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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고문서 속에 등장한 염전 이야기에 주목했다!

“검당포에 있는데 바다로 2리 남짓 들어갔다. 그 물이 희고 짜서….” 
1530년에 편찬된 조선 시대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 속 한 구절이야. 그런데 같은 염전을 묘사한 『지봉유설』 속 염전의 위치가 서로 다르잖아? 
흠…, 그렇다면 해수면 높이가 달라진 건 아닐까?

 

백제 27대 위덕왕 24년(577), 전라북도 고창군 선운산 계곡엔 많은 도적이 살고 있었어요. 도적들은 금품을 훔치고 주변 민가에 폐를 끼쳤지요. 이를 본 스님 검당선사는 도적들을 모아 바닷가에서 소금 만드는 법, 닥지로 한지 만드는 법, 숯 만드는 방법을 알려 주며 사람답게 살라고 일러주었어요. 그때부터 도적들은 전통 소금인 ‘자염’을 생업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개과천선하게 되었어요. 이후 이들은 보답으로 검당선사가 창건한 선운사에 은혜를 갚는 소금 ‘보은염’을 한 가마씩 바쳤고, 새로운 인생길을 열어준 검당선사의 이름을 따 마을 이름도 검당이라 지었답니다.             

  『지봉유설』에 담긴 설화 내용

 

 

설화, 지리서, 지도 다양하게 살폈다!
지난 10월,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남욱현 박사와 경북대학교 최정해 교수팀은 전라북도 곰소만의 지형과 고문서에 나온 염전 위치의 기록을 연관 지어 ‘해수면의 변화’를 파악했다고 발표했어요.


소금과 해수면이 무슨 관계냐고요? 1907년 일본에서 천일염● 제작 방식이 도입되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선 전통적으로 농도가 진한 바닷물(함수)을 끓여 소금 ‘자염’을 만들었어요. 이때 함수는 밀물과 썰물 때의 해안선 사이(조간대) 모래가 약간 섞인 갯벌에서 가져와요. 그래서 염전은 밀물이 들어오는 끝자락에 세워졌죠. 남욱현 박사는 고문서에서 염전 위치를 찾아 해수면의 높이를 유추하는 연구를 진행했어요. 과거 나라 운영을 위해 소금을 세금으로 거둬들였고, 소금 생산은 당시 백성의 생계를 책임지는 주요 산업이었기 때문에 고문서에 기록이 꼼꼼하게 남은 덕분이죠.


남 박사팀은 『지봉유설』과 주변의 제방 위치와 높이, 곰소만의 고도를 고려했을 때 백제 시대인 500년 전후엔 검당마을 바로 앞 갯벌에 염전이 있었을 거라 추정했어요. 반면 조선 초기(1530)에 쓰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엔 검당마을에서 바다 쪽을 향해 800m 들어간 갯벌에서 함수를 퍼왔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해수면이 낮아져 바다가 검당마을에서 멀어졌단 뜻이죠. 연구팀은 『택리지』, 『지방지도』를 추가 분석해 해수면이 1500년대에는 낮아졌다가, 1800년대 이후로는 다시 높아져 지금에 이르렀다고 유추했답니다.

●천일염 : 염전에 끌어다 놓은 바닷물을 햇빛에 말려 만든 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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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3호 어린이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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