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심 속 길가, 돌계단, 시멘트 길의 깨진 틈새를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개미가 씨앗을 물어 나를 정도로 작은 씨앗을 맺는 ‘개미자리’, 열매를 터트려 씨앗을 멀리 보내는 ‘괭이밥’이 보일 거예요. 논이나 도랑 같이 흙에 물을 품고 있는 습지에서는 물을 좋아하는 잡초가 자라요. 이처럼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많은 잡초들이 있지요.
우리가 묶어서 잡초라고 부르지만, 이 식물들도 당연히 이름을 가지고 있어요. 강아지의 꼬리 같은 ‘강아지풀’, 질겨서 ‘질경이’, 애기똥 같은 노란 즙이 나오는 ‘애기똥풀’, 꽃이 돌돌 말려 있어 ‘꽃마리’, 땅에 찰싹 붙어 있어 ‘땅빈대’…. 이렇게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풀들이 많답니다. 앞에서 말한 가을의 잡초들도 ‘쑥부쟁이’와 ‘꽃향유’라는 어엿한 이름을 갖고 있지요.
이런 풀들은 깊은 숲속에서는 보기 어려워요. 왜냐하면 다른 식물들이 많지 않은 곳을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사람이 집을 짓고, 논과 밭을 만들고, 길과 정원을 만들면 어김없이 들어와 자리를 잡지요.
말하자면 사람들이 만든 땅이 잡초의 집인 셈이에요. 사람들이 잡초가 사는 땅을 만들고, 잡초는 사람들 주변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요.



사실 잡초라는 말은 사람 입장에서 쓸모없는 식물을 묶어서 부르는 말이에요. 하지만 자연에서 쓸모없는 식물은 없어요. 잡초도 마찬가지지요. 잡초는 우리가 마시는 산소도 만들고 땅을 덮어 흙이 떠내려가는 것을 막아요. 열심히 영양분을 만들어 다른 생물들에게 주거나 흙에 주어서 땅을 비옥하게도 만들지요.
식물이 많지 않는 도시에서는 잡초가 특히 중요해요. 잡초가 없는 도시를 상상해 보세요. 풀들이 없으면 풀을 먹는 개미, 꿀벌, 노린재, 호랑나비도 없고 작은 곤충을 먹는 귀뚜라미, 밀잠자리, 무당벌레, 거미도 안 올 거예요. 또 그들을 먹는 참새, 곤줄박이, 직박구리, 까치도 볼 수 없을 거예요. 잡초가 살기 힘든 곳에서는 다른 생물들, 심지어 사람도 살기 힘들답니다.
잡초는 또 제철 먹거리와 약으로도 중요하게 쓰여요. 예를 들어 냉이나 쑥은 들판이나 길가에서 마구 자라나는 잡초지만, 식탁 위에 올라오면 누구나 좋아하는 향긋한 봄 먹거리가 된답니다. 그외에도 식용으로 쓰이는 잡초는 개갓냉이, 고들빼기, 꽃다지, 돌나물, 닭의장풀, 마디풀, 명아주, 민들레, 뽀리뱅이, 쇠무릎, 쇠비름, 씀바귀, 엉겅퀴, 지칭개, 질경이, 환삼덩굴, 황새냉이 등 많아요.
약이 귀했던 옛날에는 애기똥풀이 무릎이 아픈 어르신의 진통제로도 쓰였어요. 개똥쑥, 고들빼기, 광대나물, 괭이밥, 꽃다지, 꽃마리, 꿩의밥, 냉이, 돌나물, 명아주, 박주가리, 산딸기, 새모래덩굴, 여뀌, 이질풀, 지칭개, 차풀 등도 약으로 썼지요. 지금도 이들은 나물 등의 음식 재료로 쓰이고 있답니다.


정원을 가꾸다 보면 잡초들이 들어와서 자라요. 이들은 굳이 심지 않아도 잘 다듬어만 주면 일부러 심은 식물보다 더 잘 자란답니다. 심지 않았다고 힘들여 뽑아낼 필요가 없지요.
이런 잡초의 가치를 알아내고 알리기 위해, 국립수목원에서도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요. 지난 5~6월에는 전문가와 함께하는 잡초 탐사와 전시회를 열어 수목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잡초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
기도 했답니다.
국립수목원은 다양한 식물을 여기저기 옮겨 심어서 불안정하고 늘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기 때문에 잡초가 매우 좋아하는 환경이에요. 실제로 2015년 조사 결과, 국립수목원 전체에 무려 128분류군의 잡초가 자란다는 사실을 확인했답니다. 특히 향모, 좀씀바귀, 돌나물 등은 다른 식물 사이에 자연스레 어우러지며 정착했기 때문에 수목원의 아름다운 경관과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지요.
이번 가을에 국립수목원을 방문한다면, 길바닥과 화단에 눈을 돌려 보세요. 소복하게 꽃을 피워 올린 쑥부쟁이나 꽃향유뿐만 아니라 다양한 다년생 잡초들이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내년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