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수학만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다. 학교 공부도 잠시 내려놓았다. 박성기, 박준오, 배영진, 임준혁, 장재원, 황승섭. 6명의 학생은 2011년 대한민국 수학 국가대표다. 이들은 7월 16일부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 준비에 모든 것을 걸었다. 집중훈련장이 마련된 관악산 자락의 서울대를 찾아갔다.
칠판을 가득 메운 수식, 연습장에 휘갈겨 쓴 흔적. 대한민국 수학 국가대표의 치열한 훈련장면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 가운데 널브러진 과자의 잔해는 이들도 영락없는 고등학생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윽고 점심식사를 마친 학생들이 훈련장으로 돌아왔다.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지만 눈빛만은 남달랐다. 한국 대표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송용진 인하대 수학통계학부 교수의 소개로 짧은 인사를 나눴다.
>;>; 대표단에 선발된 것을 축하해요. 수학에 깊이 빠져든 계기가 뭘까요?
승섭 ‘돌을 맞을’ 각오로 말하지만 저는 수학이 쉬웠어요. (미안해요.) 쉬우니까 재미도 있었죠. 다들 비슷할 거예요. 성기 학교에서 수학을 배울 때는 입시를 대비해 비슷한 유형을 반복하잖아요. 그런데 올림피아드 문제들은 풀이법이 한정돼 있지 않아요. 창의성이 필요한 만큼 재미있기 마련이죠.
>;>; 수학이 재미있다면 혼자 공부해도 될 텐데, 이렇게 모여서 공부하는 이유가 있나요?
영진 각자 좋은 문제를 찾아와서 함께 푸니까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요. 재원 풀이법이 정해져 있지 않다 보니, 6명 각자가 생각하는 풀이를 한데 모아 놓고 보면 가장 좋은 해결 방향을 찾을 수 있어요.
준혁 어려운 문제는 같이 풀 때 논리가 정교해지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학교 수학문제를 모여서 풀라는 건 아니에요. 혼자 푸는 게 좋은 수학문제도 있으니까요.
사람은 6명이지만 수학에 대한 생각은 다들 비슷했다. 관심과 목표가 비슷한 만큼 끈끈한 팀워크가 물씬 느껴졌다.
>;>; 주변에서 ‘수학 국가대표’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준오 “잘해서 우리나라를 빛내야지”라는 말을 들으면 부담은 아니지만 암튼 기분이 묘해요.
승섭 저희들 모두는 서울과학고 학생인데, 학교 수업도 빠지고 이렇게 공부를 하러 간다니까 학교에서는 꼭 금상을 받아오라고 해요. 그런데 상보다는 수학을 더 잘하기 위해 공부한다는 생각이 더 커요. 결국 수학은 자신과의 싸움이니까요.
성기 저랑 준혁이는 지난해 IMO에서 은상을 받았어요. 우리나라 대표 6명 중에서 저희 둘만 은상을 받아서 내심 안타까웠어요.
준혁 저도 그 영향이 커요. 금상을 받았더라면 올해는 안 했겠죠. 다른 친구들에게 국가대표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미덕이거든요.
여느 스포츠 종목과 마찬가지로 수학 역시 자신과의 싸움이란 말이 인상 깊다. 명예가 걸리기도 했지만 결국 더 깊은 수학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그들의 노력이 대견하다.
>;>;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겠단 걱정이 들어요. 잘 못하는 과목도 있지 않겠어요?
영진 생물이요. 외워야 할 것이 많더라고요.
재원 저는 사회요. 정치경제에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느껴지는 게 많아요.
준오 저는 미술을 잘 못해요.
승섭 국사요. 암기 과목은 아무래도….
성기 저도 국사에 한 표.
준혁 저는 외우는 것보다는 국어요. 언어적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준혁의 말에 다들 맞장구친다. 특히 영어는 모두의 고민이었다. 수학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 다른 과목에서 입을 수 있는 손해는 스스로의 몫이라고 한다.
>;>; 각자가 꿈꾸는 미래의 모습이 궁금해요.
준오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자를 꿈꿔 왔어요.
재원 어릴 때는 특별한 꿈이 없었는데, 점점 수학자의 길로 빠져들고 있어요.
영진 원래는 과학자였는데, 중학교 때 수학의 매력을 알게 되면서 수학자로 바뀌었어요.
준혁 초등학교 때는 이것저것 생각했는데, 수학을 공부하다 보니 재밌게 느껴져서 수학자의 꿈을 굳혔답니다.
성기 영진이처럼 저도 초등학교 때 꿈은 과학자였어요. 수학올림피아드 공부를 하고, 책을 통해 수학자의삶을 보면서 저도 수학자로 살겠다는 꿈을 가지게 됐어요.
승섭 저는 수학자라고 정하진 않았어요. 그래도 수학적 재능을 충분히 발휘해 사회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수학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많은데, 그럼 존경하는 수학자가 있나요?
영진 20세기 헝가리의 수학자 폴 에르되시를 존경해요. 4살 때 이미 소수의 성질을 스스로 깨우쳤다고 하죠. 천재라고 하면 머리만 믿고도 살 수 있을 텐데, 엄청난 노력을 했던 분이에요. 하루에 19시간씩 수학연구를 하셨대요.
재원 저도 에르되시를 존경해요. ‘에르되시 수’라는 말이 있는데, 연구하는 사람들이 이분과 몇 단계를 거쳐 연결되는지를 나타내는 수랍니다. 수학을 사회적 활동으로 여길 만큼 정말 많은 사람과 공동연구를 한 수학자였거든요. 저도 에르되시처럼 다른 수학자들과 생각을 공유하면서 협동연구를 하고 싶어요.
수학천재라고만 생각했던 학생들에게서 노력과 협동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슴 속에 뜨거움이 올라왔다. 이들은 진정 국가대표였다.
>;>; 수학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을까요?
승섭 수학은 정말 아름답고 재밌어요. 이 사실을 꼭 알면 좋겠어요.
성기 수학은 스스로 할 때 재미를 느낄 수 있어요. 누가 가르쳐서 하기보다 좋은 문제나 책을 직접 찾아보는 노력이 필요하죠. 그럴 때마다 더 알고 싶어지는 학문이 수학이랍니다.
재원 교과서에 있는 정리를 보면서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을 품어보세요.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의문을 가지고 증명할 때 수학을 즐길 수 있어요.
준오 잘 못하는 과목일수록 성적에 연연하게 되잖아요. 성적에 신경 쓰다 보면 재미도 없어지게 마련이죠. 성적보다는 학문 자체의 매력을 찾는 것이 중요해요.
>;>; 마지막 질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수학은 □다?
영진 수학은 노력이다. 열심히 해야 더 잘할 수 있어요.
재원 수학은 산이다. 올라가기는 힘든데, 올라가 보면 진짜 즐거움이 뭔지 알게 되거든요.
승섭 수학은 즐거움을 찾아가는 학문이다. 쉬워서 수학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잘해서, 아름다워서,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하고 있어요. 수학을 즐길 수 있는 이유는 참 많은 거 같아요. 계속 할수록 더 많은 즐거움을 주는 학문이랍니다.
성기 수학은 보물찾기다. 수학은 진리를 찾는 학문이잖아요. 다양한 방법으로 진리를 찾는 노력은 마치 보물찾기 같아요.
준혁 국어를 못해서 답하기 힘들었어요.(ㅠㅠ) 수학은 예술이다. 점 하나 찍어놓은 그림을 보면 일반인은 이해 못하지만 화가들은 의미를 알 수 있잖아요. 이처럼 수학은 심오한 학문 같아요.
준오 수학은 해보면 안다. 수학은 말이 아니라 직접 해 봐야 아는 것이니까요.
넓고 깊은 수학의 세계에 첫발을 내딛은 사람들. 명석한 두뇌에도 꾸준히 노력하고 협동의 의미까지 아는 이들에게 수학의 길은 활짝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