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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캘리포니아 동부에 사는 ‘브리슬콘 소나무’는 가장 오래 사는 생명체로, 4850살 먹은 나무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런 나무의 나이테로 몇 천 년 전의 기후를 알 수 있어 고고학 연구에 도움이 된다. 위키피디아/Rick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에는 백제 시대의 절인 왕흥사가 있어요. ‘있었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군요. 지금은 절의 터만 남아있거든요.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건물의 주춧돌만 보이는 상황. 고고학자는 왕흥사가 언제 세워졌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유적과 유물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파악하는 일은 고고학자들에게 매우 중요해요. 어떤 물건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고고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다행히, 왕흥사지 유적의 경우에는 일이 쉽게 풀렸어요. 2007년, 왕흥사지의 목탑이 있던 자리를 발굴하던 고고학자들이 청동으로 만들어진 사리기* 를 발견했거든요. 사리함의 표면에 새겨진 한자를 해석하니 ‘정유년(577년) 2월 15일 백제왕 창이 죽은 왕자를 위하여 절을 세웠다’라는 내용이었어요. 고고학자들은 이 기록으로 왕흥사가 577년, 백제의 창왕이 죽은 왕자를 위해 지은 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백제 시대 절 왕흥사지(충남 부여)에서 청동 사리기가 발견됐다. 사리함 표면에 적힌 한자를 해석해 왕흥사가 지어진 연도를 알게 됐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처럼 모든 유물에 만들어진 연대가 적혀있다면 좋겠지만, 이런 행운은 아주 드물어요. 보통 고고학자들은 여러 방법을 써서 유물의 연대를 알아내요. 예를 들어, 고고학자들은 나무의 나이테로 유물의 연대를 측정할 수 있어요. 나이테는 나무를 자르면 나타나는 동심원 모양의 둥근 고리예요. 여름에는 나무의 생장조직에서 세포분열이 활발하게 일어나 빠르게 성장해요. 이때 만들어진 조직은 색이 연하고 두껍지요. 반면 천천히 자라는 겨울에는 조직의 색이 짙어요. 이렇게 옅은 색과 짙은 색의 조직이 1년에 하나씩 생기면서 나이테가 만들어지죠. 같은 지역에서 자라는 같은 종의 나무들의 나이테 기록을 모아서 나무로 만들어진 유물이나 유적에서 출토된 나무의 나이테와 비교하면, 유물의 연대를 추측할 수 있는 거예요.

 

연대 측정의 끝판왕,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

▲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인 자이언트 세쿼이아의 나이테로 연대를 측정하는 과학자들. Laboratory of Tree-Ring Research, The University of Arizona

 

유물의 연대를 알아내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이에요. 1949년 미국 시카고대학교의 화학과 교수였던 윌라드 리비가 개발했지요. 이 업적으로 그는 1960년 노벨화학상을 받았어요.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의 원리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에는 질량이 살짝 다른 두 종류의 탄소, 12C와 14C가 이산화탄소(CO2) 분자에 들어있어요. 매우 안정적인 12C와는 달리, 14C는 질소(N)가 우주에서 쏟아지는 입자와 방사선을 맞고 만들어진 불안정한 방사성원소예요. 일정한 비율로 방사성 붕괴를 일으키고 다시 질소가 되어버리죠. 대기 중에는 14C가 새로 만들어지는 양과 붕괴하고 질소로 돌아가는 양이 일정하게 유지돼요. 14C의 양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식물과 식물을 먹고 사는 동물에서도 일정하게 나타나죠.


그런데 생물이 죽고 땅에 파묻히면, 14C의 흡수가 중단돼요. 즉, 시간이 지날수록 생물의 조직 속에 들어있는 14C는 질소로 붕괴되면서 더 줄어들겠죠. 이 줄어든 비율을 측정하면 그 생물이 죽은 시점을 계산할 수 있는 거예요. 이 방법이 개발된 이후로 고고학자들은 고고학 유적에서 발견되는 숯, 나무, 씨앗이나 동물의 뼈에 연대 측정을 시도하여 유적의 연대를 알 수 있게 되었죠.


이런 편리한 측정법이 개발되었으니 이제 모든 유물의 연대를 쉽게 알 수 있게 된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아요. 우선,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으로 측정할 수 있는 연대에는 한계가 있어요. 14C의 반감기는 5730년정도로 짧아 5만 년이 넘는 유물에서는 방사성탄소가 거의 사라져요. 그래서 이 방법으로는 대략 400년 전부터 5만 년 전 사이의 유물이나 유적의 연대만 알 수 있지요.


그러면 최근인 400년 전 이후의 연대를 측정하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산업 혁명으로 인간이 화석 연료를 대량으로 사용하면서, 대기 중 14C의 농도가 달라졌기 때문이에요. 일정하다고 생각한 방사성탄소의 농도가 변한다면 연대측정법을 쓸 수 없죠. 그래서 실제로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을 포함하여, 나이테 연대측정법 등 다양한 연대측정법을 동시에 사용하여 정확한 연대를 알아낸답니다.    

 

●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의 원리

방사성탄소의 반감기를 사용하여 연대를 측정하는 방법이다. 더 오래된 유물이나 화석의
경우에는 반감기가 더 긴 다른 방사성 원소를 연대 측정에 사용한다.

 

 

필자소개

고은별(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서 고고학을 공부했다. 시흥 오이도 유적, 구리 아차산 4보루 유적, 연천 무등리 유적 등 중부 지역의 고고학 유적 발굴에 참여했다.

 

 

2019년 10호 어린이과학동아 정보

  • 고은별(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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