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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현장취재] 죽은 과학자의 사회

 

10월 31일 저녁 7시,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을 찾은 기자는 침을 꼴깍 삼켰어요. 행사장 입구에 커다란 묘비와 제사상이 있었거든요. 묘비에는 ‘Dead Scientist(죽은 과학자)’라고 쓰여 있었어요. 제대로 찾아왔음을 실감하며 기자는 미리 준비해 온 유령 랜턴에 불을 켰어요. 독특한 이 행사장, 무엇을 하는 곳이었을까요?

 

죽은 과학자를 소환하라!

 

고양이 귀를 붙이고 박스에 들어간 참가자에게 조심스럽게 정체를 묻자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답이 돌아왔어요. 함께 서 있던 다른 참가자는 플라스크를 들어 보이며 “제가 슈뢰딩거”라고 덧붙였죠.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양자역학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고 실험의 주인공이에요. 양자역학에 따르면 상자 속의 고양이는 죽어 있거나 살아 있는 두 상태로 공존한다는 내용이지요.

 

죽은 과학자의 사회는 현직 과학자와 예비 과학자가 각자 존경하는 ‘죽은 과학자’로 분장해 과학 이야기를 나누고 이벤트를 즐기는 행사예요. 100명의 죽은 과학기술인들이 국립중앙과학관 광장에 모였지요. 참가자 중에는 뉴턴, 오펜하이머, 멘델 등 실존 인물도 있고, 영화 ‘쥐라기 공원2’에서 티라노사우루스에게 잡아먹힌 과학자 로버트 버크 등 가상의 인물도 있었어요. 분장을 보고 누구인지 맞히는 것도 행사의 묘미였지요. 

 

행사장 곳곳에는 핼러윈과 과학을 테마로 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됐어요. 죽은 과학자를 소환하는 전자음악(EDM) 파티, 자신의 묘비 문구를 쓰는 “What’s on my 묘비?”, 죽은 과학자들이 다시 하늘로 올라갈 때 타는 열기구까지, 상상을 뛰어넘는 독특한 이벤트가 잔뜩 이어졌답니다. 

 

특히 인기가 있었던 프로그램은 페임랩이었어요. 페임랩은 대중에게 과학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전하는 3분 이내의 짧은 강연이예요. 여러 죽은 과학자가 자신의 생전 업적을 소개했는데, 그중 F.D.C. 윌러드라는 고양이가 인기를 끌었어요. F.D.C. 윌러드는 논문 저자로 등재된 고양이예요. 무대에 오른 윌러드는 “이론물리학자인 집사가 논문에 내 이름을 공동 저자로 올려서 세계 최초로 논문을 쓴 고양이가 됐다”며, “당시 수많은 전화가 왔지만, 고양이라 통화를 못했다”는 일화를 전했어요. 

 

 

관람객이 주인공이 되는 과학 행사

 

죽은 과학자의 사회는 지금까지 보던 과학관 행사와는 사뭇 달랐어요. 행사를 기획한 국립중앙과학관 전시운영정책과 기현정 연구사는 “존경하는 과학자를 기리고 과학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전했어요. 

 

또 과학계의 분위기가 훨씬 유연해지는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완두콩을 든 멘델, 김석형 과장은 “예전에는 과학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설명을 듣기만 했다면, 이제는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스피커’가 되도록 바꾸고 있다”고 말했어요. 그러면서 “과학을 직업으로 삼지 않아도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놀 수 있는 장소가 되는 것이 과학관의 역할이 아닐까 한다”고 설명했지요. 

 

축제가 무르익자, 본격적으로 귀신들을 위한 EDM 파티가 시작됐어요. 카이스트의 DJ 동아리 ‘퓨즈’가 무대에 올라 흥겨운 음악을 들려줬어요. 오펜하이머로 분장하고 디제잉을 한 카이스트 전산학부 김현규 학생은 “한 명이 뉴턴 분장을 했는데 가발 때문에 헤드셋 소리가 잘 안 들리는 고충이 있었다”고 말했어요. 그러면서도 “과학관에서 EDM 파티를 한다는 게 색다르고 분위기가 좋아서 즐겁다”고 덧붙였지요.  

 

자몽으로 핼러윈 랜턴 만들기, 눈알 구슬 던지기 등 여러 체험 부스 가운데, 줄이 끊이지 않았던 건 사격 게임이었어요. ‘논문 심사 거절’, ‘연구비 삭감’, ‘교수님’ 등 과학기술인들이 자주 마주하는 난관들을 표적으로 만들어 웃음을 자아냈어요. 모든 표적을 맞춘 이유정 수의사는 “학창 시절 교수님과 연구실 생활에서의 경험을 떠올렸다”고 성공 비결을 밝혔어요.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죽은 과학자들이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열기구 체험이었어요. 불꽃을 내뿜는 열기구에서 내려다본 과학관의 풍경은 정말 특별했어요. 김석형 과장은 “곧 마법사와 머글(마법을 쓰지 못하는 보통 사람)이 함께하는 국립머글과학관 탐방 프로그램도 열릴 예정이니 많은 관심 바란다”고 당부했어요. 그럼 다음 행사를 기다리며, 우린 지상에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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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일 어린이과학동아(23호) 정보

  • 박현선
  • 디자인

    정영진
  • 사진

    어린이과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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