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생물인 건물에 거대한 것이 살아 움직인다. 그는 높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다리 역할을한다. 바로 엘리베이터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고마운 엘리베이터가 들려주는 속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배부른 엘리베이터의 변명
‘런닝맨’ 팀이 여의도의 오래된 13층짜리 빌딩을 찾았다. 오늘의 미션은 각 층을 오르내리며 숨겨진 퍼즐 조각을 찾는 것이다. 멤버들을 뒤쫓으며 미션을 방해하는 범인은 어딘가에 숨어 있다.
상황 1
미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다들 1층 엘리베이터 타는 곳에 모였다. 1층에는 엘리베이터가 A, B, C 3대가 있다. 올라가는 버튼을 누르고 어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지 내기를 했다. A 엘리베이터는 2층에서 4층으로 올라가고 있다. B는 8층에 서 있다. C는 13층에서 내려오고 있는데, 5층에 들렀다 올 예정이다.
풀이
같은 복도에 있는 엘리베이터는 군 관리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여러 대의 엘리베이터를 함께 관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시스템은 단순히 가장 먼저 올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방향으로 가장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엘리베이터에게 명령한다. 이 경우 B 엘리베이터가 내려온다. B가 가장 빨리 1층에 와서 다음 명령을 바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 2
7층에 홀로 있던 개리는 범인이 위에서 내려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7층 복도에서 엘리베이터의 내려가는 버튼을 급하게 눌렀다. A와 B 엘리베이터가 각각 9층과 13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당연히 A 문 앞에서 기다리던 개리는 A가 7층을 그대로 지나치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곧이어 B가 도착했지만 가슴 졸이던 몇 초가 하루처럼 느껴졌다. 사람도 아닌 A 엘리베이터에 대한 배신감마저 들었다.
풀이
A 엘리베이터가 지나쳐 간 이유는 시스템이 B 엘리베이터를 할당했기 때문이다. 움직이고 있는 상태에서 A 엘리베이터는 7층에 정지하기 힘든 상황일 경우가 많다. 엘리베이터는 가속, 정속, 감속, 정지의 단계로 움직이는데, 속도를 줄여 정지하는 데 필요한 거리가 부족하면 할당되지 않는다. 또는 A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많이 타고 있을 수도 있다. 엘리베이터는 태울 수 있는 무게(정격무게)의 80%가 넘으면 다른 층에서 불러도 할당되지 않는다.
스마트한 엘리베이터 만들기
요즘 엘리베이터 타는 곳에는 엘리베이터의 위치를 나타내는 층 표시기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저 어느 엘리베이터가 곧 도착할 예정이라고 알려주는‘도착 예보등(홀 랜턴)’만 있을 뿐이다.
층 표시기가 있는 곳에서는 엘리베이터의 위치를 계속 보고 있다가 어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릴지 본인이 직접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도착 예보등이 있으면 불이 들어온 엘리베이터의 문 앞에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엘리베이터가 가까이 있는데도 오지 않는다거나, 앞서 개리처럼 눈 앞에서 휙 지나치는 엘리베이터 때문에 황당할 일도 없다. 엘리베이터의 위치를 모르는 것이 약인 셈이다.
이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스마트하게 탈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을 더 알아보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려면 엘리베이터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비싸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엘리베이터를 무턱대고 늘릴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 규정에 따르면 6층 이상이고 각 층의 바닥 넓이를 합한 총면적이 3000m²인 쇼핑몰에는 엘리베이터를 적어도 2대 설치해야 한다. 아파트나 업무용 건물에는 같은 상황에서 1대만 설치해도 된다. 건물에서 활동하는 사람의 수가 쇼핑몰보다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의 수와 함께 엘리베이터 속도에도 규정이 있다. 건물이 높을수록 당연히 엘리베이터 속도는 빨라야 한다. 아파트의 경우 15층까지는 분당 60m, 20층까지는 분당 90m, 그 이상은 분당 105m를 올라가는 속도로 정했다. 하지만 규정은 최솟값일 뿐 이 속도로는 느리다고 느끼기 쉽다. 요즘 10층짜리 아파트에는 분당 90m를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많이 쓰인다. 20층에는 분당 120m씩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쓴다. 15층이 넘는 업무용 빌딩에는 최상층까지 30초 안에 올라갈 수 있는 속도가 적절하다. 다만 속도가 빠를수록 전기가 많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건물을 처음 지을 때 설치된 엘리베이터의 수나 속도를 나중에 바꾸긴 힘들다. 그렇다고 엘리베이터에 대한 불만이 자꾸 쌓인다면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엘리베이터에 담당운행 구역을 나눠주는 존(zone) 운영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30층짜리 건물이라면 1층부터 15층까지만 운행하는 엘리베이터와 1층에서 출발해서 15층부터 30층까지만 운행하는 엘리베이터로 나눌 수 있다. 이때 15층은 환승층이다. 낮은 건물이라 하더라도 홀수층과 짝수층을 운행하는 엘리베이터로 나눠서 운영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시간을 조절해 엘리베이터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도 있다. 엘리베이터의 문은 크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1.6~2.3초 만에 열리고 닫힌다. 이 시간을 0.5초만 줄여도 한 번 설때마다 1초의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문제는 안전이다. 병원에서는 문닫히는 속도를 오히려 더 느리게하는 경우도 있다.
문이 열려 있는 시간도 조절할 수 있다. 보통 엘리베이터의 문은 5초 정도 열려 있는데, 사람이 내리고 타는 시간을 고려해 바꿀 수 있다. 사람이 많이 내리고 타는 1층에서는 이 시간을 길게 할 수 있다. 노약자나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처럼 문이 오랫동안 열려 있는 경우도 있다.
X note
만원과 과적
엘리베이터는 정격 중량의 80%가 넘으면‘만원(full)’표시등이 들어온다. 다른 층의 명령에 반응하지 않고 엘리베이터 내부에서 내린 명령에만 반응한다. 100%를 넘으면‘과적(overload)’표시와 함께버저가 울리며 문이 닫히지 않는다. 혹시 과적 표시등과 함께 운행되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엘리베이터는 정격 중량의 120%까지 정상적으로 운행하도록 설계돼 있다.
버튼을 배열하는 지혜
처음 가 본 건물의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가려는 층 버튼을 찾느라 헤매는 일이 있다. 건물의 높이나 엘리베이터 제품에 따라 층 버튼을 배열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층버튼을 배열하는 데도 지혜가 필요하다.
층 버튼을 배열하는 방식으로 다음의 3가지를 비교해보자. A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번호를 배열하면서, 한 칸씩 위로 갈수록 번호가 커지는 방식이다. B는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번호를 쌓으면서 한 열씩 오른쪽으로 갈수록 번호가 커지는 방식이다. C는 왼쪽 아래부터 지그재그로 올라갈수록 번호가 커지는 방식이다.
3가지 방식에 대해 사람들이 원하는 층 버튼을 누르는 시간과 찾기 편한 정도를 조사한 결과, A 방식이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10층 건물에서는 B 방식도 무난한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20층 건물에서는 B 방식이 C 방식보다 더 나쁜 평가를 받았다.
20층보다 높은 건물에는 층 번호를 선택하는 방법이 다양하다. 계산기처럼 0에서 9까지의 숫자를 직접 입력하고 확인을 누르는 텐 키(10-key)방식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타면 이 방식이 불편하다.
존 운영 방법을 쓰는 곳이라면 존에 해당하는 층의 번호만 표시되게 하는 것이 좋다. 버튼 대신 터치스크린을 써서, 존을 먼저 선택하면 존에 해당하는 층 번호가 나타나는 식이다.
층 버튼이나 터치 스크린과 같은 조작 장치를 설치할 때는 높이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고층 건물에는 엘리베이터 층 버튼을 세로로 너무 길게 만들지 않아야 한다. 엘리베이터에는 성인뿐 아니라 어린이나 장애인도 타기 때문이다.
조작 장치 아래에 받침대를 두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있지만, 되도록이면 조작 장치의 높이가 135cm를 넘지 않는 것이 좋다. 어린이가 팔을 뻗은 높이와 휠체어에 앉은 장애인의 팔 길이를 고려한 값이다. 그렇다고 80cm보다 낮은 곳에 층 버튼을 두면 성인이 허리를 굽혀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엘리베이터 안쪽에 가로로 길게 배열된 보조 조작 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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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전기료 아끼는 습관
닫힘 버튼을 누르면 전기료가 더 들까? 그렇지 않다. 닫힘 버튼을 눌러서 닫으나 자동으로 닫히나 문이 한 번 닫힐 때 드는 전기료는 같다. 다만 사람들이 닫힘 버튼을 누를 때 한 번만 누르지 않는 것이 문제다. 닫힘 버튼을 누를 때마다 신호를 전달하기 위한 전기료가 들기 마련이다. 실수로 다른 층버튼을 눌렀다면 그 버튼을 한번 더 누르자. 해당 층 버튼의 불이 꺼지고 취소 신호가 전달된다. 괜히 아무도 없는 층에 섰다 가면 전기료만 더 들 뿐이다. 오래된 엘리베이터에는 이 기능이 없을 수도있다.
엘리베이터 기술, 어디까지 왔나
주말 대형쇼핑몰 1층, 엘리베이터 타는 곳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엘리베이터 하나가 도착하자 서로 타려고 뒤죽박죽이다. 각 층마다 서다 보니 에스컬레이터보다 느린 것 같다. 같은 층으로 가는 사람끼리 모여 타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들의 바람은 이미 현실 속에 이뤄졌다. 가려는 층이 비슷한 사람을 모아, 한 엘리베이터에 타게 하는 목적지선택시스템이 개발된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모여 있는 복도 입구에서 가려는 층을 입력하면, 시스템은 모든 엘리베이터의 위치와 이미 받은 명령상태를 비교해 가장 빨리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지정해 준다. 그 앞에 가면 비슷한 층으로 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예를 들어 2~3층은 여성관, 4~5층은 영캐주얼·스포츠관, 6~7층 영화관, 8~10층 식당가인 건물이 있다고 하자. 여성관으로 가는 손님은 타는 곳 입구에서 B 엘리베이터를, 영화관이나 식당가로 가는 손님은 A나 C 엘리베이터를, 영캐주얼·스포츠관으로 가는 손님은 D 엘리베이터를 지정받게 된다.
목적지선택시스템은‘쌍둥이(트윈)’라는 새로운 형태의 엘리베이터가 싹틀 수 있는 좋은 밭 역할을 했다. 하나의 수직통로에 2대의 엘리베이터가 따로따로 움직이게 하는 아이디어는 1931년 처음 등장했다. 하지만 원하는 목적지를 미리 입력받아 엘리베이터가 움직일 방향과 거리를 조절할 수 있게 되고서야 현실화될 수 있었다. 또한 아래위에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가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두 엘리베이터를 적어도 3m 이상 떨어져 있게 만든 안전제어시스템의 공이 컸다.
쌍둥이 이전에도‘더블 데크’라는 기술이 있었다. 엘리베이터 두 대가 한 덩어리처럼 붙어서 움직이는 방식이다. 2개 층을 동시에 운행할 수 있게 되면서 그만큼 효율이 높아졌다. 다만 언제나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점이 아쉬웠다.
두 기술은 수직통로 하나에 엘리베이터가 하나만 움직이는 것이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공간이 줄면서 건물을 더 넓게 쓸 수 있게 됐다. 앞으로 엘리베이터에 달린 로프를 없애고 전기열차처럼 레일 위를 움직이는 기술이 개발되면 운송량과 서비스의 양이 크게늘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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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엘리베이터
서울 강북구‘북서울 꿈의 숲’에 가면 기울어진 엘리베이터를 볼 수 있다. 산비탈에 수직 엘리베이터를 만들려면 땅을 뚫어야 해서 비용이 많이 든다. 에스컬레이터를 놓자니 경사가 높아 굴러 떨어질염려가 있다. 산비탈을 따라 레일을 깔고 로프와 도르래를 연결해 엘리베이터로 만들면 경제적이면서도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다. 서울 지하철 버티고개역과 이대역에도 바닥에서 30°만큼 기울어진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