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이나 버스에 많은 사람이 타고 있어도 그 속에서 우리는 가족이나 아는 사람을 쉽게 찾아낸다.모자를 쓰거나 옷을 바꿔 입고, 머리스타일을 바꿔도 말이다. 또 얼굴에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작은 변화를 줘도 장난을 쳤다고 인식할 뿐 다른 얼굴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완전히 얼굴이 바뀌지 않는 이상 웬만큼 성형수술을 한 사람도 같은 사람으로 파악한다.
하지만 컴퓨터는 얼굴을 구별하는 걸 매우 어려워한다. 웃는 표정에서 찡그린 표정으로 달라지거나 얼굴에 그림을 그려 변화를 주면 컴퓨터는 정해진 사람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거나 아예 찾지 못한다. 이와 같이 우리 뇌는 얼굴을 구별하는 것처럼 컴퓨터가 해결하기에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매우 빠르고 쉽게 해결한다. 과학자들은 여기에 뇌만의 비법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뇌에서 정보가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알면 사람처럼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생각으로 뇌 연구에 나선 사람들이 있다. 바로 국가수리과학연구소의 계산뇌과학연구팀이다.
뇌 네트워크 연구를 시작하다
황동욱 계산뇌과학연구팀 팀장은 “많은 사람 속에서 친구를 찾을 때 우리 눈은 보이는 곳을 몇 개로나눈 다음, 각 구역을 대충 본 뒤에 친구가 있을 만한 곳을 천천히 자세하게 보면서 찾는다” 며 “뇌에서 이런 과정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내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고 말했다.
그는 또 “뇌의 구조를 파악하고 뇌 활동을 측정해 분석하면 뇌의 작동 원리를 알 수 있을 것” 이라며 “이는 역공학과 비슷한 방식” 이라고 설명했다. 역공학은 어떤 기계장치의 작동 원리를 모를 경우, 그 기계를 분해하거나 움직이는 과정을 보면서 작동 원리를 알아가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시각 정보를 받아들일 때, 눈을 움직이는 뇌 영역,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영역, 이들 간의 네트워킹, 기존의 신경모델을 각각 이해해 종합하면 뇌에서의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을 어느 정도 알아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뇌는 많은 수의 신경세포로 이뤄져 있다. 지금까지의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불특정 다수의 사람 속에서 친구 찾기처럼 복잡한 사고를 처리하는 과정은 개별 신경세포보다는 신경세포 간의 연결구조를 통한 상호작용에 의해 이뤄진다고 추정된다. 특히 기억이 생기거나 사라지는 현상은 신경세포 간의 연결구조와 연결세기의 변화에 의해 생긴다고 본다. 뇌 연구자들은 이런 가정에 따라 실험과 모형을 만들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팀은 2009년부터 뇌세포끼리 어떤 경로로 어떻게 정보를 주고받으며, 뇌의 신경세포 전체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알아내고 있다. 네트워크를 이용한‘뇌 네트워크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뇌 네트워크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불과 5~6년 전이다.
뇌 속 고속도로의 교통량 예측한다
최근 뇌 네트워크 연구가 왜 활발해진 걸까? 뇌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뇌의 부분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알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그와 더불어 살아 있는 뇌 전체를 볼 수 있는 영상장치가 최근에 개발됐기 때문이다. 뇌기능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나 양전자방출 단층촬영(PET) 장치, 근적외선 분광광도계(NIRS) 같은 첨단영상 장치 덕분에 활동하고 있는 뇌를 더 정확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최근에 개발된‘확산텐서 자기공명영상(DT-MRI)’기법을 이용하면 신경세포 다발의 연결구조를 살아 있는 사람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 뇌에서의 정보전달 고속도로로 간주되는 신경세포 다발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알 수 있다.
뇌 연결구조의 중요성을 뇌질환 환자의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있다. 뇌기능 이상으로 뇌영상 검사를 했는데, 일상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부위를 포함한 매우 넓은 영역에서 뇌가 비정상적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측정됐다. 이 환자는 뇌질환을 치료받기 위해 넓은 영역을 모두 도려내는 수술을 받아야 할까? 비정상적으로 측정되는 뇌 영역 모두에 이상이 있는 걸까? 뇌의 연결구조를 잘 안다면 비정상적인 뇌 활동을 추적해 문제를 발생시키는 특정 부위를 확실하게 찾아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미국국립보건원(NIH)은 2009년 500억 원의 연구비를 투자해 사람 뇌의 신경세포 간 연결지도인‘커넥톰’연구를 시작했고, 유럽연합 등 전 세계에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계산뇌과학연구팀은 이렇게 얻어진 연결지도 데이터를 바탕으로 뇌 내부에서 일어나는 정보처리과정을 이해하려고 연구하고 있다. 또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형태의 정보처리 장치를 개발하고, 정보처리 문제로 발생하는 뇌질환을 진단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신경세포 연결지도만으로는 뇌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고속도로의 모양까지는 알 수 있지만 그 위를 달리는 차가 어떤 식으로 얼마나 움직이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여기에 실험과 수학적인 모형을 적용해 차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흐름을 알아내‘교통량’을 예측하려고 하고 있다. 즉 뇌가 어떤 경로를 통해 정보를 처리하는지를 알아내 뇌의 정보처리 방식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수학으로 뇌 연구해 노벨상까지 수상
그런데 수학으로 뇌를 어떻게 연구하는 걸까? 연구팀은 병원이나 실험실에서 얻은 뇌 영상과 뇌 활동영상을 수학적인 방법으로 분석해 뇌 네트워크를 이해한다. 이를 통해 어떤 부분이 뇌에서 핵심역할을 하는지 밝히고, 뇌를 수학적으로 모형화한다. 뇌는 1000억 개의 신경세포와 이들의 연결로 구성돼있다. 연구팀은 신경세포나 뇌 영역을 점으로, 이들 사이의 연결을 선으로 바꾼 뒤 그래프이론으로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성을 분석하고 있다. 그래프이론은 복잡한 구조를 간단히 점과 선으로 표현해, 그들의 관계를 이해하는 수학 이론이다.
연구팀의 고태욱 박사는 “사실 수학과 뇌 과학의 만남은 1963년 앨런 호지킨과 앤드루 헉슬리 박사가 신경세포에 대한 수학적인 연구방법으로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고 설명했다. 1950년대 초반에 앨런 호지킨과 앤드루 헉슬리는 신경세포에서 전기적 신경 신호가 어떻게 생성되는지 실험에 근거해 미분방정식으로 표현되는 수학적 모형을 만들었다. 이는 호지킨-헉슬리 모형이라 불린다. 두 사람은 신경세포라는 생물학적 대상을 수학적 대상으로 바꾸는 계기를 제공했다.
호지킨-헉슬리 모형은 수학을 뇌과학 연구에 적용한 대표적인 예다. 특히 이 모형은 40년간 다양한 실험 결과를 예측하고 모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처럼 수학은 뇌를 이해하는데 새로운 돌파구를 제공하고 있다.
올 2월 삼성전자가 의료기기업체인 메디슨을 3300여억 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의료기기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신호다. 황동욱 팀장은 “기존 의료기기에 우리가 알아낼 새로운 수학적 분석방법이 추가된다면 세계에서도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이라고 자신했다. 연구팀의 성과가 곧 뇌와 관련된 고부가가치 첨단의료장비와 뇌의 정보처리 원리를 활용한 공학기기를 개발하는 데 기초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앞사람 뒤통수만 보면 뇌파 측정 상상해”
“실험 데이터가 있어야 뇌 연구가 가능한데, 환자의 개인정보보호 때문에 병원 같은 곳에서 데이터를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꼭 필요한 데이터를 제때 공급받지 못해 연구가 지연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황동욱 팀장은 수리연에서 뇌기능 연구를 진행하면서 겪고 있는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수리연의 연구특성상 실험 환경을 충분히 갖출 수 없어 발생하는 문제다. 이런 이유로 연구팀은 다양한 외부연구자들과 협력해 충분한 데이터를 확보할 뿐 아니라 실험현장의 다양한 정보를 얻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그는 “모르는 사람이 논문 결과를 묻거나 도움을 구해 올 때 뿌듯하다” 며 “어려운 점보다 보람된 일이 더 많다” 고 말했다
.“뇌파 실험을 할 때 실험대상자가 측정용 모자를 쓰는데, 센서가 머리 표면에 착 달라붙어야 해 머리의 모양이나 크기에 영향을 많이 받아요. 실험에 몰두하다 보니 길을 걷다가도 앞사람의 뒤통수만 보면 뇌파 측정이 잘될지 안 될지를 상상하게 돼요. 직업병이 생긴 셈이죠.”
연구팀의 김원섭 박사는 웃으면서 연구 일화를 소개했다. 뇌파는 뇌의 활동에 따른 전기적 변화 또는 이를 측정한 결과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