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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동북부 요크셔 지방에는 ‘스타 카(Star Carr)’라는 이름의 석기시대 유적이 있어요. 1948년 발견된 이 유적은 사슴뿔로 만들어진 도구와 함께 많은 동물 뼈가 발굴되면서 유명해졌지요. 당시 유적 발굴을 책임진 고고학자 그레이엄 클라크는 ‘고대인들은 겨울에 스타 카에 와서 살았을 것이다’는 주장을 펼쳤어요. 고고학자에게 뼈와 뿔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준 것일까요?
사슴뿔은 답을 알고 있다?!
석기시대 사람들은 정말 석기만 썼을까요? 고고학자들은 돌만큼이나 뼈나 나무로 만든 도구도 많이 썼을 것으로 추측해요. 단지, 돌로 만든 도구는 썩어 없어지지 않아서 지금도 발견된 거죠.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도구의 재료로 특히 사슴의 뼈를 좋아했어요. 사슴뿔은 매우 단단해서 사람들은 뿔을 뾰족하게 갈아 송곳이나, 화살촉, 칼, 장식 등의 골각기*를 만들었어요. 스타 카 유적에서도 사슴뿔로 만든 도구가 많이 출토되었지요.
그레이엄 클라크는 스타 카 유적에서 발견된 사슴뿔 도구 중에 두개골에서 떨어진 뿔로 만든 것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챘어요. 사실, 사슴의 뿔은 1년마다 떨어졌다 다시 자라요. 봄에 자라기 시작한 뿔은 겨울이 되면 성장을 마치고 통째로 떨어져 나가죠. 이것은 사슴뿔의 성장이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에요.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량은 일사량*에 따라 달라지는데, 일사량이 늘어나는 봄과 여름에 뿔이 자라고, 일사량이 줄어드는 늦겨울에서 봄 사이 떨어지죠.
그레이엄 클라크는 떨어진 사슴뿔로 만든 도구가 많이 발견된 것은 수렵 채집인들이 겨울에만 스타 카에 머무른 증거라고 생각했어요. 숲에 떨어져 있는 사슴뿔을 주워 도구를 만들었다고 추측한 것이지요. 어때요, 그럴듯한가요?
▲덴마크에 사는 수컷 붉은 사슴의 모습. 수컷 사슴의 뿔은 짝짓기철에 암컷에게 자신을 과시하고 경쟁자 수컷과 겨루기 위해 쓰인다. 겨울철에는 천적을 방어하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Bill Ebbesen(W)
사람도 사는 곳을 옮겨 다녔다!
집에서 살며 음식을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대인과 달리, 수렵채집을 한 고대인들은 철새처럼 이동 생활을 해야 했어요. 계절마다 구할 수 있는 먹거리가 달라지니 식량이 떨어지면 사는 곳을 옮겨야 했거든요.
고고학자들은 고대인들이 한 곳에 정착했는지,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살았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농사, 토기의 발명 등 인류의 큰 혁신이 정착 생활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여러 증거를 통해 고대인들의 이동을 추적하려 하지요. 예를 들어, 7월 15일 자에서 소개한 우리나라 서해안의 패총에서 발견된 굴 껍데기는,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적어도 가을부터 봄까지는 바닷가나 그 가까운 곳에서 살았다는 것을 의미해요. 굴은 살이 오르는 겨울이 제철인 데다, 여름에 먹으면 식중독에 걸릴 위험도 있었거든요.
그레이엄 클라크가 사슴뿔 도구에 관심을 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예요. 그는 사슴뿔의 형태를 통해 스타 카 유적을 만든 사람이 겨울에만 이곳에서 생활했다고 추측했어요.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반전이 있어요!
그레이엄 클라크의 연구를 살펴본 후배 고고학자들은 그가 연구한 뿔이 고대인들의 생활에 대한 증거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들은 사슴뿔 대신 함께 발견된 동물 뼈들, 특히 사슴 턱뼈의 이빨을 살펴봤어요. 사슴은 초여름에 태어나 2년 동안 순서대로 이빨이 자라는데, 이를 보면 사냥 당시 사슴의 나이를 알 수 있거든요.
조사 결과, 스타 카 유적에서 발견된 사슴은 한 살이 제일 많았어요. 이는 태어난 지 1년이 지난 사슴이 초여름에 사냥을 당했다는 뜻이죠. 그뿐만 아니라 스타 카 유적에서 발견된 새 뼈 역시 여름에 영국을 들르는 여름 철새임이 밝혀졌어요. 그래서 현재 영국의 고고학자들은 수렵 채집인들이 여름에만 스타 카 유적에서 머물면서 사냥을 했다고 추측하고 있답니다.
수렵 채집인이 철새처럼 옮겨 다녔다는 연구를 통해, 요즘에는 인간이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며 함께 진화했다는 시각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고고학자가 늘고 있답니다. 흠, 석기시대의 수렵 채집인이 보기에는 사계절 내내 같은 생활을 반복하는 현대인이 더 지루해 보이진 않을까요?
용어정리
*골각기 : 동물의 뼈나 뿔, 이빨 등으로 만든 도구와 장신구.
*일사량 : 태양 에너지가 땅에 닿는 양. 해가 긴 여름에는 늘어나고 짧아지는 겨울에는 줄어든다.
고은별(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고고학을 공부했다. 시흥 오이도 유적, 구리 아차산 4보루 유적, 연천 무등리 유적 등 중부 지역의 고고학 유적 발굴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