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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4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의 문화공간 ‘쉼표’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어요. 군데군데 까지고 색이 바랜 여행 가방 하나를 두고서 말이죠.
“튼튼해 보이니 베이스 기타를 하나 더 만들까?” 
“크기가 너무 커. 멜로디언을 안에 넣는 건 어때.” 
“울림이 괜찮은데? 드럼을 보수해 보자.” 
이게 다 무슨 얘기일까요? 재활용 밴드 지지밴드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폐품이 소리를 얻기까지
가방 하나를 두고 펼쳐진 토론은 10분 여 동안 이어졌지만 끝내 결론이 나지 않았어요.
“직업병이에요. 지금 있는 악기들도 이런 토론과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탄생했답니다. 어떤 팀원은 쓸 만한 재료를 찾기 위해 매주 고물상을 들르고, 대부분이 길거리를 다닐 땐 악기 재료를 찾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다녀요. 그러다 오늘처럼 쓸 만한 악기를 발견하면 토론이 펼쳐지는 거예요.”
지지밴드는 ‘지구를 지키는 재활용 밴드’의 줄임말로 폐품을 활용해 악기를 만들고 연주하는 팀이에요. 보컬, 키보드, 드럼, 기타, 베이스 등 6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모두 음악을 전공했거나, 지금도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지요. 팀의 리더인 장성희 씨가 처음 밴드가 만들어진 과정을 설명했어요.
지지밴드는 2013년 경기도 환경예술보급사업의 지원금을 받아 시작한 프로젝트 그룹이에요. 보컬인 저와 정은진 씨를 중심으로 이 프로젝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아 팀을 결성했지요. 음악가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품앗이처럼 각자의 역량을 모아 밴드를 이어가고 있답니다.”
한 예로 베이스를 연주하는 이진수 씨는 베이스 기타 제작자예요. 제작 기술을 십분 활용해 폐품으로 단단하고 정교한 베이스 기타를 만들었지요. 또 드럼을 맡고 있는 정중진 씨는 드럼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공연 날짜가 다가오면 이곳이 지지밴드의 전용 합주실로 바뀌지요. 
지지밴드는 이날 실제 공연에 사용하는 악기 세 대를 보여 줬어요. 여행 가방으로 만든 베이스 기타와 드럼, 기름통으로 만든 기타였지요.
“폐품으로 만든 악기라는 핑계로 어설픈 소리를 내고 싶진 않았어요. 지금의 악기들은 실제 연주자들도 놀랄 정도로 멋진 소리를 낸답니다.” 

Q 처음 악기를 만들었을 땐 시행착오도 많았겠어요.
처음엔 어떤 소재로 만들어야 하는지도 감이 잡히지 않아 무작정 길거리에서 보이는 폐품들을 주워왔어요. 자전거 바퀴부터, 생수통, 각목까지 악기 재료도 다양했지요. 그만큼 시행착오도 많았답니다. 해외 사이트를 주로 참고했는데, 똑같이 만들어도 제대로 소리가 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어요. 또 이음새가 단단하게 고정되지 않아 오래가지 못하는 악기도 많았지요. 각목을 이어 붙여 만든 기타로 공연하다 줄이 계속 풀린 적도 있어요. 이음새가 자꾸 떨어져 나가 줄이 팽팽하게 유지되지 못한 거예요. 그래서 노래 중간 중간 몰래 줄을 조이며 연주해야 했답니다. 
 
 Q 현재 공연에 쓰는 악기를 소개해 주세요.
기타, 베이스, 드럼이 재활용 악기예요. 베이스 기타는 단단한 서류 가방에 줄과 전기장치를 연결하고, 베이스 드럼은 여행 가방으로 대체했지요. 울림이 좋아 쿵쿵 거리는 소리가 실제 베이스 드럼과 비슷하답니다. 기타는 업사이클링 악기를 파는 해외 사이트에서 구매했어요. 똑같이 만들어 보려 했지만, 복잡하고 내구성도 훨씬 떨어질 것 같아 사오기로 결정했지요.

 Q 지금의 악기에서 아쉬운 점은 없나요?
생김새가 좀 다르다보니 불편할 때가 있죠. 베이스 기타는 무거워 오래 연주하면 어깨가 아프고, 기타는 크기가 작아 팔 각도를 좀 달리해야 하지요.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건반이 재활용 악기가 아니라는 거예요. 실로폰으로 대체해 보려 했지만, 손가락으로 최대 열 개의 음을 누를 수 있는 건반과 달리 실로폰은 양손에 든 채로 고작 두 개의 음을 내는 게 최대라 연주에 한계가 있었지요. 건반을 어떻게 재활용 악기로 대체할지 계속 고민 중이랍니다. 
 Q  재활용 악기의 소리는 어떤가요?
사실 처음 만든 악기들에 비하면 아주 훌륭해요. 단단하고 소리도 제법이지요. 다른 연주자들도 깜짝 놀랄 정도로 시중의 악기만큼 소리를 낸답니다. 
처음부터 소리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기존 악기엔 없는 새로운 소리의 재활용 악기를 만들어 쓰는 업사이클링 밴드도 있지만, 저희는 기존 악기와 똑같은 소리를 내고 싶었죠. 팀원이 다들 음악을 전공하기도 했고, 재활용 밴드도 결국 밴드잖아요.

 Q 노래는 직접 만드시나요?
키보드 양지해 씨와 보컬 정은진 씨가 직접 곡을 만들어요. 흔히 재활용 밴드는 환경에 관한 노래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저희는 일상생활을 소재로 노래해요. 공연할 땐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곡도 종종 연주해요. 보통 저희 공연은 어린이들의 호응이 가장 커요. 그래서 터닝메카드나 아기 상어 등 어린 친구들을 위한 곡도 꼭 준비하지요. 터닝메카드는 전주를 시작하자마자 멀리서 아이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온 적도 있지요.
 Q 지지밴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무엇인가요?
지지밴드를 만들 당시 지구온난화로 인해 보금자리를 잃은 북극곰이 화제가 되며 사람들이 환경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저희도 딱 그만큼의 관심으로 이 밴드를 시작했어요. 사실 지금도 환경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많지 않아요. 한 가지 약속한 것은 공연할 때 플라스틱 물병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이지요. 조금 시시한가요? 
저희는 재미있게 활동하는 것이 곧 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친구들도 환경을 지키겠다는 막중한 의무감이나 책임감에서 벗어나 재미있는 일을 고민하면 좋겠어요. 재활용이든 환경보호든 재미있는 일이 가장 중요해요. 그래야 더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테니까요.

“이 가방 차에 실어 줘!”
인터뷰가 끝나고 베이스 이진수 씨는 좋은 재료는 일단 챙겨야 한다면서 가방을 차에 실었어요. 지지밴드는 낡은 여행 가방으로 또 어떤 소리를 내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