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헥헥, 러일로는 왜 이렇게 험한 산맥으로 숨어들어간 거야!”
폴 일행은 드리클류의 동생인 러일로를 찾아 토포로지 산맥에 도착했다. 토포로지 산맥은 매우 험해 모두 발이 부르튼지 오래였고, 온몸은 상처투성이었다. 게다가 산맥의 규모도 어마어마해서 이렇게 넓은 산에서 러일로를 찾기란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만큼 어려워 보였다.
문제 ❶ ‘?’에 들어갈 점의 개수를 구해라!
“에이! 더 이상은 한 발자국도 못 가!”
폴은 너무 지친 나머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멈추면 안 돼. 여긴 뭐가 튀어나와도 피할 곳도 없어…. 조금만 힘을 내자.”
폴리스가 설득했지만 폴은 요지부동이었다. 다른 일행들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다들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는지 폴을 따라 바닥에 주저앉았다.
“여긴 위험한데…. 딱 5분만 쉬었다 얼른 가자.”
폴리스는 못내 불안한지 주변을 둘러보며 일행들에게 다짐을 받았다.
“토포로지 산맥은 어떤 생명체들이 살고 있는지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야. 온갖 무서운 괴물들이 우글거린다는 소문도 많고…. 그래서 사람들이 접근을 꺼리지. 러일로가 누군가를 피하려는 마음을 먹었다면, 토포로지 산맥만 한 장소도 또 없을 거야.”
그때였다. 위쪽에서 작은 돌 하나가 굴러떨어져 폴b의 머리를 맞췄다.
“아얏!”
폴b는 돌 맞은 곳을 문지르며 위를 올려다봤다. 그리고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금 폴b가 맞은 돌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큰 돌이 폴을 향해 굴러떨어지고 있던 것이다. 폴이 본능적으로 머리를 움츠리자마자 큰 돌이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바로 앞에 떨어졌다. 잘못해서 돌에 맞기라도 했으면 크게 사고가 날 뻔한 것이다. 이어 위쪽에서 천둥이 낮게 우는 듯한 불길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돌…, 돌들이 떨어진다!”
폴리스가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자 아까까진 보이지 않던 동굴이 보였다.
“저 안쪽으로! 어서!”
다들 폴리스가 가리키는 동굴 쪽으로 황급히 몸을 움직였다. 아슬아슬하게 동굴 안으로 몸을 피하자마자 떨어진 돌들에 동굴 입구가 막혔다. 입구가 막히자 동굴 안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해졌다.
“폴리스! 피타! 어디 있어?”
폴은 애타게 폴리스와 피타를 불렀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찰칵’ 하고 불이 켜졌다. 폴b였다. 폴b는 손에 손전등을 들고 웃고 있었다.
“이게 유용하게 쓰일 일이 있었네? 어? 그런데 이 건 뭐지?”
폴b가 가리킨 곳에 이상한 무늬가 적혀 있었다.
“물음표 부분을 채우면 뭐가 나오나 본데?”
문제 ❷ 정십자 도형을 재조립하라!
폴과 폴b가 문제를 맞히자 동굴이 환해졌다. 둘은 한쪽에 폴리스와 피타가 쓰러져 있는 걸 발견하고 그들을 깨웠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환하게 밝혀진 동굴 한켠에는 긴 통로가 보였다.
“저기 길이 있어!”
“동굴 입구는 무거운 돌더미에 막혀 나갈 수 없으니, 동굴 안쪽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건가?”
폴의 말에 폴리스가 주변을 살피며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은 천장이 매우 높았고, 통로 벽 쪽은 매끈한 것이 마치 용암동굴 같았다.
“우아! 여기 동굴이 만들어졌을 때 용암이 흘렀던 자국인가 봐.”
폴은 돌이 떨어지는 위협에서 벗어나자 신이 나서 곳곳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동굴의 서늘한 공기도 일행의 발걸음을 한층 가볍게 만들었다.
“적어도 여긴 바깥보다 시원해서 좋다.”
앞으로 나아가던 폴과 친구들은 동굴이 가도가도 끝이 보이질 않자 점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거 어디까지 가야 되는 거야? 자꾸 깊숙이 들어가면 되돌아 나오기 힘들잖아.”
폴리스도 심각한 얼굴로 폴과 폴b에게 물었다.
“생각해 보니 말이야, 불은 어떻게 켠 거야?”
“문제를 맞혔더니 저절로 켜졌어. 신기하지?”
“우리 말고 이 동굴에 누군가 있다는 말인가?”
폴b가 불안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럼…, 누가 우리를 동굴로 유인한 걸 수도…?”
“지금부터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가자. 어차피 우린 러일로를 찾아 이 세계를 바로잡고, 원래 세계로 돌아갈 힌트를 얻으려고 한 거잖아. 누군가 만나면 러일로에 대해 물어보면 되지.”
폴이 씩씩하게 말하곤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앞에 막다른 길이 나타났다.
“뭐야! 여기도 막혔잖아? 앞뒤가 다 막혔네? 이럴 땐 어떻게 하지?”
자세히 보니 막힌 길목은 그냥 바위가 아니라 문이었다. 문에는 총 여섯 개의 도형이 그려져 있었는데 세 개의 정십자 모양과 정사각형, 평행사변형, 직사각형이었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문인가 봐.”
폴b가 문에 새겨진 도형들에 관심을 보이며 손으로 만지자 정십자 모양의 돌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폴b가 정십자 모양 돌을 주워 한 손에 들고는 나머지 손으로 다른 정십자 모양 돌들도 분리가 되는지 만져 보았다.
“어? 정십자 모양 돌들만 문에서 분리가 되는데?”
폴도 황급히 나머지 정사각형, 평행사변형, 직사각형 부분을 만져 봤지만 이쪽 칸은 비어 있었다.
“혹시 정십자 모양의 돌을 쪼개서 각각의 도형을 채우라는 건가?”
문제 ❸ 컴퍼스를 한 번만 사용해서 타원을 그려라!
“철컥!”
정십자 모양 돌들을 이용해 다른 도형을 채우는 데 성공하자, 문이 열리며 거대한 공간이 나왔다.
“와~! 문 안쪽은 굉장히 넓네?”
동굴 안쪽에서는 지금까지와 다른풍경이 나타났다. 그 모습에 감탄하고 있을 때, 안쪽에서 웅웅거리며 울려 퍼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다가가자, 거대한 원기둥 형태의 석주 옆에서 수염과 머리카락이 덥수룩한 웬 남자가 웅얼거리고 있었다.
“자네들인가? 오늘 동굴에 불을 켠 사람이?”
그 남자는 폴 일행은 쳐다보지도 않고 바닥에 놓인 타원형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폴이 자세히 살펴보니 근처에 종이와 컴퍼스가 떨어져 있었다.
“난 이곳에서만 3년 넘게 있었다네. 그리고 3년 만에 이곳의 불이 켜졌지. 너무 눈이 부셔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것이니, 날 이상한 사람이라고 오해하지 말게나.”
호기심이 많은 폴도 겁이 나는지 아저씨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물었다.
“왜 여기 3년이나 계신 거예요? 혼자서 뭐 하시는건데요?”
그는 폴의 질문에 대답도 없이 발을 들어 보여 줬다. 그의 발은 석주와 연결된 튼튼해 보이는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누가 이런 짓을!”
“이제 와서 누가 그랬는지는 중요치 않네. 난 이 문제만 풀면 쇠사슬의 구속으로부터 풀려날 수 있다네. 그런데 이 문제를 통 풀지 못하겠어.”
그의 말에 다들 기가 막혀 소리를 질렀다.
“그럼 문제를 풀지 못해서 3년이나 이러고 있었던 거예요? 대체 문제가 뭔데요?”
“컴퍼스를 한 번만 써서 타원을 그리면 된다네. 그런데 컴퍼스는 원을 그리는 도구가 아닌가. 아무래도 날 풀어 주지 않으려고 누군가 거짓 문제를 낸게 분명해.”
그의 말에 폴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아저씨께는 죄송하지만 이 문제는 3년이나 잡혀 계실 만큼 어려운 문제가 아닌데요?”
문제 ❹ 삼각형과 초승달 중 넓이가 넓은 쪽은?
폴 덕분에 3년 만에 구속에서 풀려난 아저씨가 기쁜 기색도 없이 일행에게 말했다.
“그럼 이제 날 따라오지.”
폴리스는 마음이 좀 찜찜했다. 위기에 빠진 사람을 그냥 두고가서는 안 되지만, 낯선 사람을 의심도 하지 않고 풀어 준 게 마음에 걸렸다. 생각해 보니 누군가 이 아저씨를 동굴에 가둬 논 데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물어 보지도 않고 풀어 주다니…. 불안해진 폴은 앞서 가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동굴엔 왜 갇힌 거예요? 누가 가뒀어요?”
아저씨는 대답을 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가기만 했다. 폴리스는 마음에 안 들었지만, 다른 길이 없어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동굴은 앞으로 나아갈수록 점점 여러 갈래길이 나오며 복잡해져 갔다. 그런데도 그는 이 동굴을 잘 아는 것처럼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러다가 한 갈래길에 이르자 멈춰 서서 일행에게 말했다.
“이쪽 길로 들어가지.”
폴은 아무 의심도 없이 아저씨가 멈춰선 길 안쪽으로 들어갔다. 폴리스는 혀를 쯧쯧 찼지만 별 수 없었다. 아저씨는 폴 일행이 다 들어갈 때까지 입구에 서 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왜 그곳에 묶여 있었냐고? 이 방에서 음모에 빠졌기 때문이야. 자, 너희들이 서 있는 방을 잘 둘러봐.”
“여기가 방이에요?”
그곳은 막다른 방이었다. 처음엔 캄캄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점점 환해지더니 방바닥에 그려진 큰 직각이등변삼각형과 반원이 보였다.
“이건 뭐죠?”
폴의 질문에 아저씨가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삼각형과 초승달 모양이 점점 빛나고 있지? 이 게임의 방법은 간단해. 두 부분 중 더 넓은 쪽에 서 있으면 되네. 만약 이 불빛이 꺼질 때 면적이 더 작은 쪽에 서 있는 사람은 나처럼 석주에 묶여 있게 된다네.”
“뭐라고요? 우린 당신을 풀어 줬는데,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
화가 난 폴이 아저씨에게 따지자 그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 점은 나도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난 누가, 왜 날 이곳에 가뒀는지 몰라. 너희들이 가둬 놓고 이제 와서 모르는 척 하며 풀어 준 걸지도 모르잖아? 내가 또 속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친 것뿐이야. 자, 벌써 불빛이 희미해지는 것 같지 않아? 나처럼 석주에 묶이지 않으려면 어서 문제를 푸는 게 좋을걸?”
아저씨의 정체는 러일로!
“아저씨 정말 뻔뻔하네요. 우리가 방에서 풀려나면 어떻게 할 줄 알고 도망도 안 가고 이렇게 서 있어요? 아님 우리가 당연히 문제도 못 풀고 석주에 묶일 거라고 생각했나 보죠?”
아저씨는 폴 일행이 매서운 눈길로 노려보는데도 별 두려운 기색도 없이 차분하게 말했다.
“난 자네들이 문제를 풀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네. 말하지 않았나,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하지만 이곳에선 긴장을 늦춰선 안 돼. 나라고 처음 본 자네들을 무턱대고 믿을 순 없었네.”
폴리스가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저도 처음 본 사람을 그냥 풀어 준 게 마음에 걸렸는데, 같은 마음이었겠군요.”
“게다가 자네들은 여럿이고 난 혼자니 나로서는 이럴 수밖에 없었지. 이해해 주겠나?”
폴은 자신을 속인 아저씨가 마음에 안 들어 입을 삐죽거렸지만, 나머지 일행은 아저씨의 말을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폴은 아저씨의 정체를 알아내야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좋아요. 대신 우리 질문에 사실대로 답하세요. 먼저 아저씨 이름은 뭐예요? 여긴 왜 온 거예요? 누가 가둔 건지 정말 몰라요? 정말 3년이나 갇혀 있었어요? 그럼 뭘 먹고 살았어요?”
“그만! 하나씩 물어보게.”
폴이 작정한 듯 질문을 마구 쏟아내자 아저씨가 폴의 말을 막았다.
“난…, 러일로라고 하네.”
“네~에?”
아저씨의 말에 다들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는 뭔가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형님이 보냈나?”
“어…, 어떻게?”“아까 난 자네들의 수학 실력을 간단히 시험해 봤네. 자네들이 아까 그 문제를 못 풀었다면 나와 형님이 기다리던 그 아이들이 아니겠지.”
폴리스는 갑자기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아저씨! 러일로라면 수학 실력이 대단한 수학자라고요. 어떻게 폴도 간단히 푼 문제를 3년씩이나 못 풀고 있었던 거죠?”
“그건 나 또한 미스터리일세. 난 수학, 특히 기하 문제라면 늘 자신이 있었지.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누군가 내게 수학에 대해 묻기만 하면 머리가 하얘져서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아.”
일행은 충격에 빠져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글쎄…, 괴짜 수학자들의 음모일지도.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을 모르겠다네. 그 답은 이제 자네들이 찾아주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