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포시 미소 지은 소녀가 머리에 뫼비우스 띠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만든 미국 판화가 엘렌 헥 작가는 이 모자가 인물의 생각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설명하는데요.
왜 그런지, 작품에 도형을 활용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의 이야기를 지금 시작합니다.
"뫼비우스 띠에 손가락을 대고 표면을 따라가면 결국 시작 지점으로 다시 돌아와요.
저는 이런 뫼비우스 띠의 특성이 어떤 생각이 자꾸 머리에 맴도는 모습처럼 느껴졌어요."
2012년 엘렌 헥 작가는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을 재해석한 작업을 하고 있을 때 뫼비우스 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칼로는 멕시코의 토속 문화를 화풍에 담으며, 개성 강한 본인의 자의식을 강렬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유명해요. 헥 작가는 칼로의 자화상 중 머리에 꽃 장식을 한 작품을 자신의 스타일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꽃 장식 모양에서 뫼비우스 띠가 떠올랐대요. 평소 수학을 활용한 예술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자연스럽게 생각이 났다는데요. 소녀의 다채로운 생각을 뫼비우스 띠로 표현하고 싶었답니다.
"뫼비우스 띠와 같은 사고는 원과 같은 사고와 다르다고 생각해요.
한 생각을 끊임없이 반복하다 잘못하면 부정적인 생각의 굴레에 빠져들 수 있는 것이 원이라고 보거든요. 계속 같은 걱정을 반복하는 것이지요. 반면 뫼비우스 띠는 한 바퀴를 돌아오면 마치 같은 위치에 온 것처럼 보이지만,
처음 위치는 아니에요. 즉 어떠한 생각을 해도 같은 결론에 도달하지 않아요.
그래서 두 바퀴째에는 같은 위치에 도착해도 조금 더 성숙한 생각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 시리즈를 하고 난 뒤부터 헥 작가는 도형을 본격적으로 자신의 작품에 녹이기 시작합니다.
경계가 없는 사고를 표현한 클라인 병
헥 작가는 뫼비우스 띠를 공부하다가 ‘클라인 병’을 알게 되고 이를 새로운 작품 시리즈에 담았습니다. 프랑스 화가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물병 대신 클라인 병 모형을 그려 넣어요. 클라인 병은 4차원 도형으로, 출발지로부터 한 바퀴 돌았을 때 같은 방향으로 돌아오지 않으며 안과 밖을 구별할 수 없는 경계 없는 곡면이에요. 뫼비우스 띠 두 개를 연결한 모양이지요.
3차원 이하 공간에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헥 작가는 어떤 모양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나타낸 모형을 작품에 담았어요. 그는 물병을 클라인 병으로 바꾼 것도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고 해요.
"클라인 병 3차원 모형이 손잡이 있는 물병이나 그릇처럼 보였어요.
저는 경계가 없는 클라인 병을 통해 인물이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 작품 시리즈를 만들 때 그가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한 점이 있었는데요. 바로 3차원 도형이라 현실에 있을 수 없는 클라인 병이 최대한 현실에 있을 법하도록 구도, 질감, 명암, 색감 처리에 신경을 쓰고, 꽃과 같이 현실에 있는 것들은 원래 모양보다 훨씬 더 추상적으로 나타냈다고 해요. 이 두 요소를 다르게 묘사함으로써 조화롭게 만든 거지요.
“세상의 모든 것과 수학은 연결돼 있어요!”
Q. 작가님은 어린 시절부터 수학을 좋아했나요?
아니요. 중고생 때는 수학은 천재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기하학적 패턴에는 관심이 있었어요.
Q. 수학을 어려워했음에도 작품에 도형을 담으려는 이유가 궁금해요.
꽃 장식과 뫼비우스 띠, 물병과 클라인 병은 모양이 비슷해서 그냥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도형을 사용해야지’라고 마음먹고 작업한 것이 아니에요.
최근에 ‘예술가의 길은 드넓은 바닷길이 아니라 땋은 머리처럼 꼬인 길과 같다’는 말을 들었어요. 과거의 관심사들과 현재의 생각이 서로 얽혀서 함께 간다는 뜻이에요. 뫼비우스 띠라는 기하학적 모양을 떠올린 이후 이와 관련해 찾아보고, 공부했던 것이 계속 떠오르면서 제 작품에 담기게 되었지요.
Q. 예술에 쓰이는 수학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섬유의 매듭부터 꽃의 황금비, 나무나 수로의 *프랙탈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은 수학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저는 이런 현상에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아 작품에 녹여내요. 그래서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어요. 예술에 쓰이는 수학이 매력적인 이유기도 하지요.
Q. 뫼비우스 띠와 클라인 병을 작품에 녹이는 작가님만의 비결이 궁금해요.
제 작업실 곳곳에 뫼비우스 띠와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낸 클라인 병 모형이 있어요. 이 모형에 빛을 이리저리 비춰보고, 빛이 들어오는 방향에 따라 그림자는 어떻게 지는지 관찰하고,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하려고 노력해요.
Q. <;수학동아>;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익숙하지 않은 분야도 관심을 가지면서 여러분의 창의성을 길러보세요. 전혀 달라보이지만 세상의 모든 것과 수학은 연결돼 있어요. 수학과 예술 사이에는 학문적인 경계가 있지만 그 둘을 연결하기만 하면 새로운 아이디어와 질문들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어요. 제 작품에 뫼비우스 띠나 클라인 병이 있는 것처럼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도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수학과 엮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