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학교에서의 첫날, 최근 수년 동안 이날만큼 긴장되고 설레던 적이 없었다. 과연 내가 캐나다에서 학생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 학생들이 내 말을 잘 알아듣고, 나도 학생들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캐나다의 수학교육은 우리나라와 얼마나 다르고 또 얼마나 같을까? 기대와 설렘 속에 캐나다 선생님이 되는 첫걸음을 내딛었다.
✚“미스(Miss)! 미스!”
수업시간에 여기저기 질문하는 학생들에게 수학을 알려 주고 있을 때였다.‘아가씨? 지금 나를 아가씨라고 부르는 건가?’순간 얼굴이 달아올랐다.‘어떻게 무례하게 아가씨라고 부를 수 있지?’
9월 2일 캐나다 랭스태프중등학교에서 첫 수업시간에 일어난 일이다. 이제는 익숙해진 미스라는 호칭이 그때는 어찌나 버릇없고 무례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이날은 9학년 학생들 앞에서 한국에서 온수학교사‘미스 박(Miss Park)’이라고 소개한 뒤, 담당선생님을 보조하며 학생들의 수학 풀이를 돕고 있는 중이었다. 알고 보니 학생들은 선생님을 티처(teacher)’ 고 부르지 않고‘미스터(Mr)’ ‘미즈(Ms)’라는 존칭과 함께 선생님의 성을 불렀다. 미스라는 말도 미스 박을 줄여서 부른 것이다.
캐나다의 학교는 작은 지구촌
캐나다의 학교는 마치 작은 지구촌과 같았다. 노랑머리의 백인 아이, 히잡을 두른 아랍계 아이, 중국이나 한국에서 온 동아시아 아이, 곱슬머리의 흑인 아이 등 전 세계의 모든 민족이 함께 수업을 듣는 느낌이었다. 다른 나라에서 캐나다로 이민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캐나다는 각 나라의 문화를 존중한다. 지난 추석 때 한국 학생 중 몇 명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각 민족의 명절을 인정해 줄 뿐 아니라 이 기간에는 수업 진도도 천천히 나간다고 한다.
신입생 입학식 때는 교감 선생님이 학교의 규칙을 멋진 랩으로 설명하는 놀라운 장면을 보았다. 나중에 랩을 참 잘 하신다고 말씀드리자 이 학교에 계속 있어도 좋다는 농담도 들을 수 있었다. 캐나다의 여유를 흠뻑 느꼈던 순간이다.
학교에서 처음 몇 주는 현지 선생님의 수업을 지켜보며 학생들이 질문할 때 조금씩 도와주기만 했다.첫 수업에 들어가서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 담당선생님이 소개해 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앞에 앉은 파란 눈의 학생이 내게 관심을 보이며 말을 걸었다.“니콜이라고 해요. 이름이 뭐예요?” 한국에서 온 수학교사라고 소개하자, 니콜은 무척 놀라며 친구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학생뿐 아니라 현지 선생님도 수업 중간 중간에 한국에서는 이 부분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물어보면서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학문적인 수학’ 배우거나 ‘응용 수학’ 배우거나
캐나다의 수학 수업방식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컴퓨터나 OHP 등을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 분필과 칠판을 이용한다. 하지만 한 학기에 배우는 수학 내용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적었다. 그런데도수학을 힘들어 하는 캐나다 학생을 보면서 우리나라 학생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수학교육과 가장 큰 차이점은 제도에 있다. 학생의 진로에 따라 4년제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은‘학문적인 수학’을 배우고, 2년제 대학 진학이나 중등학교 졸업만을 원하는 학생은‘응용 수학’을 배운다. 두 수업은 교과서뿐 아니라 가르치는 내용이나 평가하는 방법 등 모두 다르다.
학문적인 수학 수업은 교사가 강의하는 방식으로 딱딱하게 진행된다. 하지만 9학년 응용 수학 시간에는 원기둥의 부피를 구하는 법을 배울 때처럼 기초적인 내용을 다루면서 손으로 직접 하는 활동 중심의 수업을 한다. 수학 실력이 아주 부족한 학생을 위한 특별 과정도 있지만 10명 정도만이 기초적인 내용을 공부하고 있었다.
수학 시험에 계산기 쓴다
캐나다 수학 수업과 시험에서 우리나라와 가장 다른 점을 꼽는다면 계산기를 쓴다는 것이다. 수업시간에 계산기 사용방법도 가르쳐 준다. 공학용 계산기를 써서 거듭제곱과 거듭제곱근을 구하는 방법 등을 배울 수 있다. 계산기를 쓰기 때문에 간단한 자연수로만 이뤄진 문제를 넘어서 더 복잡한 숫자로 된 계산도 쉽게 할 수 있었다.
덕분에 9학년 학생들은 지름이 6.47cm인 테니스공의 부피를 구하는 활동을 별 어려움 없이 하고 있었다. 쪽지시험을 볼 때도 계산기를 가져오지 않은 학생에게는 계산기를 빌려 준다. 계산 실수로 문제를 틀린 적이 있는 한국 학생이 매우 억울해 할 일이다. 물론 기본적인 계산 능력은 필요하다. 캐나다 학생은 계산기를 써서 소수점을 계산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계산기를 쓸 수 없는 분수 계산이나 약분하는 문제는 어려워했다.
캐나다 중등학교의 수업시간은 75분이다. 우리 눈에는 길어 보이지만 내용을 자세히 배우고 문제를 풀며 질문을 할 수 있는 적절한 시간이었다. 수업에서 마지막 15분은 학생 스스로 교과서 문제를 풀고 개별적으로 질문하는 시간이다. 수업은 주로 유인물로 진행하며, 학생들은 구멍이 3개 뚫린 노트를 사용했다. 선생님이 나눠주는 유인물에도 3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 학생이 노트 바인더에 바로 꽂아 사용할 수 있었다.
학원 대신 ‘수학 도우미’ 찾아
올해 이 학교에 입학한 알리사(Alyssa) 학생은 이번 학기에 1교시 수학, 2교시 과학, 3교시 프랑스어, 4교시 과학기술 수업을 듣는다. 초등학교 때까지 알리사는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한 교실에서 담임선생님께 체육과 음악을 제외한 모든 과목을 배웠다.
하지만 중등학교에 오면서 수업 때마다 교실도 옮기고 과목도 스스로 정해야 했다. 다만 한번 과목을 정하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과목을 공부한다. 중등학교 4년 동안 30개의 과목만 이수하면 졸업할 수 있기 때문에 1학기에 보통 4과목을 배운다. 필수로 들어야 하는 과목이 있는데 수학은 3과목이 포함돼 있다. 수학이나 과학 쪽으로 진학할 학생은 수학을 2과목 정도 더 선택해서 듣는다.
캐나다에서는 선행학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수업을 마친 뒤에 수학을 따로 배우는 학생도 드물고 학원도 거의 없다. 다만 한국이나 중국 등 아시아에서 온 학생들은 수학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받기도 한다.
방과 후에 수학공부를 하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학생들은‘수학 도우미 학생을 찾아간다. 최고 학년학생 중에서 수학을 잘하는 학생들이 도우미로 자원해 학교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험을 앞두고는 많은 학생이 도우미를 찾는다.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면 낙제하는 유급을 피하기 위해서다. 도우미 학생은 후배를 돕는 만큼 봉사활동으로 인정받는다. 선생님이 도와주고 선배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학원이 필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나다 학생은 교과서도 사지 않는다. 교과서 한 권이 보통 10만 원씩 하기 때문에 대부분 학교 도서관에서 한 학기 동안 빌려 쓴다. 교과서를 펴낸 출판사에서 만든 문제집도 같이 빌리지만 문제를 푼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학생은 오후 2시 30분에 학교 수업을 마치면 댄스와 배구, 환경보호활동 등 클럽활동을 한 시간 정도 더 한 뒤 집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