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이 영국의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의 손에서 탄생했습니다. 항생제는 이후 점점 더 발전하며 인류 수명을 크게 향상시켰어요. 하지만 사용하고 남은 약물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채 전 세계 강 곳곳으로 흘러들어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어요. 지난 2월, 영국 요크대학교 연구팀은 강으로 유입되는 항생제가 제 2의 팬데믹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발표했어요.
전 세계 강 4분의 1,
항생제에 중독되다
여러분의 집에서는 먹다 남은 약을 어떻게 처리하나요? 세면대에서 약통을 씻어 버리거나, 변기에 버리는 경우도 흔해요. 지난 2월 22일, 영국 요크대학교 환경지리학과 존 윌킨슨 교수팀은 이렇게 강으로 흘러든 약물로 인해 전 세계 강 중 4분의 1 이상이 오염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항생제는 세균을 죽이거나 번식을 억제해 세균 감염을 치료하는 데에 사용되는 약물이에요. 몸에 침입한 세균을 빠르게 잡아주지요. 하지만 항생제를 비롯한 약품 사용이 늘어나며 의약품 폐기물은 지금 세계적인 문제가 되었어요. 버려진 약물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강이나 바다로 흘러들어가 생태계 속 미생물이 약물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죠. 장기간 노출되면 미생물들은 항생제 성분에 익숙해지고 점차 저항력이 생기게 돼요. 이를 항생제 내성이라고 합니다.
연구팀은 약물 오염의 영향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104개국 258개의 강 주변 1052개 지점에서 물을 수집했어요. 수집한 강물에 대해 61가지의 약품 성분을 분석한 결과, 조사한 지점 네 곳 중 적어도 한 곳에서 기준치 이상의 약물 성분이 검출되었어요. 항생제, 수면제 등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약물이 강물에 녹아 있단 사실이 확인되었지요. 연구팀은 오염된 강의 항생제 내성 농도가 적정 수준을 넘어서 물에 사는 세균 등 미생물이 강에서 살기 유해하다고 판단했어요.
한강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와 남부 아시아, 남아메리카 등은 다른 지역보다 약물 오염이 높게 나타났어요. 하수 처리 시설이 선진국에 비해 열악해서 의약품 폐기물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세계에서 약물 오염 농도가 가장 높은 곳은 파키스탄의 라호르였습니다. 중윗값보다 무려 47배나 높았죠.
우리나라의 한강 또한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한강의 약물 오염 농도는 중윗값보다 3배 이상 높았어요. 순위를 매긴 137개 지역 중 43위로 약물 오염 농도가 상위권에 속했지요. 약물이 검출되지 않은 지역은 아이슬란드와 현대 의약품이 사용되지 않는 베네수엘라의 야노마미 원주민 마을까지 단 두 곳에 불과했어요.
항생제에 중독된 강, 슈퍼버그 탄생지가 될 수도
세계 각지의 보건의료 단체는 세균 같은 미생물이 강을 비롯한 자연에서 약물에 적응하며 약효가 들지 않는 ‘슈퍼버그’의 탄생을 우려합니다. 슈퍼버그는 항생제 등 약물 대부분에 내성이 있는 변종 세균이에요. 세균이 항생제에 대한 내성이 강해지면 병균에 감염되어 병이 나타나도 약효가 떨어져 치료에 어려움을 겪게 되지요.
2014년, 영국 정부는 이러한 슈퍼버그로 인해 2050년에 매년 10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사망하고 막대한 치료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 경고했어요. 또한 지난 2월에는 미국 워싱턴대학교 공동연구팀이 2019년 한 해 동안 100만 명 이상이 항생제 내성균 감염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밝히기도 했지요. 윌킨슨 교수는 “지금까지는 한정된 지역에서 일부 약품만 조사되었다”며 “이번 연구로 조사된 61가지 약품과 258개 강 이외에도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하며, 코로나19 이후 제 2의 팬데믹을 막기 위해선 의약품 관리에 꾸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