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가로지르는 4호선 지하철의 남쪽 종착역은 오이도역이에요. 서해와 가까운 이곳에 내려서 조금만 가면 맛있는 조개구이를 먹을 수 있죠. 언제부터 사람들이 오이도에서 조개구이를 먹었을까요? 놀라지 마세요. 지금 조개구이집이 즐비한 거리 뒤편에는 야트막한 언덕이 있는데, 이곳에는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조개를 먹고 껍질을 버린 곳, ‘패총’이 있답니다!
산처럼 쌓인 조개껍데기의 무덤, 패총!
‘패총’은 옛날 사람들이 버린 엄청난 양의 조개껍데기가 쌓여 만들어진 무더기를 말해요. 굴, 꼬막, 백합, 고둥 등 다양한 종류의 조개껍데기가 발견되지요. 그와 함께, 당시 사람들이 먹고 버린 짐승과 물고기의 뼈, 사람들이 쓴 도구도 나와요. 특히 동물 뼈는 산성인 토양에서 쉽게 썩지만, 패총에서는 조개껍데기에서 나온 탄산칼슘이 토양의 산성을 중화하면서 오랫동안 보존된답니다. 고대인의 쓰레기장이라 생각하면 쉬울 것 같네요.
무덤을 뜻하는 ‘총(塚)’이라는 한자 때문에 무덤 같은 모습을 상상하기 쉽지만, 실제로 패총은 다양하게 생겼답니다. 패총은 전 세계에서 발견되는데, 그 두께가 1~2m부터 큰 것은 4~5m가 넘어요. 우리나라에도 신석기시대부터 조선 시대 사이에 만들어진 300여 개 이상의 패총이 있답니다. 대부분 서해안과 남해안에서 발견되는데, 굴 껍데기가 많고 여러 조개류가 섞여 있지요. 경기 시흥시 오이도선사유적공원을 비롯하여 충남 태안군 고남면, 경남 김해시 봉황동, 부산 동삼동 등 전국 전시관에서 패총을 구경할 수 있어요.
패총은 심지어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어요.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에서 수렵 채집 생활을 하는 안바라족도 그 중 하나예요. 안바라족은 30명 정도가 마을을 만들어 생활하는데, 여성과 아이, 노인이 함께 바닷가에서 조개를 채취한다고 해요. 2시간만 일하면 하루 먹을 양의 조개를 얻을 수 있어요. 이렇게 안바라족 마을이 1년 동안 채취하는 조개류의 무게는 약 7톤이에요. 그중 버려지는 조개껍데기의 무게는 약 5톤이고요. 안바라족은 마을 주변에 매년 평균 5톤의 패총을 만들고 있는 것이죠.
▲서해안에서 패총이 만들어지는 상상도. 조개껍데기를 포함하여, 옛사람들의 다양한 쓰레기가 차례로 쌓인다. 지층 밑에는 숯처럼 옛사람들이 불을 피운 흔적도 남아있다.
옛날 사람들은 왜 조개를 먹었을까?
물론 고고학자들은 패총의 주인이 조개만 먹고 살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해요. 안바라족의 생활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옛사람들의 식생활에 대해서도 추측할 수 있지요. 매년 5톤의 패총을 만들다니 안바라족이 유별난 조개 미식가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도 조개만 먹고 살지는 않아요. 조개만으로 모든 영양소를 충당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조개의 양이 모두가 배불리 먹을 만큼 많지도 않고요. 조개는 안바라족 식사 메뉴의 일부로, 실제로는 물고기와 어린 캥거루도 잡아먹는다고 해요.
그렇다면 안바라족에게 왜 조개는 인기 있는 메뉴일까요? 우선 조개는 사람들이 편하게 얻을 수 있어 ‘가성비가 좋은’ 식량이에요. 어린이, 노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쉽고 안전하게 조개를 딸 수 있어요. 안바라족 사람들은 조개 채집을 마트에 들러 카트에 먹거리를 담는 것처럼 편리하게 생각한다고 해요.
또한, 조개는 1년 내내 언제든 구할 수 있는 식량이에요. 옛사람들에게도 조개는 야생의 다른 먹거리가 줄어드는 계절인 겨울과 봄 사이에 특히 중요한 식량이었을 거예요.
고고학자들이 패총으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옛사람들의 식습관뿐만이 아니에요. 고고학자들은 고대인의 쓰레기장인 패총에서 과거의 환경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증거를 발견한답니다. 바로, ‘규조류’와 ‘미소권패류’를 이용해서 말이죠.
패총을 보고 옛날의 환경을 알 수 있다?
패총이 고대인이 만든 야외의 쓰레기장이다 보니, 인간의 생활과는 관련되지 않은 흔적도 발견돼요. 그것이 바로 규조류와 미소권패류예요. 먼저 규조류는 물속에 서식하는 아주 작은 생물인데, 민물, 바닷물, 그 경계에 사는 종이 다 달라요. 만약 패총에서 바다에 사는 규조류를 찾았다면, 이곳이 고대에는 바다였다고 추측할 수 있죠.
미소권패류는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조개예요. 크기가 겨우 몇mm라서 사람들이 채집하진 않았고, 아마도 채집한 조개에 묻어 있거나 버려진 조개더미 사이에 쌓인 흙 속에서 자랐을 거예요. 이 작은 조개는 해조류가 자라는 바다, 모래펄, 자갈밭, 낙엽 밑 등 종마다 다른 서식지에 살지요. 따라서 패총 사이에서 발견된 미소권패류를 보면, 과거 패총 주변의 환경을 짐작할 수 있어요.
과거 환경은 물론, 당시 사람들이 바닷가에서 했던 활동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패총. 당시에는 쓰레기장일 뿐이었을지 몰라도, 지금 고고학자들에게는 과거의 환경과 옛사람들의 식생활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박물관이랍니다.
필자소개
고은별(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서 고고학을 공부했다. 시흥 오이도 유적, 구리 아차산 4보루 유적, 연천 무등리 유적 등 중부 지역의 고고학 유적 발굴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