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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의 나라

제2화 해와 달이 끄는 마차


지오의 나라


“허허, 소문대로 만만치 않은 녀석이군.”
 사내는 호탕하게 웃었다. 하지만 지오를 보는 눈빛은 날카롭고 매서웠다.
“네 말이 맞다. 그 정도 셈법은 나도 알고 있지. 하지만 너만 한 아이가 그리 빨리 계산을 하기는 쉽지 않은 셈인데……, 혹시 특별한 도구라도 갖고 있는 것이냐?”
“도구요?”
 지오가 고개를 갸웃하자, 사내는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지오의 입이 쩍 벌어진 건 그 때였다. 눈처럼 하얀 빛을 내는 막대! 상아 산대였다.
‘황산사님이 틀림없나 봐. 상아 산대는 왕실에서나 쓰는 거라고 하던데…….’

지금껏 수많은 산대를 보았지만, 상아로 만든 산대를 본 건 처음이었다.
“나는 이걸로 셈을 하지. 너는 무얼 갖고 하느냐?”
 사내는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지오를 보았다. ‘저 녀석의 주머니에선 뭐가 나오려나?’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지오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셈이야 머리로 하면 되지, 도구 따위가 왜 필요하나요?”
 순간 사내는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허허, 고 녀석! 참말로 당돌한 녀석이로세.”
 한참 웃고 난 사내는 산대를 허리춤에 차며 황급히 일어섰다.
“팥죽 다 먹었으면 그만 일어나라. 함께 갈 데가 있으니.”
“어딜요?”
 지오가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사내는 앞서 가며 소리쳤다.
“어딘 어디야. 궁궐이지. 내가 황현수라는 증거를 보여 달래지 않았느냐. 그러니 널 궁궐로 데려갈 밖에.”
사내를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잰걸음으로 뒤따르던 지오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세상에! 정말 궁궐이야.’
 눈앞으로 거대하게 버티고 선 궁궐 문이 보였다. 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선뜻 문을 열어 주는 걸로 봐선 황산사가 틀림없는 모양이었다. 막상 궁궐 안으로 들어가자 숨조차 편히 쉬기 힘들었다. 임금님이 계신 곳이라고 생각하니 꿀꺽꿀꺽, 잘만 넘어가던 침이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질 않았다.
 황산사는 궁에서도 외진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화려한 정원과 건물들을 돌아, 후미진 숲 길을 한참이나 걸어야 했다. 궁궐 안에도 이처럼 외따로 떨어진 곳이 있는 줄을 지오는 몰랐다. 궁궐엔 그림 같은 정원만 있을 거라고 상상했던 것이다. 
 후미지고 좁은 숲길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궁궐의 숲길도 여느 숲길과 다르지 않았다. 땔감이 떨어진 날이면 지겟작대기를 툭툭 치며 오르던 앞산과도 비슷했다.
 숲길 끝에 이르자, 조그마한 문이 나타났다.
“들어오너라.”

 황산사가 앞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은 그다지 크진 않았다. 하지만 작은 대문을 지나 마당 안에 또 문이 나타났다. 그 문을 지나자, 또 다시 다른 문……, 또 다른 문……. 지오는 비밀 장소라도 찾아드는 기분이 들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처음엔 자그마하던 문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문을 대여섯개 지나자 ‘천지관(天地官)’이라 쓰인 현판 앞에 닿았는데, 그 문은 궁궐 대문만큼이나 컸다.
 천지관 앞에 서자, 무언가에 홀린 듯 지오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정신을 차리려 머리채를 두어 번 세게 흔드는 참이었다.
 스르륵! 천지관 문이 열렸다. 거대한 몸집과는 달리 바람처럼 가볍게 열리는 문……. 안으로 들어가자 빙 둘러진 담장 아래로 여러 채의 기와지붕이 보였다. 산적들의 소굴이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지오는 몸서리를 쳤다.
 뚝뚝뚝! 탕탕탕! 닥닥닥!
 천지관에선 요란한 소리도 들려왔다. 달포아저씨의 대장간에서 듣던 낯익은 소리였다.
‘궁궐의 대장간인가?’
 지오가 귀를 쫑긋 세울 때였다.
“황산사님 오셨소.”
“아하! 요놈이 바로 그 셈 천재요? 지온가 뭔가 하는?”
 가장 큰 기와집의 문이 열리더니, 사내 둘이 나오며 반갑게 지오와 황산사를 맞았다.
“지오야, 이 분은 천복이시다. 조선 팔도 최고의 대장장이지.”
 황산사가 두 사내 중 유난히 피부가 검은 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짙은 눈썹에 듬성듬성한 수염, 그리고 다부진 몸매와 유난히 굵은 팔뚝……. 한눈에도 천복은 대장장이들의 대장임을 짐작케 했다.
“반갑구먼. 널 찾느라고 황산사님이 고생 좀 하셨지.”
 천복은 지오의 어깨를 툭툭 치며 웃었다.
‘날 찾았다고? 그럼 황산사님을 만난 게 우연이 아니란 거야?’
 지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이번엔 다른 사내가 나섰다.
“난 장갑수. 그냥 장도사라고 부르면 돼. 천문과 역법을 연구하지. 해와 달과 별은 물론 세상 이치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 내게 물어봐. 이래 봬도 태백산에서 100년이나 도를 닦은 몸이라구.”

장도사의 목소리에선 허풍이 넘실넘실 흘렀다. 작달만한 키에 유난히 가늘고 긴 눈은 간사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눈빛 속엔 번뜩이는 총명함이 함께 흘렀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누굴까?’
 지오의 머리 속에서 의심과 궁금증이 얼기설기 엉켰다. 왠지 모를 두려움도 함께 일었다. 그런 지오의 마음을 눈치 챈 걸까? 황산사가 집 안으로 지오를 끌며 말했다.
“이리 들어와 보렴. 여기가 뭘 하는 곳인지 알려 줄 테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벌겋게 달구어진 도가니화덕이었다. 사내 몇이 풀무질을 하는 옆으로 닦달모루 위에 달구어진 쇠를 올리고 다듬망치로 두들기는 대장장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한 쪽에선 쇠 날을 숫돌에 가는 사람도 보였다. 모두가 천복의 밑에 있는 사람들인 듯 했다. 천지관은 정말 궁궐의 대장간인 걸까?
“우리는 여기서 아주 특별한 걸 만들 거란다. 연월기라는 것이지.”
 황산사가 다부진 목소리로 말했다.
“연월기요? 그게 뭔데요?”
“우리를 멋진 곳으로 데려다 줄 도구지.”
 지오는 황산사의 말을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연월기가 대체 뭐야? 황산사님은 왜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거야?’
 지오의 눈길이 불안하게 흔들릴 때였다. 황산사는 지오와 눈높이를 맞추듯 다리를 구부렸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 두어라.”

 황산사의 눈빛은 진지했다.
“연월기란 시간을 다스리는 기구란다. 먼 시간의 땅으로 우리를 데려다 줄 기구지. 나와 천복, 그리고 장도사는 연월기를 만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야.”
“먼 시간의 땅으로 데려다 주는 기구라고요? 그럼 마차 같은 건가요?”
 지오의 말에 장도사가 웃음을 터트렸다.
“뭐, 마차? 하하하……. 그래, 마차하고도 비슷하지. 하지만 말이 끄는 게 아니고, 해와 달이 끄는 거니까 연월차라고 하면 되겠군.”
“해와 달이 끄는 마차요? 세상에 그런 것도 있어요?”
 지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제 우리가 만들면 되지. 하지만 저잣거리를 달리는 마차와는 달라. 연월기는 우리를 미래의 세상으로 데려가 줄 테니까. 어쩌면 먼 과거의 세상을 보게 될지도 모르지.”
“그럼 미래나 과거의 세상으로 데려다 주는 기구란 말인가요, 연월기가?”
 황산사와 천복, 장도사가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오는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과거로 갈 수 있다고? 그럼 누나가 살아 있던 시간으로 갈 수도 있다는 건가?’

 누나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마구 뛰었다. 지오는 뛰는 가슴을 누르듯 한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황산사를 보았다.
“근데 왜 하필 저를 이리로 데려온 건가요? 전 연월기 같은 건 몰라요. 약초를 캐는 일이나 셈을 하는 건 자신 있지만……. ”
 지오의 말에 황산사는 입술을 지그시 다물었다. 무언가 깊은 생각을 하는 눈치였다. 황산사는 입술을 몇 번 달싹달싹하다가 말을 이었다.
“넌 우리가 하는 일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단다. 너는 연월기의 미래니까.”
 지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네가 산학에 천재적인 능력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너를 데려오기로 마음을 먹었지. 연월기를 만드는 일엔 정확한 계산이 필요하거든.”
 황산사의 말은 여전히 알쏭달쏭했다. 하지만 무언가 대단히 중요한 일이 자신에게 맡겨지고 있다는 생각에 지오는 가슴이 버거워졌다.
“지오야, 연월기를 만드는 과정을 잘 보고, 기록해 두어라. 그게 바로 네가 할 일이란다. 며칠 뒤면 연월기의 시작을 알리는 제를 올릴 게다. 그 날부터 연월기를 만드는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그 과정을 빠짐없이 봐 두어라.”
 황산사의 말이 귓가에서 왕왕 울렸지만, 지오는 모든 일이 꿈결처럼 느껴졌다. 달포아저씨네 대장간 앞에서 황산사를 만나고, 궁궐에 들어오게 된 일, 그리고 연월기를 만든다는 이상한 사내들을 만난 일까지,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만약 우리가 연월기를 만드는 일에 실패를 한다면, 나와 천복, 그리고 장도사는 어찌될지 모른단다. 어쩜 살아남지 못할지도 몰라. 하지만 연월기를 만드는 일은 포기할 수 없는 일이야. 우리가 실패를 해도 다시 도전할 누군가가 필요하단다. 그 일을 네가 맡아 줬으면 좋겠구나.”
 황산사의 깊은 눈길이 지오를 보았다. 순간 지오는 온몸으로 오소소 돋아나는 소름을 느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에 가슴이 자꾸 방망이질을 했다. 무언가 아주 큰일에 자신이 말려들고 있다는 예감에 지오의 몸은 부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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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6월 수학동아 정보

  • 이향안
  • 진행

    장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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