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이었다. 그런데….
“악! 저리 떨어져!”
“이 끈질긴 큐피트 놈들!”
우주선을 둘러싼 큐피트상들과의 한판 승부! 어떻게 된 사연일까? 이야기는 하루와 함께 중력 역전 행성을 떠나던 때부터 시작된다.
미션 ❶ 절대 눈을 감지 마시오!
“꼭 가 보고 싶은 곳이 있네. 그곳에 데려다 주면 다음 번에 아무 소리 안 하겠네.”
데카르트의 고집스런 표정에 폴리스는 체념한 얼굴로 물었다.
“휴~, 알겠어요. 어디로 가고 싶으신데요?”
그러자 데카르트는 상기된 표정으로 답했다.
“1616년이라네.”
“왜 하필 그때로 가시려는 거예요?”
“허허. 그곳은 내 첫사랑과 처음 만난 곳이야.”
뜻밖의 대답에 폴리스는 물론이고 폴과 하루, 피타까지 깜짝 놀라 데카르트를 바라봤다.
“어험! 어서 가지.”
이렇게 도착한 데카르트의 첫사랑의 집.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분명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이라고 했는데 폐가였던 것이다.
“분명 이 집이 맞는데…. 어떻게 그 아름답던 저택이 이렇게 변한 거지?”
데카르트는 허둥지둥 대며 집 주변을 살폈다.
“저기 문이 열려 있어요! 들어가 보자!”
집안 역시 오랫동안 방치된 듯 먼지가 쌓여 있고, 여기저기 부서져 있었다. 게다가 웬 동상들이 집 안에 가득 차 있었다.
“큐피트상이네? 무슨 동상이 이렇게 많아?”
“여기 벽에 뭐라고 써 있어요! ‘데카르트, 조심해요!’ 응? 여기 왜 당신 이름이 써 있죠?”
다른 방으로 들어간 피타가 소리를 질렀다.
“피타피타!”
“피타, 왜 그래? 그 방에 뭔가 있어?”
폴과 데카르트가 피타가 있는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그곳에는 큐피트상이 유독 몰려 있었다. 그리고 벽면에 다음과 같이 써 있었다.
“데카르트, 제발 눈을 감지 마세…요. 큐피트에게서 절대 눈을 떼지 마세요.”
“뭔가 으스스하군. 내가 올 걸 알고 있었나?”
그때 문이 쾅 닫혔다. 그리고 데카르트가 비명을 질렀다.
“포…, 폴! 큐피트…, 큐피트를 보게!”
분명 방에 들어올 땐 아기같이 순진한 얼굴로 서 있던 큐피트 동상이 사악한 얼굴로 데카르트를 향해 무섭게 활을 겨누고 있었다.
“큐피트로부터 눈을 떼면 움직이는 것 같네.”
“뭐라고요? 절대 큐피트로부터 눈을 떼지 마세요! 여기 글이 있어요! ‘그들은 생각보다 빨라요. 어서 이 수식을 푸세요.’ 여기 이상한 수식이 있어요!”
“폴, 피타! 어서 수식을 풀게. 눈을 감지 않도록 노력해 보겠지만 오래 버티진 못할 거야.”
미션 ❷ 숨겨진 안전 통로를 찾아라
한편, 폴리스와 하루는 폴과 피타, 데카르트가 들어간 방으로 뒤따라갔지만 방문이 이미 닫힌 뒤였다.
“어떻게 하지?”
하루가 난감한 표정으로 폴리스를 쳐다보자, 폴리스는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
“다른 길이 있는지 집을 좀 더 돌아다녀 보자.”
하루와 폴리스는 복도를 따라 걸었다. 하루는 계속 으스스한 기분이 들어 폴리스에게 말했다.
“누가 자꾸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야.”
이때 앞쪽에 웬 핑크빛 방문이 보였다. 방문에는 ‘앨리스’라고 적혀 있었다.
“앨리스란 분이 데카르트 님의 첫사랑일까? 여기 무슨 단서가 있을지도 몰라. 들어가 보자.”
폴리스가 앞장서서 앨리스의 방문을 열었다. 그 방은 폐허로 변한 집과 달리 잘 정돈돼 있었다.
“여기 TV가 켜져 있어. 여자가 말을 하는데?”
TV에서는 아리따운 여성이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앨리스예요. 누군가 내 말을 듣는다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자기가 앨리스래.”
폴리스도 TV 앞으로 다가와 화면 속 영상을 주시했다. 화면에서 앨리스가 근심에 찬 얼굴로 얘기하고 있었다.
“만약 데카르트가 날 찾아왔다면 모든 게 시작됐을 거예요. 당신들은 이 집에 갇혔어요. 그들이 당신들로부터 우주선을 빼앗으려고 할 거예요.”
하루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폴리스도 눈이 휘둥그래졌다.
“설마 이 TV 속 앨리스가 우릴 향해 말하는 건…, 아니겠지?”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우주선을 타고 데카르트와 함께 이곳으로 올 걸 알고 있지?”
화면 속 앨리스는 계속해서 말하고 있었다.
“그들을 마주친다면 절대 눈을 떼지 마세요. 그렇지 않으면 그들처럼 변할 거예요. 하지만 인간은 눈을 깜빡일 수밖에 없는 존재예요. 절대 혼자 다니지 마세요. 이제 그들이 혼자 남은 날 발견하는 것도 시간문제예요.”
“그렇다면 앨리스는 이미….”
하루는 우울한 얼굴로 폴리스를 바라봤다. 폴리스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혹시 주변에 위험한 것은 없는지 살피고 있었다. 화면 속 앨리스는 계속 말하고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라면 아직 희망은 있어요. 안전한 통로가 있어요. 어서 탈출하세요.”
화면은 여기서 끝이 났다.
“안전한 통로라고? 탈출구를 찾아보자.”
둘은 방 곳곳을 구석구석 돌아봤지만 어디에도 통로의 흔적은 보이질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하루의 눈에 미니 냉장고가 눈에 띄었다. 냉장고의 문을 열자, 안쪽에 유리 문으로 잠긴 통로가 보였다. 유리 문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나타났다.
미션 ❸ 창문을 열고 탈출하라!
폴과 피타, 데카르트는 문제를 풀고 당장이라도 활시위를 당길 것만 같은 사악한 큐피트상으로부터 눈을 떼지 않은채 뒷걸음질치며 방을 탈출했다.
“어떻게 동상들이 저렇게 움직이는 거죠? 휴~, 빨리 우주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요!”
“안 되겠네. 난 앨리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아 내야겠네. 뭔가 정상이 아니야. 앨리스의 방으로 가 봐야겠네!”
데카르트는 앨리스를 생각하자 용기가 치솟는 것 같았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 계단 밑으로 다시 내려가려고 했다. 그때….
“조심하세요! 저…, 저기 또 큐피트상이 있어요!”
데카르트와 폴, 피타는 하는 수없이 반대편 길로 몸을 돌렸다. 하지만….
“악! 앞쪽에도 큐피트상이 있어요!”
“피타피타!”
피타가 소리를 지르며 가리킨 왼쪽 방향에도 큐피트상이 그들을 향해 화살을 당기고 있었다. 데카르트는 뒤쪽, 폴은 앞쪽, 피타는 왼쪽 각각
큐피트상으로부터 눈을 뗄 수 없었다. 지금은 큐피트상들이 멈춰 있지만, 조금이라도 눈을 깜빡였다간 큐피트상이 세차게 잡아당긴 활시위를 놓을 게 뻔했다.
“몸을 오른편으로 슬슬 움직이자고. 내 기억엔 그쪽에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던 것 같네.”
그들은 조심스레 움직이며 다락방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안전하게 다락방 안으로 들어왔다.
“왜 이렇게 컴컴하지? 악! 뭔가 내 팔을 잡았어!”
데카르트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폴리스는 서둘러 어두컴컴한 방안의 벽면에서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켰다. 한 큐피트상이 데카르트의 팔을 세게 잡고 있었고, 다른 큐피트상은 무서운 얼굴로 피타를 향해 팔을 뻗고 있었다. 데카르트는 팔을 비틀어 큐피트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났다.
“휴…,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날 뻔했어요. 둘은 큐피트를 놓치지 말고 쳐다보고 있으세요. 다른 탈출구가 있는지 한번 살펴볼게요.”
데카르트와 피타는 큐피트를 응시하고 폴리스는 다락방 이곳저곳을 급하게 살펴봤다.
“데카르트! 혹시 아는 다른 탈출구는 없나요?”
“앨리스는 왈가닥 처녀였지. 가끔 창문으로 드나든 것 같은데….”
폴리스가 창문 아래를 내려다보다 외쳤다.
“여기 아래층으로 이어지는 사다리가 있어요. 그런데 창문이 잠겨 있어요. 창문을 열려면 비밀 키를 눌러야 한대요.”
“어서 풀게. 벌써 눈이 간질간질하다고!”
미션 ❹ 마지막 탈출구를 만들어라!
데카르트와 피타가 두 큐피트를 응시하고 있는 사이, 폴리스가 문제를 풀어 모두 안전하게 다락방을 탈출했다. 아랫방으로 내려오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폴리스! 하루! 너희 괜찮아?”
폴리스와 하루가 창문을 통해 방으로 들어온 폴과 피타, 데카르트를 놀란 얼굴로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창문으로 온 거야? 아무튼…, 우린 괜찮아. 다들 별일 없지?”
그들은 그 동안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주고받았다. 데카르트는 폴리스와 하루가 앨리스의 방에 다녀온 얘기를 듣더니 심란한 표정이었다.
“앨리스의 방에 TV란 물건이 있었나? 아무튼 그녀가 그 TV란 물건 안에서 나와 자네들에게 메시지를 남겼단 말이지? 대체 앨리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설마 나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벌어진 건 아니겠지?”
데카르트는 머리를 감싸쥔 채 괴로워했다. 그리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 폐허로 변한 방 곳곳을 둘러봤다.
“이럴 때가 아니지. 앨리스가 우릴 위해 안전 통로를 준비해 뒀다고 했어. 그녀를 위해 일단 이곳을 빠져 나가야 해.”
폴 일행은 데카르트를 따라 방 곳곳을 살펴봤다. 그러다가 데카르트가 뭔가를 발견한 듯 모두를 책상 쪽으로 불렀다.
“여기…, 앨리스가 내게 편지를 남겼어.”
그때였다.
“피타피타!”
피타가 소리를 지르며 손으로 가리킨 곳은 바로 폴과 피타, 데카르트가 들어온 창문이었다. 어느새 큐피트상들이 그들을 따라와 창문 밖에서 노려보고 있었다. 피타가 금세 눈치채지 못하고 보지 못했다면, 그들은 창문을 통해 이미 방 안으로 들어왔을 터였다. 하지만 다행히 피타가 빨리 알아챈 덕분에 큐피트상들은 창문 밖에서 멈춰 선 채 폴 일행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방 밖에서도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악! 밖에 있는 큐피트상들도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을 알아챘나 봐!”
“그들이 이 방 안으로 들어오는 건 시간문제야!”
“피타! 피타가 창문을 통해 계속 큐피트상을 주시해. 데카르트, 편지에는 뭐라고 써 있나요?”
시공간 여행의 무서운 결과
폴 일행이 문제를 풀자 8개의 막대에서 3개의 안전 통로가 만들어졌다. 안전 통로는 처음 우주선이 착륙했던 장소로 곧장 연결돼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폴 일행은 우주선을 향해 한달음으로 뛰었다. 그때 하루가 뒤를 바라보고 소리를 질렀다.
“악! 수십 개의 큐피트상들이 우릴 향해 달려들고 있어요. 너무 많아요!”
“다들 어서 우주선으로!”
모두 우주선에 올라타자 폴리스가 급하게 우주선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우주선은 서서히 가동되며 조금씩 사라져갔다. 하지만 우주선 밖에서 한 큐피트상이 우주선의 문고리를 잡고 세차게 잡아당기고 있었다. 다른 큐피트상들도 우주선의 사라지지 않은 부분을 붙잡고 마구잡이로 흔들고 있었다.
“폴리스, 이러다가 큐피트상들이 우주선 안으로 들어오는 거 아냐?”
다행히 우주선은 1616년의 시간에서 서서히 사라지며 시공간 통로로 접어들었다.
“휴~, 드디어 사라졌어.”
데카르트는 의자에 털썩 앉으며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그러자 폴리스가 입을 열었다.
“난 좀 알 것 같아. 출발하기 전에 모일러가 말했어. 시간 여행을 하기 위해 우주선을 노리는 놈들이 있을 거라고. 그 녀석들은 우주선에 탑승한 사람들을 늘 주시한다고 했어. 그리고 그들이 예측가능한 시간과 장소로 움직이면 안 된다고 충고했지.”
폴리스의 말에 데카르트가 놀라 말했다.
“그렇다면 큐피트상들은 내가 이 우주선에 탑승한 것을 보고, 1616년의 앨리스를 만나러 갈 걸 예측 했다는 건가? 그래서 우주선을 빼앗기 위해 앨리스의 세계를 부수고 기다리고 있었단 말인가?”
“네.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그들이 우리가 올 걸 미리 알고 있었다는 점이 이 추측의 신빙성을 더해요. 그래서 모일러가 시공간 여행을 할 때 목적지를 주의해서 선정하라는 경고를 했던 거예요.”
데카르트는 얼빠진 얼굴로 앨리스의 편지의 마지막 부분을 읽었다.
“데카르트. 저를 찾아와 줘서 고마워요. 그들이 말했어요. 당신이 찾아올 거라고. 당신을 원망하지 않으니 절대 자책하지 마세요. 전 당신과 친구들을 위해 이 메시지를 남겨요…. ”
그리고는 조용히 말했다.
“나를 처음, 원래 내가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 주게. 그동안 고마웠네. 그리고 미안하네.”
그의 침통한 말에 아무도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폴 역시 시공간 여행에 무서운 결과가 찾아올 수 있단 사실을 깨닫고 마음이 무거웠다. 그때 폴리스가 입을 열었다.
“데카르트 님, 한 번만 더 함께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