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벤저스>; 시리즈의 ‘배너 박사’는 평소엔 온화하다가 분노가 극에 달하면 초록색 괴물 ‘헐크’로 변합니다. 지난 화에 이어서 소개할 ‘강한 핵력’도 마치 헐크 같아요. 핵분열이나 핵융합 반응으로 때로는 무서운 원자 폭탄이었다가 때로는 지구의 생명을 기르는 햇볕이 되거든요. 강한 핵력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해요!
2015년부터 3년간 필자는 입자 충돌 실험인 ‘피닉스’ 실험을 위해 미국 뉴멕시코주의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에서 일했어요. 외딴 곳에 홀로 우뚝 선 이 연구소는 현재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는 미국 최대 규모의 국립 연구소지만, 처음엔 ‘맨해튼 프로젝트’란 비밀 연구를 위해 세워졌어요.
맨해튼 프로젝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시행된 원자 폭탄 개발 연구였어요. 독일군이 원자 폭탄을 개발하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던 1940년대, 유럽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핵물리학자 레오 실라르드와 엔리코 페르미는 원자 폭탄이 거대한 에너지를 방출해 위험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미국 정부에 전했어요. 실라르드는 미국이 원자 폭탄을 위협용으로만 개발하길 원했지만, 미국 정부는 원자 폭탄 개발에 성공해 1945년 8월 일본에 떨어뜨리고 말았지요.
이 원자 폭탄의 실험은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에서 차로 4시간 정도 떨어진 사막에서 1945년 7월에 처음 이뤄졌어요. 이곳의 이름은 실험의 암호명 ‘트리니티’에서 이름을 따온 ‘트리니티 사이트’지요. 트리니티 사이트는 매년 4월과 10월 첫 번째 토요일에만 방문이 허락돼요. 필자도 핵물리학 연구자로서 역사적인 장소를 방문하고 싶어 1년에 딱 두 번만 주어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찾아갔어요.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트리니타이트’라고 불리는 푸른 조약돌이었어요. 실험에서 발생한 열 때문에 사막의 모래들이 녹아 만들어진 거예요. 푸른 조약돌과 산산조각 난 실험 장비들을 보니 폭탄의 위력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됐어요. 핵에너지를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핵분열 에너지는 ‘강한 핵력’에서 나온다?
원자 폭탄의 에너지는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그 근원은 강한 핵력과 관련이 있어요. ‘강한 핵력’은 기본입자인 쿼크를 묶어 양성자와 중성자를 만들거나, 양성자와 중성자를 묶어 핵을 만드는 힘이에요.
한 원자를 이루는 전자와 핵 중, 전자는 가볍고 핵은 무거워요. 무거운 핵은 쿼크들로 이뤄져 있지만, 핵의 질량은 쿼크의 질량을 더한 것보다 훨씬 커요. 지난 화를 꼼꼼히 읽었다면 쿼크의 질량이 0에 가깝다는 사실을 기억할 거예요. 질량이 거의 없는 쿼크 3개를 모아봐야 양성자나 중성자 질량의 턱 끝에도 못 미치지요.
핵의 질량을 만드는 건 강한 핵력이에요. 힘이 어떻게 질량을 만드냐고요? 이를 이해하려면 ‘결합에너지’와 ‘E=mc2’라는 공식을 알아야 해요. ‘결합에너지’는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끼리의 결합을 끊을 때 필요한 에너지예요. 예를 들어, 얼음을 이루는 물 입자 사이의 결합을 끊으면 수증기가 돼요. 이때 필요한 에너지가 ‘결합에너지’지요. 마찬가지로 쿼크들이 결합해 양성자나 중성자를 만들 때, 양성자와 중성자들이 결합해 핵을 만들 때 결합에너지와 비슷한 에너지를 내뿜거나 흡수해요.
에너지와 질량은 서로 바뀔 수 있어요. 독일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1905년 ‘특수 상대성이론’을 발표하면서 에너지가 질량으로, 질량이 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는 공식인 E=mc2도 밝혔어요. 여기서 E는 에너지, m은 질량, c는 빛의 속도를 뜻해요. 한 입자가 1g만큼의 질량을 지니고 있다면, 여기에 빛의 속도인 30만km/s를 두 번이나 곱한 만큼의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내뿜을 수 있다는 뜻이에요. 반대로 이 만큼의 에너지가 1g의 질량으로 바뀔 수도 있지요. 핵 내부의 결합에너지는 강한 핵력이 만들어요. 전자기력이 전기에너지를 만드는 것처럼요. “강한 핵력이 핵의 질량을 만든다”는 말의 뜻을 알겠지요?
원자 폭탄, 원자력 발전소, 태양의 공통점
핵이 분열하거나 융합할 때 에너지를 흡수하는지, 분출하는지는 핵의 특성에 따라 달라요. 우라늄과 플루토늄처럼 무거운 핵은 가벼운 핵으로 분열할 때 에너지를 방출해요. 이 과정을 ‘핵분열’이라고 해요. 우라늄핵이 분열하면 총 질량이 줄어드는데, 아인슈타인의 공식에 따라 줄어든 질량에 빛의 속도를 두 번 곱한 만큼의 에너지를 내뿜어요.
원자 폭탄은 핵분열을 이용했어요. 맨해튼 프로젝트의 계기가 됐던 실라르드와 페르미의 연구는 무거운 핵에 중성자를 충돌시키면 핵분열이 일어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문제는 핵분열 후 중성자가 새로 나와 다음 핵에 충돌하며 ‘연쇄반응’을 일으킨다는 점이었어요. 전체 핵의 질량이 조금만 줄어도 여기에 빛의 속도를 두 번 곱한 만큼의 에너지가 방출되는데, 연쇄반응까지 일어난다면 원자 폭탄의 위력이 상당할 거라 실라르드는 우려했던 거지요.
반대로 수소처럼 가벼운 핵은 헬륨핵처럼 안정한 핵으로 결합할 때 에너지를 방출해요. 이 과정을 ‘핵융합’이라고 하지요. 예를 들어 태양에서는 수소핵 네 개가 융합해 헬륨핵으로 만들어지는 반응이 끊임없이 일어나요. 이때 수소 원자 하나당 내뿜는 에너지는 매우 작지만, 반응의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아 이들 모두가 만드는 태양에너지는 1억 5천만km 떨어진 지구의 식물도 성장시킬 수 있을 정도로 크지요.
핵분열과 핵융합을 정밀하게 통제하면 원자력 발전소처럼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을 수도 있어요. 강한 핵력이 지닌 헐크의 두 얼굴 중 어떤 걸 선택할지는 우리의 몫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