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가 황급히 창문 쪽으로 달려와 밖을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대체 어디로 사라지신 거지?”
“설마 창문으로 납치를 당하신 건…?!”
폴이 불안한 얼굴로 중얼거리자 하루가 씩씩하게 말했다.
“일단 방 안에 단서가 있는지 살펴보자!”
미션 ❶ 의사 선생님이 남긴 단서! 납치범을 찾아라!
문득 의사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해진 폴은 간호사에게 물었다.
“의사 선생님은 어떤 분인가요?”
“성실하시고 환자들을 자상하게 돌보시는 좋은분이에요. 다들 선생님을 존경했지요.”
간호사의 말을 듣던 폴리스가 물었다.
“최근 의사 선생님께 이상한 점은 없었나요?”
“사실…. 음…, 아니에요.”
“네? 무슨 말을 하시려던 것 아니에요? 얘기해 보세요. 선생님을 찾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지도 모르니 빼놓지 말고 말씀해 주세요.”
간호사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수학 기면증 사태 때 가끔 누군가와 연락을 취하셨는데 얼굴이 안 좋아 보이셨어요.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별일 아니라며 피하시더라고요. 자세한 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폴리스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연구실에서 무슨 단서가 나오길 기대해 보죠. 폴, 피타, 하루. 다 같이 연구실을 조사해 보자.”
모두 힘을 합쳐 방을 샅샅이 뒤졌지만 별다른 것은 보이질 않았다. 피타가 지루한지 작은 책장에 기대다가 책장이 옆으로 밀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책장 아래 바닥에 영어 알파벳이 적혀 있고, 여러 다각형 조각들이 떨어져 있었다.
“응? 이건 뭐지?”
다각형 조각들을 살펴보자 이상한 점들이 눈에 띄었다. 먼저 폴이 입을 열었다.
“책장 아래 먼지가 수북한데, 이 조각들은 마치 최근에 올려 놓은 것처럼 깨끗하네…. 이상해.”
하루도 폴의 말에 동의하며 말했다.
“응, 진짜 뭔가 이상한 것 같아. 아무리 봐도 조각들을 실수로 떨어뜨렸다가 우연히 책장 밑으로 들어간 것처럼 보이진 않아. 조각들이 두 뭉치로 나눠져 깔끔하게 놓여져 있잖아.”
“이 조각들이 의미하는 게 뭘까? 책장 아래 숨겨 놓고, 혹시 누가 발견하더라도 그 뜻을 쉽게 짐작할 수 없도록 일부러 흐트러뜨려 놓은 것 같아.”
이때 폴리스가 말했다.
“A, D, H, M, Y? 이 알파벳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나와 폴리스, 하루는 이 조각들이 무슨 뜻일지 한번 고민해 보자. 피타와 간호사님은 연구실에 또다른 단서가 있을지 좀 더 살펴봐 주세요.”
미션 ❷ 한붓그리기로 문을 열어라!
폴 일행은 두 뭉치의 조각들로 만들 수 있는 두 영어 알파벳을 찾아냈다. 하지만….
“엥? 이게 뭐야? 정말 이 알파벳 두 개가 정답이야? 아무런 뜻도 없잖아!”
고개를 갸우뚱하던 하루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혹시 뭔가의 약자가 아닐까?”
“약자라고? 오, 그럴 듯한데? 그런데 뭐의 약자지? 좋아하는 사람? 음…, 이건 아닐 테고….간호사님, 혹시 짐작 가는 거 없으세요?”
하지만 간호사 역시 전혀 모르겠다는 답답한 표정으로 답했다.
“글쎄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요. 아! 혹시 그 비밀스런 전화와 관련이 있는 약자는 아닐까요?”
그때였다. 알파벳 형태로 맞혀진 조각들에서 빛이 나기 시작하더니 책장으로 가려져 있던 벽면도 함께 빛나기 시작했다.
“벽에서 빛이…. 뭔가 모양을 띠고 있는데요?”
다들 벽을 집중해서 바라봤다. 확실히 벽면에서 나오는 빛은 어떤 복잡한 도형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폴리스는 벽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평범한 의사선생님은 아니었던 것 같군. 어떤 조직에 연루돼 있었던 것 만큼은 분명해지는 것 같아.”
이 말에 간호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힘없이 주저앉았다.
“우리 의사 선생님이 나쁜 일과 관련이 있을 리가 없어요. 그럴 분이 아닌데….”
폴이 간호사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저희도 그렇게 생각해요. 나쁜 분이 그렇게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돌볼 리가 없지요. 의사 선생님의 명예는 저희가 꼭 되찾아 드릴게요.”
대화를 나누는 사이 벽의 도형은 어느덧 선명한 형태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리고 도형 위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한붓으로 그리면 열릴 것이다.”
모두 메시지가 뜬 것을 보고 당황해서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그러다가 폴이 입을 열었다.
“아까 그 조각들을 제대로 맞추면 이 도형이 떠오르도록 설계가 돼 있었나 봐. 의사 선생님도 이 사실을 알고 계셨던 게 분명해. 이걸 감추려고 책장을 놓으셨던 같아.”
“이 도형을 한붓그리기 하면 된다는 거지? 제법 복잡한데?”
하루는 벌써부터 손으로 벽면의 도형을 따라 열심히 그려 보고 있었다.
“언제까지 말만 하고 있을 거야? 의사 선생님이 더 멀리 사라지시기 전에 어서 서둘러. 한붓그리기 문제를 풀어야 다음 단서가 나타날 거 아냐?”
미션 ❸ 빨간 공을 가장 적은 횟수로 반대편 끝으로 옮겨라!
“됐다! 내가 한붓그리기는 자신 있다고 했지?”
하루의 발랄한 음성과 함께 은은하게 빛나던 도형에서 강력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어! 어어!”
강력한 빛을 막으려다가 정신을 잃은 폴 일행. 잠시 후, 눈을 떠 보자 연구실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어…, 어떻게 연구실에 이런 구멍이 생긴 거지?”
“아까 그 무늬는 시공간 이동 장치였던 것 같아. 알파벳 조각을 맞추면 시공간 이동 장치가 열리고, 한붓그리기를 통해 시공간 이동 장치를 작동시키는 것 아닐까?”
폴리스의 말에 폴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왜 그런 장치가 의사 선생님의 방에 있는 거야? 그럼 의사 선생님은 시공간 이동 장치를 통해 납치당하신 건가?”
하루는 친구들과 함께 구멍을 통과해 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글쎄, 이렇게 된 걸 보면 납치를 당한 게 아니라 자작극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
폴은 괜히 발끈해서 하루에게 소리를 질렀다.
“너는 왜 근거도 없이 의사 선생님을 의심하고 그러냐? 의사 선생님이 얼마나 좋은 분이신데, 너도 선생님이 환자들을 돌보는 모습을 같이 봤잖아.”
하루 역시 마음이 편하지 않은지 불편한 표정이었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 나도 의사 선생님이 나쁜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그래도 조사는 분명히 해야지.”
“피타피타!”
하루와 폴이 다투는데 피타가 소리를 질렀다. 피타는 어떤 괴상한 장치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 길쭉한 관은 뭐지?”
“관 안에 공들이 들어 있어. 한쪽 끝에는 빨간 공이…. 윽, 공이 사람처럼 눈을 깜빡이는 거 다들 봤어? 뭐…, 뭐지?”
길쭉한 관 안에는 초록 공들과 빨간 공이 들어 있었다. 빨간 공은 마치 진짜 눈처럼 깜빡거리며 다른 공들과 달리 진동하고 있었다. 이 눈이 진동하는 모습은 어쩐지 으스스하고 불길해 보였다. 빨간 공의 눈은 점점 더 강하게 진동하고 있었는데, 이 진동을 막기 위해서는 가장 적은 횟수로 반대 쪽 끝으로 옮겨야 한다는 내용의 설명이 적혀 있었다.
“진동이 점점 심해지고 있어. 곧 방이 무너질 것 같아!”
“어서 이 빨간 눈을 반대쪽 끝으로 옮겨서 방이 무너지는 걸 막자!”
미션 ❹ 14개의 조각을 8X8 정사각형으로 맞춰라!
관 안에 있는 빨간 공의 진동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공의 진동이 아무리 심해져도 관은 끄떡없어 보였다. 하지만 방의 흔들림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곧 방이 무너질 것 같아. 서둘러야겠어!”
“응! 이제 한 번만 더 옮기면…?”
“바닥이…, 바닥이 무너지고 있어!”
“으악! 무너진 바닥 사이로 관이 떨어졌어!”
폴 일행은 문제를 다 풀기도 전에 바닥이 무너지는 바람에 결국 눈앞에서 관을 잃고 말았다. 이제 폴 일행은 피할 곳도 없이 무너지는 방 안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방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흐흐흐~. 너희들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모두 땅 속으로 사라져라.”
“뭐…, 뭐야? 당신 누구야!”
하지만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너지는 바닥은 이제 폴 일행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탈출구도 없어. 어떻게 하지?”
“다들 조심해!”
드디어 폴 일행이 서 있던 바닥도 무너졌다. 이제는 비명을 지르며 속수무책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으아악! 폴리스! 폴리스, 이제 어떻게 하지?”
그때였다. 어디선가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해요. 제가 좀 더 서둘렀어야 하는데…. 늑장을 부리다가 여러분을 곤경에 빠뜨렸군요. 대신 여러분을 도울 물건을 먼저 보냈습니다. 낙하산이에요. 급하게 보내느라 조각나 있긴 하지만 수학 가디언즈 여러분이라면 쉽게 해결할 거라 믿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위에서 뭔가 떨어져 내려왔다. 조각천 같았는데, 빠른 속도로 추락하는 폴 일행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어서 조각들을 잡으세요. 총 14개의 조각들입니다. 이 조각들을 8×8정사각형으로 맞추면 낙하산으로 변해요. 어서 낙하산을 완성하세요!”
“누구세요?”
목소리는 더이상 답이 없었다. 폴리스는 목소리가 어딘지 익숙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일지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어서 낙하산을 완성해 목숨을 구하는 게 먼저였다.
MH 조직의 정체
폴 일행은 아슬아슬하게 낙하산을 완성해 간신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모두 무사한 걸 확인하자, 하루가 힘이 빠진 듯 주저앉으며 말했다.
“휴~, 살았다. 땅바닥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인 줄 몰랐어.”
“그런데 우리를 도와 준 사람은 대체 누구야?”
폴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갑자기 소리쳤다.
“목소리!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 것 같아!”
“뭐? 네가 아는 사람이라는 거야?”
그때 멀리서 다시 아까의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폴 군. 나를 믿어 줘서 고맙네. 난 모든 걸 되돌려 놓기 위해 이 일을 꾸몄다네. 자네들이 이 일에 휘말릴 줄은 몰랐지만, 수학 가디언즈라는 사실을 알고는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지.”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사라진 의사 선생님이었다. 폴은 의사 선생님을 보고는 반색하며 달려갔다.
“무사하셨군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반가운 표정의 폴과 달리, 의사 선생님은 어쩐지 무거운 얼굴로 폴을 맞았다.
“나는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좋은 사람이 아니야. 난 MaTh Hate라는 조직의 일원이라네.”
당황스러운 의사 선생님의 말에 폴 일행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그리고 폴리스가 중얼거리며 말했다.
“M과 H가 시공간 이동 장치의 열쇠가 됐군요.”
“MaTh Hate가 처음부터 나쁜 조직은 아니었다네. 비록 수학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모이긴 했지만, 수학을 좋아하기 위해 노력해 보자는 좋은 취지로 시작됐거든. 난 MH의 초기 멤버로, 우리 조직이 점점 좋게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봐 왔어. 그런데 점점 조직이 변질되기 시작했어. 이게 다 그 녀석 때문이야.”
“그 녀석이라니요?”
의사 선생님은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녀석은 우리 조직이 가장 좋을 때 들어왔어. 그리고는 사람들을 이간질하며 수학에 대한 공포와 증오를 되살려 놨지. 원래부터 수학을 싫어하던 사람들이라 금새 그 녀석의 꾐에 빠져들었어. 나는 그것도 모르고 사람들이 좋게 변화해 나간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어. 난 MH가 변질돼 가는 걸 막아 보려고 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지. 난 그냥 MH를 탈퇴하고 조용히 살려고 했어.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벌어졌어.”
“사건이요?”
“그래. 그 녀석이 드디어 수학 세계를 부숴 버리려고 술수를 쓴 거야.”
“수학 세계를 부숴버리려고 했다고요? 어떻게?”
“카오스. 그 녀석들을 기억하나?”
“카오스요? 일 년 전 우주를 떠들썩하게 만든 그 나쁜 놈들요? 그들이 MH와 연관이 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