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게임 지존, 서울대 가다


하루에 게임을 10시간 넘게 하는 사람이 서울대에 갈 수 있을까? ‘하는 사람’은 어렵겠지만‘ 하던 사람’은 갈 수 있다. 게임을 그만두면 가능하다는 뜻이다. 게임 캐릭터의 레벨을 올리던 수고를 자기 자신의 레벨을 올리는 데 쏟아 서울대에 합격한 사람이 있다.
 

게임에 빠져 있던 김동환 군은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게임을 끊고, 자신만의 공부법으로 서울대에 합격했다.
 

게임에 이별을 고하다

“언젠가 한 가정의 가장이 될 텐데, 지금 이대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올해 서울대 공학계열에 입학한 김동환 군은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이 시작할 때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컴퓨터를 자기 방에서 치워버린 날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키웠던 게임 캐릭터가 눈앞에 아른거렸지만 머릿속에서 과감히‘삭제’키를 눌렀다. 휴대전화와 TV까지 자신을 유혹하는 모든 기계에도 이별을 통보했다.

미래를 생각할 때 온라인 게임에 빠져 헤매는 자신의 모습이 그날처럼 한심해 보인 적이 없었다. 사실, 이전부터 게임을 할 때마다‘중학교 때까지만이야’를 끝없이 되뇌어왔다. 하지만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기란 쉽지 않은 일.

“드디어 결전의 때가 왔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던 거죠.”

동환 군은 친구들 사이에서‘게임의 고수’로 유명했었다. 스타크래프트, 메이플스토리, 피파온라인,서든어택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에서 하나같이 친구들을 앞질렀다. 괜한 자부심에 게임에 더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족끼리 여행을 가자고 해도 게임을 하고 싶어 혼자 남겠다고 했다. 명절 때 친척집에 가서도 PC방을 찾기에 급급했다.

다행히도 그가 언젠가 돌아올 거라는 부모님의 신뢰는 소중한 결실을 맺었다.‘고등학교 성적은 중학교 성적과 다르니까, 마음잡고 열심히만 하면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친누나의 격려도 큰 힘이 됐다. 무엇보다 학생의 본분이 공부라는 자기반성이 동환 군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수학 개념 잡기부터 시작


마음을 다잡은 동환 군이 처음 선택한 과목은 수학이다. 그는 게임을 하면서도 성적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중학교에서 전교 10% 안에도 종종 들었다. 하지만 영어와 같은 과목은 기초가 부족해 섣불리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수학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과목이었다. 문제를 해결하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개념만 바로 알면 문제가 하나하나 풀리는 점에서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다.

여태껏 주입식 공부는 싫다며 가지 않던 학원에도 등록했다. 하지만 학원에서는 문제를 빠르게 잘 푸는 방법만을 가르쳐 주는 것 같았다. 6개월 쯤 다니다가 고민 끝에 학원을 그만 다니기로 했다. 학원을 그만두고 혼자서 개념을 쌓으며 공부하니까 성적이 더 올랐다.

“학원의 시스템이 잘 맞는 사람이 있겠지만 적어도 저에겐 안 맞았어요. 저는 차분히 혼자 앉아서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했거든요.”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동안 누나들이 쓰던 수학 참고서를 보면서 고등학교 1학년 수학 과정을 공부했다. 이미 선행 학습을 하던 친구들을 따라잡기 위해서였다.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칠 때쯤에는 고등학교 수학 전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물론 수학을 완전히 끝낸 것이 아니라 기본개념을 이해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정규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 배우면서 부족했던 부분을 확실하게 보강할 수 있었다.

“미리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던 덕분에 선생님이 질문하시면 바로 답할 수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신감도 생겨서 방과후학교에서는 어려운 수학까지 배울 수 있었죠.”

‘동환 표’ 4색 노트 정리법

“공부란 하루 이틀 하고 말 것이 아니기에 공부한 내용을 효율적으로 정리하고 잘 분류하는 과정이 중요해요.”

동환 군은 수학동아 독자들을 위해 자신이 개발한‘4색 노트 정리법’을 특별히 공개했다. 대부분의학생이 그렇듯이 일반적인 정리나 필기는 검은색 펜으로 한다.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개념이나 계속 틀리는 부분은 빨간색 펜으로 쓴다. 주의나 경고의 의미를 담은 것이다. 기본 개념을 넘는 심화 개념이나 보충자료는 파란색 펜으로 쓴다.

한때는 이렇게 3가지 색으로만 정리를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수학이나 과학을 공부하다 보니‘왜’‘어떻게’라는 문제의식이 생기곤 했다. 이런 경우는 초록색 펜으로 떠오른 생각을 정리했다. 노력 끝에 해법을 찾으면 어김없이 초록색 펜을 꺼내들었다.
 

기본 정리에서 심화 개념 그리고 새로운 문제 의식까지 4색으로 쓴 노트에는 동환 군의 공부 비법이 담겨 있다.
 

초록색으로 쓰는 꿈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다 보면 동환 군을 게임이나 공부에만 빠져 있는 사람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지금의 동환 군 속에는 또 다른 모습이 녹아들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폭넓은 독서다. 그는 출판사에 계시는 아버지 덕분에 어릴 때부터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접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 저자의 생각과 경험이 어느새 제 것이 돼요. 시야를 넓혀 세상을 여러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죠.”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친구의 도움으로 영어에 눈을 뜨면서 영어로 읽고 쓰는 영자신문 동아리에서도 활동했다. 축구를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 축구부에도 가입했고, 서울대에 입학한 뒤에도 축구 동아리에 등록했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은 동환 군의 최종 꿈은 핵물리학자다. ‘왜’ 라는 궁금증이 많았던 소년에게 해답을 주는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다 보니 미래의 꿈까지 자연스레 이어졌다. 이제는 이론적인 학문을 넘어 핵융합과 같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학에 관심이 간다는 설명이다.

“제가 궁금했던 부분에서 발견한 해법으로 사람들에게 베푸는 학문을 하고 싶어요.” 앞으로 동환 군의 삶을 통해 써내려갈 초록색 꿈이 기대된다.
 

게임을 좋아하는 후배들에게
 

2011년 04월 수학동아 정보

  • 이재웅 기자
  • 사진

    현진(Studio AZA)
  • 참고자료

    김동환

🎓️ 진로 추천

  • 물리학
  • 컴퓨터공학
  • 수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