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오일러가 사랑한 수 e


올해도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매년 특별한 2월. 개학이 자꾸만 빨리 다가오는 이유도 2월이 다른 달보다 짧아서 그런 것 같다. 이번 2월엔 어떤 특별한 날이 있을까? 흠…, 2월은 설 연휴와 함께 시작하고, 또 초콜릿을 나눠 먹는(?) 날도 있다. 혹시 특별한 날이 또 있을까?

파이데이? 오일러데이!

매년 2월 14일은 세계 각지에서 연인들이 서로 사랑을 맹세하고 확인하는 밸런타인데이다. 밸런타인데이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성 밸런타인 주교가, 군대에서 군인들이 엄격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도록 하고 남자들을 더 많이 입대시키기 위해 결혼을 금지하던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의 명령을 어기고 몰래 군인들의 결혼식을 올려 주다가 발각돼 순교한 날인 2월 14일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요즘과 같이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며 사랑을 고백한다는 식의 발상은 일본에서 상업적인 이유로 시작됐다. 우리나라의 제과업자들은 여기에 덧붙여 자신의 상품을 팔기 위해 매달 14일이 특별한 날인 것처럼 광고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3월 14일로 남성이 여성에게 사탕을 주며 사랑을 고백한다는 화이트데이다.

화이트데이인 3월 14일은 실제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단순히 제과업체의 상술로 만들어진 날이다. 그러나 적어도 수학에서는 3월 14일이 의미 있는 날인데, 이날이 바로 원주율의 날, 즉 파이데이(π day)다. 원주율 π가 3.141592…로 시작하기 때문에 일단의 수학자들이 3월 14일을 파이데이로 정했다.

수학자들은 파이데이 외에 또 다른 하루를 특별한 날로 정했다. 그날이 바로 2월 7일이다. 이날은 위대한 수학자 오일러가 사랑한 수 e의 날, 즉 오일러데이(Eulerʼs day) 또는 이데이(e day)다. e는 우리가 ‘오일러 수’라고도 부르는데, 그 값은 2.718281828…이다. 그런데 e를 처음 발견한 것은 오일러가 아니다. 이 수는 오일러 시대 이전에도 여러 곳에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정확히 누구로부터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다.

많은 수학자들은 이 수를 알고 있었다. 스위스의 수학자 자코브 베르누이(Jacob Bernoulli, 1654~1705)는 *복리문제를 연구하던 중에 이 수를 발견했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사람이 *1프랑을 연이율 100%로 저금했다면 1년 뒤에 이 사람은 2(=1×(1+1)1)프랑을 받게 된다. 그런데 만약 연이율 100%의 이자를 1년에 2번으로 나누어 6개월에 50%씩 복리로 받는다면 1년 뒤 받는 금액은 2.25(=1×(1+0.5)2)프랑이 된다. 또 1년에 4번으로 나눠 3개월에 25%씩 복리로 받는 경우에는 1년 뒤  받는 금액은 2.4414…(=1×(1+0.25)4)프랑이 된다.

이 이자를 1년 동안 매월 약 8.3%씩 복리로 받는다면 2.613035…(=1×(1+0.0833…)12)프랑, 매일 복리로 받는다면 2.714567…프랑을 1년 뒤에 받는다.

이때 복리의 기간을 더 짧게 하면 어떻게 될까? 베르누이는 기간을 아무리 작게 잡아도 금액은 무한대로 늘어나지 않고 어떤 일정한 금액을 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 금액의 숫자가 바로 e이다.

*복리

일정한 기간을 정해 그 기간마다 이자율에 따라 이자를 계산해 원금에 더하고 그 합계액을 다음 기간의 원금으로 하는 이자계산 방법을 말한다. 복리로 계산해 마지막에 받게 되는 금액을 원리합계라고 하는데, 원리합계는 ‘원금×(1+이율)이자를 받는 횟수’로 구할 수 있다.

*1프랑

스위스의 화폐 단위로 가치는 우리나라 돈으로 약 1100원이다.

오일러의, 오일러에 의한, 오일러를 위한

스위스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는 수학을 넘어 과학 분야에도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여러 사람들이 이미 그 존재를 알고 있었던 상수 e를 왜 오일러 수라고 했을까?

그 이유는 오일러가 이 특별한 수를 나타내기 위해 처음으로 기호 e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가 어디에서 이 기호를 처음 도입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먼저 오일러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레온하르트 오일러(Leonhard Euler)는 1707년 스위스의 바젤에서 태어났다. 그는 처음에 신학을 공부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자신의 진짜 적성은 수학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수학 외에도 신학과 천문학, 의학, 물리학 그리고 동양의 언어까지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그는 불과 26세의 어린 나이에 이미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학술원의 수학주임이 됐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학술원에서 14년 동안 많은 결과를 발표한 오일러에게 당시 독일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제는 베를린으로 와서 프로이센 학술원을 이끌어 달라고 초청했다. 초청을 받아들인 오일러는 베를린에 있는 프로이센 학술원에서 25년 동안 지냈지만 프리드리히 대제에게 아첨하는 사람들로부터 계속해서 견제와 질투의 대상이 됐다. 반면 오일러를 매우 존경한 러시아에서는 그가 프로이센으로 떠난 후에도 약간의 월급을 계속 주었다.

프로이센과는 정반대의 태도를 보여준 러시아인들의 정성에 감동한 오일러는 1766년 상트페테르부르크 학술원으로 돌아오라는 캐서린 황제의 초청을 흔쾌히 수락했고, 그의 나머지 17년 생애를 그곳에서 보냈다. 그는 1783년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오일러는 수학의 역사상 가장 많은 저술을 했는데, 그 결과 오일러의 이름은 수학의 전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는 생애 동안 530편의 책과 논문을 펴냈고 죽을 때 사후 47년 동안 상트페테르부르크 학술원의 회보에 싣기에 충분한 원고를 남겼다. 886점의 책과 논문을 포함해 오일러가 발표한 모든 것을 한데 모은 기념집을 1909년 스위스 자연과학회에서 만들기 시작했는데, 사절판 73권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분량으로 계획됐다. 이는 그가 살아 있는 동안 논문이나 책을 연평균 약 800페이지씩 쓴 셈이다.

e라는 수의 개념은 약 100년 이상 앞서서 로그가 발견된 이래로 이미 잘 알려져 있었으나 이것을 나타내는 표준 기호는 없었다. 오일러는 1727년에 러시아에 도착했는데, 그때 그는 대포의 발사실험을 시작했다. 그가 1727년 또는 1728년에 작성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는 대포의 발사실험 결과에 대한 원고에서 *자연로그의 밑을 나타내기 위한 문자로 e를 열 번 이상이나 사용했다. 또 오일러는 1731년에 골드바흐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수의 *쌍곡선에 로그를 취하면 1이 되는 수’에 문자 e를 사용했다. 그러다가 1736년에 출판된 그의책 ‘역학(Mechania)’에 문자 e가 최초로 인쇄됐다.
 

1744년 출판된 오일러의 저서 '선형 곡선의 해결책을 찾는 방법'
 

*자연로그

자연로그는 오일러의 수 e를 밑으로 하는 로그이다. y=ex일 때, x=logey=lny를 y의 자연로그라 한다.

*쌍곡선

평면 위에 있는 두 정점으로부터의 거리의 차가 일정한 점들로 이루어진 곡선.

무한 속에 숨어 있는 규칙

오일러 수를 나타내는 기호 e는 ‘지수’라는 뜻의 라틴어(exponentialium)의 첫 글자인 것으로 추측되지만 실제로 오일러가 e를 택한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당시 a, b, c, d는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다음 알파벳인 e를 택했다는 설도 있고, 자신의 이름(Euler)의 첫 글자 e를 선택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오일러는 매우 겸손한 사람이라 평소 동료나 제자를 위해 자신의 연구 결과를 늦게 출판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럴 가능성은 낮다. 어쨌든 이 기호는 오일러의 책에 인쇄된 이후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이제 오일러 수 e가 수학적으로 어떻게 정의되는지 알아보자. 그런데 오일러 수는 고등학교의 수학II 과정에서 간단히 소개하고 주로 대학에서 배우는 내용이므로 다음에 주어지는 모든 식을 이해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왜? 원래 오일러 수는 어려우니까.

먼저 앞에서 예로 들었던 베르누이의 복리문제에서 전체기간을 n등분한 경우, 마지막에 받는 전체 금액은 (1+1n)n이 된다. 따라서 전체기간을 n으로 무한히 나누고 복리 기간을 무한히 작게 해, 이를 연속적으로 적용하면 e=lim(1+1n)n으로 나타낼 수 있다. 그리고 이 식은 이항정리를 이용해 무한급수로 바꿀 수 있다(*자세한 내용은 xnote 참조).

무한급수를 이용해 설명한 식은 *①식과 같이 간단히 정리된다. ①식은 1665년 뉴턴이 처음 발견했다. 이 급수의 처음 7개 항까지의 부분합을 구하면 *②식이 되고, 각 항의 분모의 값이 급속하게 증가하므로 이 급수는 매우 빠르게 e에 수렴한다. 1737년에 오일러는 이 수를 다음과 같이 무한 번분수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무리수를 소수로 나타내면 겉보기에 숫자들이 제멋대로 나열되지만 아래와 같이 번분수로 표현하면 숫자들이 일정한 규칙으로 나열된다.



 

e를 이항정리를 이용해 무한급수로 바꿔보자
 

성장하는 나무와 퍼지는 소문의 공통점

오일러 수 e는 수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그 예를 일일이 적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오일러 수가 이용되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예를 소개하는데, 이 수가 이용되는 경우는 대개 복잡하다.



오일러는 수학뿐만 아니라 다방면으로 뛰어난 학자였다. 그가 이렇게 여러 방면에서 뛰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저명한 로마 작가들의 작품을 세심하게 읽고, 모든 시대와 국가의 사회사와 문화사를 열심히 연구했으며 언어와 문학의 많은 분야에서 폭넓게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훌륭한 업적을 이룬 데에는 그의 비상한 기억력이 크게 도움이 됐지만 무엇보다도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두 눈을 실명할 때까지도, 아니 실명한 이후에도, 마치 베토벤처럼, 수학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창작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노력 덕분에 오일러는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다. 여러분도 오일러와 같이 열심히 노력하면 반드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오일러가 만든 가장 우아한 공식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1년 02월 수학동아 정보

  • 이광연 교수
  • 김윤애
  • 도움

    김재완 교수
  • 도움

    이정은 팀장
  • 진행

    염지현 기자

🎓️ 진로 추천

  • 수학
  • 물리학
  • 화학·화학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