ∠를 사용한다. 이 기호는 도형의 각을 의미하는 동시에 ∠AOB=60°처럼 각의 크기를 나타낼 때도 쓰인다.
각의 기호 ∠는 한눈에 봐도 각의 모양을 형상화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기호는 누가 처음 사용했을까?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 헤리곤은 1644년 자신의 책 〈수학 강좌〉에서 ‘∠’라는 기호를 처음 사용했다. 그는 이미 10년 전인 1634년에 동일한 책 〈수학 강좌〉에서 각을 표현하기 위해 '<’라는 기호를 사용한 바 있다.
사실 피에르 헤리곤은 우리에게는 좀 생소한 수학자다. 하지만 그는 〈수학 강좌〉라고 하는 6권의 수학 교과서 시리즈를 통해 수학 기호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 중 한 명이다. 〈수학 강좌〉시리즈는 대수나 기하학과 같은 순수수학은 물론 군사, 기계, 지리, 항해술 등에 쓰이는 수학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즉, 17세기에 쓰여진 백과사전식 수학교과서였던 셈이다.
이 책은 1634년 처음 나온 뒤, 1644년에는 두 번째 판이 출간될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다. 특히 여러 수학자들의 논문이나 수학자들끼리 주고 받은 편지에도 이 책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될 정도로 널리 읽혔다.
삼각형, 수직, 각도의 표기법은 누가 만들었을까?
다시 각의 기호 ∠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 피에르 헤리곤은 기호 ∠를 고안하기 전에 각을 표현하기 위해 이미 기호 ‘<;’를 사용했다. 그런데 왜 기호 ∠를 다시 만든 것일까?
17, 18세기에 ‘<;’는 각을 표현하는 기호로 종종 사용돼 왔다. 하지만 영국의 수학자 토마스 해리엇의 사후에 〈대수방정식 풀이에 응용되는 해석학적 기술>;(1631)이 출간되면서 문제가 생긴다. 이 책에서 부등호(<;, >;)가 사용되면서 혼동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각을 표현하는 기호 <;가 점차 사라지게 되자, 1644년 피에르 헤리곤이 각을 표현하기 위해 ∠를 처음 사용한 것이다. ∠가 각을 표현하는 기호로 정착되기 전에는 ∠를 두 개 겹친 기호(∠∠)나 ∠를 180° 회전시킨 기호 , 또 ∧, 가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1657년 영국의 수학자 윌리엄 오트레드가 기호 ∠를 사용하면서 일반화돼 현재까지 쓰이고 있다.
헤리곤이 처음으로 고안해 현재까지 쓰이고 있는 다른 기호에는 또 뭐가 있을까? 우리는 삼각형을 표현하기 위해 간단히 △ABC라고 쓴다. △ABC는 삼각형의 모양을 형상화 한 것으로, 이 기호 역시 원조는 해리곤이다.
그는 1644년 삼각형을 표기하기 위해 △abc를 사용했다. 현재 표기와 차이점이 있다면, 영어 알파벳 대문자가 아니라 소문자를 사용한 것이다. 현재는 삼각형이나 각도를 표현하기 위해 ∠AOB나 △ABC라고 쓰지만, 헤리곤은 ∠abc, △abc와 같이 소문자를 사용했다. 한편, 헤리곤은 1634년 〈수학 강좌〉책에서 두 직선이 서로 수직임을 나타내는 기호 ⊥를 처음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렇듯 각도, 삼각형, 수직을 표기하기 위해 여러 수학자들이 기호를 만들었지만, 현재 살아남은 건 헤리곤의 기호다. 그는 ∠, △, ⊥ 외에도 〈수학 강좌〉 시리즈를 통해 여러 새로운 수학 기호들을 선보이며, 수학 기호를 쓰는 것이 얼마나 유용하고 중요한지 강조했다. 그 결과 헤리곤은 누구보다 수학 기호의 중요성을 일찍 깨닫고 이를 알리기 위해 노력한 수학자로 오늘날까지 손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