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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발랄 생각실험실] 빨간 장미가 있다면, 모든 까마귀는 검은색일까?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엉뚱발랄 생각실험실을 찾아준 여러분, 환영합니다. 그런데 대체 장미랑 까마귀가 무슨 상관이냐고요? 자, 들어 보세요. 

 

저는 모든 까마귀가 검은색인지 알아보기 위해 우선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가설을 세웠어요. 제가 본 까마귀는 검은색이었거든요. 이 경험은 제 가설이 참일 가능성을 높여주는 일이었죠. 이럴 때 과학자들은 “검은 까마귀 사례는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가설을 ‘입증’한다”고 표현한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길을 걷다 빨간 장미 한 송이를 보았어요. 여기서 궁금증이 생겼죠. 찾아보니 과학자들은 빨간 장미를 본 경험처럼 한 가설이 참일 가능성을 높여주지도, 낮추지도 않는 경험을 ‘무관 사례’라고 부르더군요. 그렇다면 정말 장미를 본 경험은 ‘모든 까마귀가 검다’는 제 가설과 무관할까요? 

 

가설 1  빨간 장미는 ‘모든 까마귀는 검다’와 무관하다!

 

검은 까마귀 사례는 당연히 ‘모든 까마귀는 검다’가 참일 가능성을 높여줘요. 반면 흰 까마귀를 본 사례는 ‘모든 까마귀는 검다’가 거짓이라는 것을 말해주지요. 이런 사례를 ‘반증 사례’라고 해요. 

 

한편, 검은 지갑, 검은 가방, 검은 옷처럼 검은색이지만 까마귀가 아닌 사례들은 ‘모든 까마귀는 검다’가 참이거나 거짓일 가능성을 높여주지 않아요. 이런 사례는 ‘모든 까마귀는 검다’와 무관해요. 게다가 빨간 장미처럼 검지도 않고 까마귀도 아닌 사례는 ‘모든 까마귀는 검다’와 당연히 무관하지요. 우리가 흰 종이, 노란 병아리, 초록 나무 등을 아무리 많이 본다고 해도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가설을 입증하는데 전혀 영향을 미치진 않으니까 말이에요.  

 

이런 일은 실제 과학자들의 연구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만약 한 우주과학자가 ‘모든 은하계 안에는 블랙홀이 들어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면, 블랙홀이 들어 있는 은하계를 발견할 때마다 그 사례는 가설을 입증해주겠죠. 하지만 블랙홀이 들어 있지 않은 은하계를 하나 발견하면 곧바로 그 가설이 틀렸다는 것이 드러나요. 이때 그 우주과학자가 ‘은하계가 아닌 것’ 안에 ‘블랙홀 아닌 것’이 들어 있는 걸 보았다고 해 봐요. 예를 들어 복숭아 안에 있는 복숭아 씨처럼요. 그는 복숭아 안에 있는 복숭아 씨를 보고 ‘모든 은하계 안에는 블랙홀이 들어 있다’를 더 믿거나 덜 믿게 될까요? 당연히 아니겠죠. 빨간 장미 사례는 ‘모든 까마귀는 검다’와 무관해요.

 

가설 2  빨간 장미는 ‘모든 까마귀는 검다’를 입증한다!

 

 ‘S는 P이다’라는 문장에서 S와 P를 모두 부정하여 순서를 바꾼 문장 ‘P가 아닌 것은 S가 아니다’를 논리학에선 ‘대우’라고 해요. 원래 문장이 참이면, 대우도 참이지요. 즉, 두 문장은 논리적으로 같다고 봐요. 

 

까마귀 얘기로 돌아가 볼까요? ‘모든 까마귀는 검다’의 대우는 ‘검지 않은 것은 까마귀가 아니다’가 돼요. 따라서 ‘검지 않은 것은 까마귀가 아니다’의 입증 사례를 찾는다면,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사례를 찾은 것과 같죠. 이때 빨간 장미는 ‘검지 않은 것은 까마귀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입증하는 사례가 돼요. 따라서 빨간 장미는 ‘모든 까마귀는 검다’와 무관하지 않은 거예요. 

 

다른 예로, ‘모든 포유동물은 척추동물이다’란 가설을 생각해 봐요. 이때 ‘지렁이는 포유동물이 아니다’란 사실이 가설을 입증할 수 있을까요? 이 경우, 빨간 장미와 비슷해요. 가설의 대우는 ‘척추동물이 아닌 것은 포유동물이 아니다’인데, 이때 ‘척추동물이 아닌 지렁이는 포유동물이 아니다’가 가설을 입증한답니다.

 

▶이 질문이 왜 중요할까? 

 

이 이야기는 1940년대 미국의 과학철학자 칼 구스타프 헴펠이 ‘입증’의 정확한 뜻을 이해하려고 만든 ‘까마귀 역설’ 문제예요. 그는 결국 빨간 장미가 ‘모든 까마귀는 검다’를 입증한다고 결론을 내렸답니다.

 

한편, 이처럼 입증이 갖고 있는 모호함 때문에 과학을 반증 중심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운동도 있었어요. 검지 않은 까마귀가 ‘모든 까마귀는 검다’를 반증하고 또 ‘검지 않은 것은 까마귀가 아니다’를 반증하는 것처럼 분명하니까요. 이때문에 과학철학자인 칼 포퍼는 1930년대, ‘반증주의’라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지요. 여러분은 과학을 어떻게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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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4호 어린이과학동아 정보

  • 김명석 국민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 기타

    [편집] 신수빈 기자 기자
  • 기타

    [일러스트] 고고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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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 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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