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도 좋아하고 기계도 좋아해서 고민인 분들, 주목! 로봇연구실에도 디자이너가 있대요. 송정률 디자이너는 서울대학교 인간중심소프트로봇기술연구센터에서 딱딱한 금속이 아닌 부드러운 재료로 소프트로봇을 개발하는 공학연구자들과 5년째 일하고 있어요. “미래엔 로봇디자이너가 많이 필요할 것”이라는 송 디자이너의 말은 과연 진실일까요? 여러분이 판단해 보세요!
독특한 이력의 디자이너, 연구실의 문을 두드리다
“학술지의 표지 그림을 그리는 디자이너가 연구실에 있다고요?”
로봇 기사를 준비하던 지난해 12월, 기자가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 조규진 교수에게 반문했어요. 논문이 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의 표지를 장식했는데, 표지 그림을 연구실 소속 송정률 디자이너가 그렸다고 말해서였죠. 심지어 조 교수는 “디자이너는 로봇 디자인에도 연구 단계에서부터 참여한다”고 말했어요. 대부분 연구실이 기술을 완성한 후 디자인을 의뢰하는 것과는 달랐지요.
1월 30일 기자는 송 디자이너를 직접 만나 자초지종을 물었어요. 송 디자이너는 “패션디자인을 대학원에서 공부한 뒤, 장애인을 위한 재활기기를 디자인하고 싶어 교수님을 찾아갔다”고 말했어요. 원래 사범대학을 다니던 송 디자이너는 그림과 관련한 일을 하고 싶다는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패션디자인을 공부하는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기쁨도 잠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던 송 디자이너는 패션디자인이 누구에게 도움이 될지 고민에 빠졌어요. 그러다 장애인의 패션을 연구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송 디자이너는 “장애인도 경제 활동에 활발히 참여할 미래를 위해, 휠체어에 앉았을 때 주름이 덜 생기는 티셔츠나 멋진 의수, 의족들을 미리 준비하고 싶었다”고 말했어요.
조 교수의 연구실은 꿈을 이루기에 알맞은 곳이었어요. 장애인을 위한 웨어러블 로봇*을 만들고 있었거든요. 송 디자이너는 조 교수를 직접 찾아가 함께 일하고 싶다고 했어요. 조 교수는 “소프트로봇은 새로운 형태를 상상해야 하기에, 디자이너와 함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답니다.
●마비 환자가 20초 만에 로봇 장갑을 끼는 방법은?
Q 장애인용 로봇 장갑 개발에 참여하셨다면서요.
우리 학교 학생 중에 사고로 마비 환자가 된 분이 있었어요. 마비 환자도 공부를 할 수 있으려면 펜을 잡고 필기를 해야 하잖아요. 그럴 수 있도록 힘을 주는 로봇 장갑 개발에 참여했어요. 공학연구원은 줄이 잡아당기는 힘을 이용하는 소프트로봇 기술을 개발했고, 저는 마비 환자도 장갑을 스스로 착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지요.
Q 마비 환자가 어떻게 혼자서 장갑을 끼지요?
책상과의 마찰력을 이용해 장갑을 낄 수 있도록 바닥 쪽에 실리콘을 붙였어요. 실험 참여자 혼자 장갑을 끼는 데 딱 20초가 걸린 것을 확인했지요. 이처럼 장애인을 위한 웨어러블 기기는 스스로 착용할 수 있는 등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게 중요해요. 매번 의존해야 하는 환경을 만들면 장애인의 자존감이 떨어질 수 있거든요.
Q 로봇 장갑 디자인에 또 기여한 부분이 있다면요?
필기를 편하게 하려면 장갑의 어떤 부분은 거칠어야 하고, 어떤 부분은 단단해야 하고, 또 어떤 부분은 신축성이 좋아야 해요. 예를 들어, 필기할 때 손이 펜이나 종이와 닿는 부분은 마찰력이 커야 해요. 그 부분이 어딘지 알기 위해 종이에 페인트를 칠해두고 장애 학생이 필기를 할 때 어떤 면에 페인트가 묻는지 확인하는 실험도 했지요. 그 후 연구원과 함께 동대문 원단 시장에 가서 수많은 천을 사다가 마찰력 등의 점수를 매겨 장갑의 소재를 선정했답니다.
Q 연구원과의 협업이 중요한 이유가 뭔가요?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연구 단계부터 협업해야 한다는 건 학교에서도 가르칠 정도지만, 실제로 그런 곳은 많지 않아요. 서로 원하는 게 다르니 힘이 들거든요. 공학자는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게 중요하지만, 디자이너는 예쁘고 편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죠. 하지만 기술이 완성된 후에야 디자이너가 참여하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생겨요. 중요한 부품이나 칩이 들어가야 하는 곳을 예쁜 외형을 만들기 위해 없애달라고 하기 힘드니까요. 처음부터 같이 설계하면 서로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죠.
●스누맥스가 나선형 몸매를 지닌 이유
Q 협업을 하면서 로봇의 모양이 계속 바뀐 사례도 있나요?
2016년 열린 제1회 ‘로보소프트 그랜드 챌린지’에서 우승한 ‘스누맥스’를 개발할 때예요. 첫 대회라 연구실의 모든 사람들이 교대하며 거의 24시간 동안 작업했지요. 원래는 지형과 장애물에 따라 바퀴와 몸체를 부풀리고 줄일 수 있는 로봇 자동차로 설계를 했어요. 이런 설계에 따라 천산갑을 닮은 모습으로 제작하자고 제가 아이디어를 냈고요. 하지만 개발 과정에서 동료 연구원들이 몸체까지 크기를 조절하는 건 무리고, 부품을 효율적으로 넣기 위해 육면체로 만들자고 주장했죠. 저는 몸체가 육면체면 자동차를 예쁘게 만들기 어렵다고 반대했고요. 결국 천산갑의 곡선을 유지한 스누맥스가 탄생했답니다.
Q 이런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공학연구원들이 모두 개성이 강해요. 제가 경계선을 긋고 연구원에게 맞추라고 하면 충돌이 일어나죠. 디자이너는 유연하게 자신의 역할을 조율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어떤 경우엔 색깔 같은 장식적인 조언만 주고, 어떤 경우엔 직접 설계를 하기도 해요. 물건을 잡을 수 있는 ‘전갈로봇’이 설계에 기여한 경우지요. 어느 날 한 연구원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레고 블럭 하나를 들고 와서 어디에 쓰일 수 있을지 묻기에, 제가 전갈을 닮은 레고 로봇을 설계하자고 제안했답니다.
Q 다양한 로봇 개발에 참여하시는군요.
오기 전엔 이처럼 다양한 로봇이 있는 줄 몰랐어요. 모두 재활기기에서 충분히 응용 가능하기 때문에 재밌고 유익해요. 다양한 로봇을 디자인하다 보니 다양한 기술을 폭넓게 접하게 돼서 지금은 동료 연구원에게 연구 방향에 대한 조언까지 해주곤 한답니다.
Q 어과동 독자에게도 조언을 해주세요!
과녁을 맞추려면 방아쇠를 열심히 당기는 것보다 조준을 잘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조준을 잘하면, 그것을 어떻게 얻을지는 알아서 정해지기 마련이거든요. 이를 고려하지 않으면 공부 방법만 알게 되니까 목적과 흥미가 생기기 어려워요. 그러니 부모님도 자녀가 어떤 사람인지 정의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시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