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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천문학자] 이름도 없고 빛도 없다?!

▲GIB
 

 

얼마 전, 막내 아이의 유치원 발표회에 갔습니다. 아이들이 몇 달 동안 열심히 연습한 춤과 노래, 악기 연주를 선보이는 자리였죠. 발표회에서는 정말 다양한 공연이 진행됐어요. 꿀벌 분장을 한 5세 막내들의 귀여운 율동, 7세 언니 오빠들의 멋진 태권도 시연과 K-POP 안무도 있었지요.

 

 
➊ 암흑물질의 존재를 처음으로 추측한 스위스 천문학자 프리츠 츠비키. ➋ 머리털자리 은하단에 속한 은하들의 모습.

 

은하단의 보이지 않는 힘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말도 잘 안 듣는 어린아이 수십 명이 어떻게 순서를 다 지켜 가면서 멋진 공연을 할 수 있었을까요? 첫 번째 공연이 끝날 때쯤 보니, 여러 선생님이 무대 뒤에서 아이들에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율동 시간에는 무대 아래에서 선생님 한 분이 열심히 율동 지도를 하고 있었고요. 막내에게 들어 보니, 무대 뒤에서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선생님들이 간식을 나눠주기도 하셨대요. 아이들의 멋진 발표회 공연을 위해, 뒤에서는 선생님들이 이름도 조명도 없이 열심히 노력하신 것이었죠.

 

이런 유치원 발표회 같은 일은 우주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를 처음 눈치챈 사람 중 하나는 스위스의 천문학자 프리츠 츠비키예요. 지금으로부터 약 90년 전인 1933년, 츠비키는 머리털자리 은하단이라는 천체를 연구했어요. 이 은하단은 1000개가 넘는 은하가 모여서 이루어진 아주 큰 은하단이에요. 은하가 유치원생이라고 하면, 머리털자리 은하단은 전국에서 손꼽을 정도로 아이들이 많은 유치원이라고 할 수 있죠.

 

은하단 안의 은하들은 질서를 갖고 움직입니다. 아이들의 공연이 미리 짜인 순서대로 진행되듯, 은하의 움직임은 중력, 즉 만유인력을 따라가죠. 만유인력은 질량이 있는 물체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 중력을 따라 움직이는 은하들의 속도가 너무나도 빨랐던 거예요. 마치 유치원 아이들이 어렵기로 유명한 아이돌 댄스를 칼군무로 맞추어 추는 것과 같은 일이었지요!

 

츠비키는 눈에 보이는 은하의 수로 중력의 크기를 짐작해 봤지만, 그것만으로는 은하들의 움직임을 설명하기 어려웠습니다. 과연 머리털자리 은하단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다

 

칼군무 은하를 본 프리츠 츠비키는 은하단 안에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 즉 ‘암흑물질’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물질에도 중력이 있어서 은하들을 붙잡아두는 것이라는 생각이었어요. 마치 유치원 발표회 무대에는 보이지 않지만, 무대 뒤에서 움직이며 발표회를 위해 노력하던 수많은 선생님처럼 말이죠. 하지만 츠비키는 평소에 워낙 특이한 주장을 많이 하던 사람이라, 당시 사람들은 츠비키의 주장이 헛된 이야기라고 여겼습니다.

 

그로부터 35년 정도가 흐른 1970년, 미국의 천문학자 베라 루빈이 다시 암흑물질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외계 은하를 관찰하던 루빈은 은하들의 회전 속도가 중력의 법칙에 벗어난 수준이라고 생각했어요.

 

루빈의 계산에 따르면, 은하들이 이렇게까지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중력을 가진 암흑물질이 눈에 보이는 물질보다 5배는 더 많아야 했죠. 루빈의 연구 결과를 본 후에야 천문학자들은 비로소 암흑물질이 있다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무대에서 주목받는 화려한 스타가 될 수는 없어요. 츠비키의 암흑물질 이야기가 오랫동안 잊혔던 것과 같이, 아무리 대단한 발견이라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고요. 그러나 꼭 스타가 되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될 수는 있습니다. 마치 암흑물질처럼, 무대 뒤에서 묵묵히 아이들을 이끌고 격려하던 선생님들처럼 말이에요.

 

유치원 발표회 마지막 순서인 전체 합창에서는, 뒤에 숨어만 계시던 선생님들도 함께 무대에 올라오셨어요. 부모님들이 선생님들께 보내는 감사의 박수 소리가 큰 공연장을 오랫동안 울렸답니다.  

 

필자소개
홍성욱(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우주론과 외계생명 등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로, 우주의 가장 큰 구조물인 우주거대구조를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인공지능을 이용해 연구하고 있다. 현재 한국천문연구원 이론천문센터의 책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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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일 어린이과학동아(19호) 정보

  • 홍성욱(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 에디터

    조현영
  • 디자인

    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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