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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에도 표정이 있다. 같은 내용을 쓴 글자더라도 날카로운 느낌을 주는 글씨체가 있는가 하면, 동글동글 귀여운 글씨체도 있다. 컴퓨터 사용이 활발해지면서 글씨체는 사람의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을 넘어 디자인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 그 가짓수도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이렇게 다양한 글씨체, 어떻게 만드는 걸까?

오랫동안 사랑받은 글씨체, 헬베티카!


워드나 한글과 같이 컴퓨터로 문서를 만들다 보면 다양한 글씨체를 볼 수 있다. 같은 내용을 쓰더라도 글씨체를 바꾸면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에 적절한 글씨체 선택은 무척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컴퓨터의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글씨체는 디자인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됐다. 이에 새로운 글씨체도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다.

수많은 글씨체 중에 글씨체의 전설이자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는 글씨체는 단연 영문 글씨체 ‘헬베티카’다. 1957년에 스위스의 한 글씨체 개발 회사에 다니고 있던 막스 미딩거와 사장인 에드워드 호프만이 만들었다. 이름은 낯설지만 직접 글씨를 보면 ‘아~’하고 익숙한 느낌을 받는다. 헬베티카는 간결하고도 중립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에 아래와 같이 다양한 기업이나 상품 *로고에 쓰이고 있다. 또 지하철이나 공항, 도로의 표지판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헬베티카가 여러 곳에서 쓰이고,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첫 번째 이유는 글자의 끝머리에 돌출된 모양이 없기 때문이다. 붓이나 펜으로 글씨를 쓸 때 생기는 글자 끝머리에 돌출된 부분을 ‘세리프(serif)’라고 하는데, 헬베티카는 세리프가 없다. 세리프가 없어 공간에 글자를 배열할 때 수평과 수직에 잘 맞물린다.

뿐만 아니라 가로와 세로의 비율이 거의 일정하다. 즉, 글자가 차지하는 공간과 여백의 비율까지 계산해 만들어 글씨 자체가 기하학적으로나 조형적으로 아름답고 완벽하다. 이런 특징 때문에 헬베티카는 어디에 써도 글자가 담고 있는 내용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질리지 않는 ‘중립적인 글씨체’가 될 수 있었다.

*로고 회사나 제품의 이름이 잘 드러나도록 만들어 상표처럼 사용하는 글씨체. ‘로고타이프(logotype)’를 줄여 간단히 ‘로고(logo)’라고도 한다.


가족을 만든 글씨체, 유니버스

가족의 구성원은 서로 닮았다. 자녀가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글씨체에도 글씨의 모양을 결정하는 유전자를 공유한 가족이 있다. 글씨의 유전자로는 획의 굵기, 세리프의 모양, 글자의 너비 등이 있는데, 이러한 것을 공통으로 갖고 있는 글씨는 가족이 된다.

이것을 글씨체에서는 ‘패밀리(Famlily)’라고 한다. 같은 패밀리 안에 있는 글씨체는 글씨 유전자를 공통으로 갖기 때문에 그 모양이 비슷하다.

글씨체에 처음으로 이런 형태유전자를 도입해, 수학적 질서를 체계화한 사람은 스위스의 글씨체 디자이너 아드리안 프루티거다. 아드리안 푸르티거는 1957년 ‘유니버스(Univers)’란 이름에 새로운 글씨체 가족을 세상에 소개했다. 서체의 이름에 39번부터 83번까지 번호를 붙여 총 21개의 글씨체로 구성된 유니버스 패밀리는 유럽의 디자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유니버스의 구성도는 오른쪽 페이지의 <;표>;와 같다. 가로축은 글자의 폭, 세로축은 글자의 두께로 정하면 유니버스 가족이 이뤄진다. 이때 실선으로 표시된 부분이 실제로 만들어진 21개의 글씨체이며, 점선으로 된 부분은 *가독성의 문제로 만들지 않은 글씨체다.

놀라운 것은 각각의 글씨체마다 체계적으로 숫자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유니버스 글씨체를 나누는 2개의 변수인 글자의 폭과 두께를 표현하려면 두 자리 숫자가 필요하다. 십의 자리는 글자의 두께를, 일의 자리는 글자의 폭을 나타낸다.

유니버스에서는 숫자 5가 그리드의 중심이다. 즉, 기준이 되는 글씨체를 55라고 정한 다음 글자의 두께에 따라 십의 자리 숫자를 바꾸고, 글자의 폭에 따라 일의 자리 숫자를 바꿔 글씨체마다 숫자를 매긴다. 또 글씨체에 매겨진 숫자가 홀수일 경우, 짝수를 그 글씨체의 이탤릭으로 나타낸다. 55인 글씨체의 이탤릭을 56으로 쓰는 식이다.
 

유니버스 글씨체는 40년이 지난 1997년, 더욱 세분화된 패밀리로 등장했다. 기존에 글자의 굵기와 폭으로 분류했던 방법에서 글자의 기울기를 하나 더 추가해 총 3개의 변수로 글씨체를 만든 것이다. 그 결과 글씨체를 나타내는 숫자도 두 자리 수에서 세 자리 수로 늘어났다. 기울기를 나타내는 일의 자리는 기울기가 있으면 1, 없으면 0으로 표시했다. 이렇게 세분화된 유니버스 글씨체는 총 59개의 구성원을 갖는 대형 가족이 됐다.

*가독성 문자, 기호 또는 도형이 얼마나 쉽게 읽히는가의 정도를 뜻한다.

수학의 원리를 담은 ‘벡터 폰트’ vs ‘비트맵 폰트’

➊ 벡터 폰트
: 문자의 모양을 윤곽선의 방향과 길이로 기억한 글씨체다. 수학에서 방향과 길이를 담은 개념인 벡터를 이용해 ‘벡터 폰트’라고 한다. 벡터 폰트에서는 글자의 모양이 벡터로 표현한 복잡한 수학적 알고리즘으로 이뤄져 있다. 글자의 크기를 확대하거나 축소해도 알고리즘은 변하지 않아 글자의 모양이 변형되지 않는다. 그러나 복잡한 수학적 알고리즘으로 돼 있어, 데이터의 용량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

➋ 비트맵 폰트 : 가장 단순한 디지털 폰트다. 점으로 표현했다는 뜻으로 ‘도트 폰트’라고도 한다. 비트맵 폰트는 글자의 모양을 하나하나 점으로 표현해 사각행렬로 기억한다. 벡터 폰트에 비해 용량이 작다는 장점이 있지만, 글씨를 확대하면 모양이 모자이크처럼 깨진다.
 

한글, 네모 틀을 벗어나다!

영문 글씨체가 아닌 우리나라 고유의 문자 한글의 글씨체는 어떨까?

한글 글씨체는 크게 ‘네모꼴’과 ‘탈네모꼴’로 나눌 수 있다. 네모꼴은 말 그대로 같은 넓이의 정사각형 네모 틀을 기본으로 하는 글씨체다. 반대로 탈 네모꼴은 네모꼴을 벗어난 글씨체를 뜻한다. 한글 글씨체를 이렇게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 것은 한글이 초성, 중성, 종성을 조합해 하나의 글자를 만드는 조합형 글자이기 때문이다. 가로쓰기인 영문 알파벳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다음의 두 글씨체를 살펴보자. 왼쪽은 네모꼴 글씨체 중 하나인 맑은 고딕체다. 초성과 중성으로만 이뤄진 글자 ‘수’와, 종성까지 이뤄진 글자 ‘학’이 모두 같은 면적의 네모꼴 틀 안에 들어간다.
 

반면 오른쪽은 탈네모꼴 글씨체 중 하나인 안상수체다. 초성과 중성으로만 이뤄진 글자 ‘수’와 종성까지 이뤄진 글자 ‘학’이 차지하는 면적이 서로 다르다. 자음과 모음의 크기가 놓이는 위치와 상관없이 크기가 같기 때문이다.

네모꼴 글씨는 글자의 모양에 상관없이 같은 면적의 네모꼴 안에 들어가기 때문에 본문체로 적합하다. 또한 네모꼴 글씨는 훈민정음의 원리를 따른다. 현재는 한글을 모두 가로로 쓰고 있지만, 처음 한글을 만들었을 때에는 세로쓰기였다. 세로쓰기로 쓴 모든 한글은 네모꼴이었다.

반면 탈네모꼴 글씨는 위치에 상관없이 자음과 모음의 모양과 크기가 같아서 글씨체를 개발할 때 무척 경제적이다. 초성이나 종성에 오는 자음의 모양을 바꾸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탈네모꼴은 한글의 조합 원리를 잘 살린 글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글 글씨체 아름다움에 빠진 권경석 디자이너를 만나다!
 

한글 글씨체를 개발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될까? 우리나라 최초의 폰트 개발 회사인 산돌커뮤니케이션에서 10년 넘게 한글 글씨체를 개발하고 있는 권경석 디자이너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한글 글씨체는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과정을 설명해 주세요.


크게 4가지 단계를 따라 글씨체가 만들어집니다. 먼저 기획을 합니다. 어디에 쓸 글씨체인지, 몇 자를 만들어야 하는지 등등 기본적인 글씨체의 방향을 정리하는 것이지요. 그런 다음 디자인을 합니다. 디자인이 완성되면 그 디자인에 따라 모듈을 맞춥니다.
 

여기서 모듈이란, 한글의 모양에 따라 구조화 하는 것을 뜻합니다. 똑같이 받침이 있는 글자더라도, 어떤 받침이 있느냐에 따라 글자의 모양이 달라지기 때문에 모양에 따라 분류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글은 크게 받침이 있는 글씨와 없는 글씨로 나눌 수 있는데, 받침이 없는 글자도 그 형태에 따라서 여러 개로 나눌 수 있습니다. 모음이 세로인 ‘아’, 아래에 있는 ‘우’ 그리고 겹모음이 있는 ‘왜’ 등은 모두 그 형태가 다릅니다.

이런 방법으로 글씨의 모양에 따라 분류하면 적어도 모듈이 20개 이상이 됩니다. 모듈이 많을수록 정교한 글씨체가 되겠지요.이렇게 모듈을 정하면 글씨체를 만드는 시스템에 의해 글씨체 개발이 완성됩니다.

직접 개발하신 한글 글씨체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도로표지판에 쓰는 한길체가 있습니다. 올해부터 전국의 모든 도로 표지판이 한길체로 바뀔 예정이에요. 이미 제주도에서는 모든 도로 표지판이 한길체로 바뀌었답니다. 이밖에도 옥션, 네이버, 인터파크에서 사용하는 화면서체도 있죠. 여러분도 생활 속에서 서로 다른 다양한 글씨체를 찾아보며 그 아름다움을 느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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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수학동아 정보

  • 장경아 기자
  • 도움

    권경석 디자이너
  • 사진

    ImageBit
  • 사진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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