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2월 19일, 남아메리카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북동쪽으로 약 330km 떨어진 바다. 해양학자인 존 콜리스와 치어드 판 안델, 그리고 조종사인 잭 도넬리는 유인 심해 잠수정 앨빈호를 타고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약 2700m 깊이의 물속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목적은 ‘열수분출공’. 열수분출공은 해저 지각의 틈 사이로 들어간 바닷물이 마그마에 의해 데워져 다시 솟아 나오는 지형입니다. 암석에 포함된 다양한 금속 성분이 약 350℃로 가열된 바닷물에 녹아 함께 분출되지요. 그러나 그들을 놀라게 한 건 열수분출공이 아니라, 그 주변에 무리 지은 엄청난 양의 생물들이었습니다. 커다란 조개부터 기다란 기둥처럼 생긴 관벌레, 껍데기가 하얗고 눈이 퇴화한 새우와 게까지, 처음 보는 생물들이 열수분출공 주변에서 다채로운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지요. 햇빛 한 점 없는 고온고압의 극한 환경인 심해에 이렇게 많은 생물이 살 거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죠.
생물학자들은 생물이 살려면 영양분을 만들 에너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지상에서는 햇빛을 받은 식물이 광합성을 해서 만든 양분이 생태계를 지탱해요. 그런데 햇빛이 없는 심해 생물은 어떻게 양분을 얻을까요? 연구 결과, 열수분출공에서 나오는 황화수소로 영양분을 만드는 세균이 발견되었습니다. 열수분출공에서는 햇빛 대신 화학물질로 양분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광합성이 아닌 ‘화학합성’이라고 부릅니다. 열수분출공 생태계는 생물학자들의 생각을 뒤바꾼 대발견으로, 지금도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