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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으로 영화 보기] 외계인과 몬스터는 지구에서 셈하기 답답해


외계인과 몬스터는 지구에서 셈하기 답답해


SF영화는 실재하지 않는 막연한 꿈과 상상을 현실처럼 느끼게 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일이 실제로도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이 넓디넓은 우주에 오로지 사람만 산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영화의 상상처럼 그건 너무 허무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저 먼 우주 어딘가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의 사람 틈바구니에 외계인이 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지구에 망명한 외계인들
 

몬스터 주식회사의 사물함 번호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10진법의 수로 돼 있다.


외계인이 지구에 살고 있을 거란 상상을 유쾌하게 잘 풀어낸 영화가 있다. 영화 ‘맨 인 블랙’은 지구로 망명한 외계인들과 그 외계인들을 관리하는 미연방 일급기밀조직 MIB(Men In Black)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에는 검은 정장을 쫙 빼입은 훈남 제이(윌 스미스)를 비롯한 사람이 많이 출연하지만,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창조된 외계인들도 실컷 볼 수 있다. 은하계를 내놓지 않으면 지구를 폭발시켜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무시무시한 외계인부터 지구에서 왕 소심하게 살아가는 귀여운 외계인까지. 이들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외계언어 통역기기를 사용한다. 물론 지구에 정착하고 난 뒤엔 통역기기는 MIB 본부에 압수당하지만.

여기서 잠깐! 언어는 그렇다 치고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수를 다루는 일 또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텐데, 다양한 외계 종족들이 우리 사람이 사용하는 수의 표현방법을 이해할 수 있을까? 만약 외계인들이 사람이 사용하는 10진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위기의 상황에서 어이없게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MIB 비밀요원 케이(토미 리 존스)는 신입 요원 제이와 함께 외계인의 정보를 얻으려고 로젠버그 보석상인 외계인을 찾아간다. 아는 대로 불라고 호통치던 케이는 외계인에게 “셋을 세겠다!”고 경고한 뒤 셋을 넘겨버린 보석상 외계인의 머리를 날려버리고 만다.

만약 이 외계인이 실제로는 정보를 알려주지 않으려고 머뭇거린 게 아니라 케이가 세는 “셋, 둘, 하나~”라는 수의 체계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이없게 머리통이 날아간 거라면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

사람이 사용하는 수의 표현 방법은 손가락 개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이 영화에 나오는 외계인들은 종족마다 손가락 개수가 다 다르다!

몬스트로폴리스의 괴물들

다양한 외계인이 등장했던 ‘맨 인 블랙’이 개봉된 지 4년이 지난 무렵, 다양한 괴물들이 생활하는 애니메이션 ‘몬스터 주식회사’가 지구에 등장한다. 영화의 무대는 ‘몬스트로폴리스’. 이곳은 크기도 개성도 제각각인 온갖 종류의 괴물들이 모여 사는 도시다. 몬스터 주식회사에 소속된 괴물들은 벽장문을 통해 아이들의 방으로 잠입해 들어간 뒤 깜짝 놀라 지르는 아이들의 비명을 채집한다. 이렇게 채집된 비명이 바로 도시의 천연에너지로 쓰인다.

중요한 에너지원은 사람인 아이들. 하지만, 괴물들의 눈엔 강한 독을 가진 보균체일 뿐이다. 쳇! 그렇게 사람을 나쁜 병균 취급을 하면서도 숫자는 사람의 것을 고스란히 갖다 쓰는 심보는 뭐람~. 몬스터 주식회사의 사물함 번호, 괴물들의 에너지 채집량을 나타낸 전광판 숫자 등 도시 곳곳에는 사람들이 쓰는 10진법의 수로 가득하다.

10진법이라! 가만가만, 괴물들의 손가락 모양을 한번 살펴볼까? 우선 겁주기 선수들이 에너지 채집 작업을 시작할 때 카운트다운을 외치는 괴물부터 체~크! 손을 번쩍 들고 ‘7, 6, 5…’를 외친다. 특이하게도 10이 아닌 7부터 센다. 왜 10부터 세지 않았을까? 그건 바로 괴물의 한쪽 손가락이 7개뿐이기 때문이다. 7개뿐인 손가락으로 10부터 센다면 아주 어색할 테니까.

다음으로 겁주기 대표선수 제임스 설리번(일명 설리)과 그의 단짝 친구 마이크의 손가락을 보자. 각자 양손을 모두 합해도 8개뿐이다. 아무래도 사람의 10진법을 그대로 쓰기에는 손가락 개수가 너무나 제각각이다.

손가락만 한 계산기는 없어

외계인과 몬스터의 손가락 개수가 제각각인 사실이 우리가 사용하는 10진법과 뭐 그리 대단한 관계가 있어 이리 호들갑이냐고? 그렇다면 사람이 사용한 수와 셈의 역사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옛날 옛적, 잘 먹고 잘 자는 일이 전부였던 시절에는 숫자가 그리 많을 필요가 없었다. 당연히‘하나’ ‘둘’ ‘많다’만으로도 세는 일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는 말씀! 그러다가 네 것과 내 것을 따지게 되고, 먹고 남은 것들을 집에 차곡차곡 쌓아두게 되면서부터 사람에게는 점점 더 많은 숫자가 필요하게 됐다. 그럼 숫자가 필요할 때마다 숫자의 이름을 끊임없이 만들었을까? 그랬다면 우리는 “가만, 이 숫자 이름이 뭐였더라…. 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아! 모르겠다~”를 외쳤을 것이며 숫자 이름을 기억하는 데만 평생을 바쳐야 했을지도 모를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많은 수를 셀 수 있었을까? 슬로바키아 베스트니츠에서 발견된 늑대 뼈를 보면 궁금증을 어느 정도 풀 수 있다. 약 2만~3만 5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늑대 뼈에는 모두 55개의 금이 새겨져 있는데, 이 중 30개는 학교에서 매년 반장 선거를 할 때 칠판에 적는 것처럼5개씩 묶여 있다. 이처럼 사람은 세기 쉬운 작은 단위 몇 개를 모아 하나의 묶음으로 만들고 그것을 큰 단위로 올려나가는 방법으로 수를 셌다. 이러한 셈 방식은 늑대 뼈 외에도 조개껍데기, 벽화 등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에서는 슬로바키아의 늑대 뼈가 가장 오래된 증거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3개나 4개가 아니고 왜 하필 5개씩 묶은 걸까? 여러 가지 추측이 많지만 셈을 할 때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손가락이 5개였기 때문이라는게 가장 설득력이 있다. 굳이 따로 챙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늘 몸에 붙어 있는 손가락만큼 편한 계산기는 없지 않겠는가.

한쪽 손가락 다섯 개를 한 묶음으로 올렸다는 증거는 늑대 뼈뿐만 아니라 동양의 계산기였던 ‘주판’에서도 엿볼 수 있다. 주판알은 다섯 개가 모이면 하나를 올려준다.‘손가락을 기준으로 했다면 아예 양 손가락 열 개를 모두 사용하는 게 더 편하지 않았을까?’ 옳으신 말씀! 옛날 사람들도 똑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시간이 흐르면서 양 손가락 개수와 같은 10개를 한 묶음으로 하는 형태로 발전했고, 이러한 단위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만약 우리도 손가락 개수가 제각각이라면
 

만약 우리도 손가락 개수가 제각각이라면

 
만약 우리 손가락이 외계인이나 몬스터처럼 사람에 따라 3개, 4개, 7개 등 제각각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어떤 사람들은 3개씩 묶어 올리는 것이 좋다고 아우성치고, 또 다른 사람들은 7개씩 묶어 올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을 것이다. 아마도 한참을 싸우다 이긴 쪽의 손가락 개수를 기준으로 진법을 만들지 않았을까.

이쯤에서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봐야겠다. 그렇다면 손가락이 10개인 사람들은 처음부터 10진법만 사용했을까?

앞서 말했듯이 손가락이 10개이기 때문에 셈하기 쉽게 10개를 한 묶음으로 하는 10진법이 탄생했다. 이렇듯 손가락 개수가 진법에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먼저 1년이 12달, 1다스가 12자루, 1실링은 12펜스, 1파운드는 12온스라는 사실에서 손가락 개수와는 상관없는 12진법을 만날 수 있다. 이것은 초승달에서 다음 초승달이 뜨는 횟수가 일 년 동안 약 12번이었다는데서 비롯됐다.

옛 바빌로니아인들이 쓴 60진법도 있다. 바빌로니아인들은 왜 셈하기 불편해 보이는 60진법을 사용했을까? 자연 현상에 관심이 많았던 바빌로니아인들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즉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데 360일이 걸리는 것에서 원둘레의 각을 360°로 정했던 것이다. 원의 크기가 얼마든지 간에 원둘레의 길이를 반지름으로 나누면 대략 6이 된다.

이렇게 나온 6으로 다시 360을 나누면? 바로 여기서 60진법이 탄생했고,지금까지도 시각과 각도에서는 여전히 60진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손가락 계산법보다 다소 복잡하기는 하지만 손가락이 아닌 ‘자연현상’을 진법 기준으로 삼았다는 게 독특하고 흥미롭지 않은가?

외계인과 몬스터에게도 맞춤 진법을!

손가락 개수도 다르고, 관심사도 서로 다른 외계인들과 괴물들. 아예 각자 자기에게 편한 진법을 선택해 마음대로 쓰라고 하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불만이 생길 일이 없어 보이지만 절대 그렇진 않을 것 같다.

애니메이션 ‘몬스터 주식회사’의 마지막 장면으로 이런 상상을 한번 해 보자. 몬스터인 설리와 사람인 꼬마 ‘부’가 안타깝게 헤어지는 장면.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지 못하고 돌아서는 설리가 부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남겼다면?

부가 글을 읽을 줄 알 만큼 자라도 ‘1010년’이라는 시간에 그만 절망하고 말 것이다. 이건 뭐, 만나지 말자는 말이랑 같지 않나? 하지만 사실 2진법을 사용하는 몬스터 설리는
1010(2)=1×23+0×22+1×21+0×1=8+2=10년을 의미한 거였는데, 당연히 10진법이라 오해한 부 때문에 영영 둘의 재회는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처럼 손가락 개수만큼이나 진법도 제각각 사용한다면 서로의 뜻이 통하지 않아 이 우주는 엉망진창이 되고 말 것이다.

역시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진법’으로 통일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외계인이건 몬스터이건 각자 자기에게 가장 유리한 것만을 고집한다면 아무리 긴 마라톤 회의 끝에도 결론이 나기 힘들다.

그렇다면 손가락 개수와 상관없이 쓸 수 있는 공통 진법으로 ‘2진법’이 어떨까? 2진법은 손가락의 개수 이전에 ‘빛과 어둠’ ‘있다와 없다’ 등 가장 단순한 개념에서 출발했다. 이 때문에 ‘맨 인 블랙’의 외계인들이나 ‘몬스터 주식회사’의 괴물들처럼 손가락이 제각각일 때는 물론 문명이나 수의 표현방법이 전혀 다른 곳에서도 2진법만큼은 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사람이 쓰는 10진법보다는 단순하고 편리한 2진법이 통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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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3월 수학동아 정보

  • 배수경 수학교사
  • 오혜정 수학교사
  • 윤장로 수학교사
  • 김대호
  • 진행

    염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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