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대의 면접시험
옥스퍼드대는 학부 교육의 큰 분량이 칼리지 단위의 ‘튜토리얼’, 즉 개별 지도를 통해서 이뤄진다. 따라서 입학도 칼리지마다 지원하게 되어 있고, 면접시험도 대부분 지원한 칼리지에서 진행한다. 물론 1지망과 2지망으로 두 개의 칼리지를 선택할 수 있고, 최종합격자를 결정할 때는 학과 중심으로 약간의 조정도 가능하다.
내가 속해 있는 머튼칼리지 경우에는 수학, 수학-통계, 수학-컴퓨터, 수학-철학 복수 전공을 다 포함해 약 10명을 선정했는데, 옥스퍼드대 전체로 보면 수리과학 전공을 통틀어 200명 이상 뽑는다.
옥스퍼드대 수리과학 전공은 학과가 주관하는 수리능력시험과 고등학교 학력을 토대로 먼저 지망생 중 절반 정도를 면접대상자로 정했고, 그 중 1/3을 합격자로 결정했다. 올해 입학사정에서는 예년에 비해서도 해외 지망생 선호경향이 더욱 두드러졌다. 머튼칼리지의 경우 합격자 10명 중 7명이 외국인이었고, 다른 칼리지도 비슷한 통계를 나타냈다.
학교 당국에서는 영국 중고등학교 교육의 위기를 반영하는 추세로 해석하기도 한다. 전 세계 청소년의 학업능력을 비교하는 PISA 시험에서 영국이 OECD 평균 정도에 머물고 있다는 결과가 최근 발표된 터라, 사회 문제로도 인식되는 것 같다.
그러나 국가적인 우려와는 상반되게 수학 교수들은 대부분 완전히 초연한 자세였다. 지난 달에 언급했듯이, 그들은 뛰어난 학생을 뽑고 싶은 것이지 국적에는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대학은 프리미어리그 축구 클럽과 비슷한 면이 있다. 영국 리그는 유럽에서 가장 개방적인 것으로 유명해서 유럽 전체, 남미,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유명 선수들을 매우 자유롭게 채용하기 때문에 사회 보수파의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뛰어난 실력발휘를 축구장에서 보고 싶은 국민의 열망이 현재로서는 애국심보다 앞선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나는 면접에서 n5-n 꼴의 모든 자연수들의 최대공약수를 구하는 문제와, 미적분학 기본정리를 탐구하는 문제를 주로 물어 보았다. 수학-철학 복수전공 지망생은 과학철학자 사이먼 선더스와 함께 만났는데, 수리논리 문제와 몇가지 까다로운 철학적 패러독스에 대한 질문도 곁들였다.
사라져가는 미지?
나라에 따라서 스포츠나 학문에서 자국 보호 의지를 반영하는 정책을 펴는 일은 종종 있다. 예를 들자면, 프랑스 축구연맹은 외국 선수 임용을 영국보다 꽤 심하게 규제한다. 프랑스 출신의 전 FIFA 회장 미셸 플라티니는 선수들의 국제 이동을 엄격히 조절하는 제도를 여러 번 제안한 적도 있다. 이와 비슷한 수학계의 동향으로 ‘불어로 수학하기’ 운동을 조직하는 프랑스 수학자도 여럿 있다. 그들은 영어권의 학계 장악을 걱정해서 논문을 불어로 쓰도록 권장하며, 프랑스에서 열리는 학회에서는 반드시 강의를 불어로 함으로써 영어조차 힘들게 배워온 아시아 출신 참석자들을 곤경에 빠뜨리기도 한다.
민족주의적 동기보다도 국제화가 문화 다양성을 파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영어권 우세를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에 의하면 1980년대까지도 영국이나 프랑스식 수학이 상당히 달랐고, 미국과 소련 역시 각자의 특이한 문화 사회적 환경을 원동력으로 자기들만의 수학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다양성이 수학의 원천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는 주장이다.
내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를 기억하면 설득력 있어 보이기도 한다. 한국의 체계적인 극기 위주의 공부 방식에서 출발한 내가, 대화와 아이디어의 자유로운 교환을 중요하게 여기는 미국 문화에 적응해 가고 있을 때였다. 당시 소련의 체제 붕괴와 더불어 모스크바 출신의 수학자들, 즉 겔펜드나 샤파레비치 학파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 덕분에 나도 그들의 공격적인 대화 스타일이 신비주의적인 논리 전개와 묘하게 결합될 때 나타나는 수학적 위력을 생생하게 경험했다.
모스크바에서의 겔펜드 세미나는 그런 식의 어수선한 논쟁을 바탕으로 한 번에 여덟 시간 넘게 진행되기가 일쑤였다. 수학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서툴렀던 나는 그런 부류의 수학자들과 마주치면서 겁에 질리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친절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을 왜 무서워했는지 의아하기도 한다. 그런 두려움은 미지와의 접촉과 밀접하게 연결되기 때문에 사람의 지적 소양을 넓히면서 키워 준다는 생각이다. 아무튼 그 당시 정수론을 공부한 학생들은 모스크바에서 매사추세츠공대로 건너왔다가, 지금은 시카고대에 자리잡고 있는 알렉산더 베일리손이 제시한 신비로운 가설의 영향을 충분히 받으며 자라났다.
당시 여행하기 어려웠던 소련은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노보시비르크 등의 도시별로 수학 문화가 서로 달랐다. 박사과정 첫 번째 지도교수였던 대수학자 이고르 프랜켈은 레닌그라드 출신, 그리고 지금 절친한 동료인 수리논리학자 보리스 자이버는 노보시비르크 출신이라 나는 간접적으로나마 소련을 넓게 체험한 셈이다. 지리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충격적인 미지가 없어져 간다는 섭섭함은 나 역시 가끔 느낀다.
로랑 라포르그 교수의 집중강좌
프랑스 고등과학원(IHES)의 로랑 라포르그 교수는 불어 쓰기 운동의 주동자 중 대표적인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1998년에 ‘랭글란드(Langlands) 프로그램’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필즈상을 받은 수학의 대가이다.
라포르그는 불어 문화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 교육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서양고전과 철저한 논리적 사고를 강조하는 엘리트 교육을 받고 자란 그는 현재 프랑스의 교육 민주화가 데카르트와 몽테뉴의 전통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걱정한다.
프랑스 고등과학원의 수학교수는 7명 중 2명만이 프랑스인이다. 미하일 그로모프 교수와 막심 콘체비치 교수 중심으로 러시아 출신 방문객이 항상 많기 때문에 러시아어가 상용어라는 농담도 자주 오간다.
나도 몇 년 전까지 여름에 자주 프랑스 고등과학원을 방문했다. 수학적으로 풍부한 환경이기도 하고, 미국에 살 당시에는 유럽 문화를 경험하기 편리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어느 해에는 그 당시 미국 유학 중이던 한국 대학원생 4명이 내가 있는 동안 그곳을 방문했다. 그들은 정수론의 중심 이론인 ‘에탈 코호몰로지’를 공부하고 있었는데, 내 도움을 받는다는 구실로 찾아왔다. 하지만 사실은 1960년대에 그 이론을 개발한 수학의 명인 알렉산더 그로텐디크의 본거지가 프랑스 고등과학원이었기 때문에 일종의 영감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 힘들게 찾아왔던 것이다.
그 학생들은 여름내 파리 안의 방 한 칸짜리 아파트를 빌려 합숙하면서 일주일에 2~3번은 나와 세미나를 하러 연구소로 등교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그곳 수학자들은 깊이 감탄하곤 했다. 자비를 들여서 프랑스로 올 만큼 열성적인 한국 학생들이 놀라웠고, 방학기간에도 밤중까지 연구소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태도가 여름휴가를 중시하는 프랑스 문화 속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나 보다.
이 학생들의 세미나를 계기로, 프랑스 고등과학원과 파리 11대학의 수학교수들이 의기투합해 2006년에는 아시아 출신 학생들을 위한 산술기하 여름학교를 대대적으로 개최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4명의 학생들은 훨씬 편하고 체계적으로 프랑스 고등과학원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라포르그 교수는 여름학교 개최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후, 무더운 여름에도 불구하고 10여 개국에서 모인 약 200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랭글란드 함수성’에 대한 명강의를 불어로 펼쳐 나갔다. 그런 가운데 겨우 알아들으며 영어로 질문하는 학생들을 위해 답변과 대화는 또 영어로 해 주기도 했다. 나는 한국 학생들을 데리고 한국어로 보충수업을 했는데, 그 비슷한 활동이 일본어, 중국어, 베트남어, 인도어로 진행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 계기를 마련해 준 4명의 한국 학생 장준명, 박지훈, 신석우, 서준규는 현재 울산대, 포스텍, 매사추세츠공대, 그리고 하버드대에서 교편을 잡고 활약하고 있다. 자기 문화에 대한 애착이 수학과 결합될 때는 배타적인 이유도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