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나방과 박쥐의 끝없는 생존경쟁

동물행동학자가 들려주는 동물은 왜?


 
나비는 화려한 색과 무늬를 지니고 있어서 우리와 친숙한 반면, 나방의 몸색은 밋밋하고 칙칙해서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해요. 물론 옥색긴꼬리산누에나방처럼 아름다운 나방도 있지만, 대부분의 나방은 우리가 흔히 예쁘다고 느끼는 색과 무늬를 지니고 있지 않지요. 그런데 밋밋하고 칙칙한 색은 나방에게 매우 중요해요. 낮에 활동하는 시각포식자에 대한 방어수단이거든요.

위장과 정지로 낮 시각포식자를 방어하는 나방


대부분의 나방은 맛있는데다 독이 없기 때문에 포식자들에게 인기 있는 먹잇감이에요. 나방뿐만 아니라 나방의 유충도 많은 새들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지요. 그래서 나방은 야행성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낮에 활동하는 ‘주행성 시각포식자’들에게 쉽게 공격당해요. 이 때문에 밝은 낮에 시력이 좋은 새들을 피하기 위한 방어 전략이 필요하지요.

시각포식자에 대한 나방의 가장 중요한 방어책은 ‘위장’과 ‘정지’예요. 위장은 색과 무늬를 주변 환경과 비슷하게 해 몸을 숨기는 기술이에요. 색이 화려하고 뚜렷한 나비와 달리 나방은 갈색이나 회색, 밤색 등 칙칙하고 밋밋한 색 위주예요. 나무줄기와 같은 곳에 몸을 숨겨 위장하기 위해서지요. 이렇게 몸의 색을 이용해 포식자의 눈을 피하는 위장 전략은 많은 비용이나 노력이 들지 않아요. 따라서 나방뿐만 아니라 많은 동물들이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위장 전략을 사용하지요.

한편 정지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행동기술이에요. 시각포식자는 가만히 있는 먹잇감보다 움직이는 먹잇감을 훨씬 쉽게 알아채거든요. 새들은 나방의 모양을 보고 가만히 쉬고 있는 나방을 찾을 수도 있지만, 이 방법은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어요. 그래서 나방은 주행성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낮 동안 자신의 몸 색과 비슷한 장소에서 가만히 앉아 있어요. 이렇게 위장은 적절한 행동기술이 더해질 때 최대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답니다.

나방은 위장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이동하기도 해요.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강창구 박사는 자나방의 행동연구를 통해 나방의 새로운 행동을 발견했어요. 나방이 내려앉은 장소가 자신의 몸색과 비슷하지 않으면 다른 장소로 다시 이동하는 ‘자리 잡기 행동’을 한다는 거예요. 특히 위장 정도가 낮은 나방일수록 이런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지요. 이때는 눈을 통한 시각정보와 날개로 측정한 나무의 촉각 정보로 나무껍질의 3차원적인 구조를 파악하고, 나무와 가장 비슷하게 위장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내려앉아요.

이처럼 나방은 위장과 정지, 자리 잡기 행동으로 주행성 시각포식자를 따돌린답니다.

나방의 초음파 탐지와 회피행동

무사히 낮 시간을 보낸 나방은 해가 지면서 활동을 시작해요. 그럼 이번엔 밤에 활동하는 포식자인 박쥐를 피하기 위한 또 다른 방어 전략이 필요하지요. 박쥐는 초음파를 쏴서 되돌아오는 소리를 분석해 장애물이나 먹이를 탐지하는데, 이것을 ‘반향 위치 찾기’라고 해요. 이때 박쥐가 사용하는 소리 신호를 ‘초음파 소나’라고 부르지요. 박쥐는 초음파로 물체를 구별하는 것은 물론, 나방의 종까지 구별해 먹을 수 있는 먹이와 그렇지 않은 먹이를 판단할 수 있어요.

한편 이에 대응하기 위해 나방은 고막으로 박쥐의 초음파 소나를 탐지해요. 밤나방은 배의 첫 번째 마디에 고막이 있어요. 이 고막에는 박쥐의 초음파가 있는지 없는지 파악할 수 있는 말초신경 2개가 연결돼 있지요.

나방은 이 청각신경으로 초음파를 탐지하고 회피행동을 할 수 있어요. 만약 나방이 날아가다가 박쥐의 초음파를 듣게 되면 나방은 초음파 오는 방향으로부터 멀어지는 쪽으로 돌아서 비행하지요. 그러나 초음파가 아주 가깝게 들리면 나방은 더 신속하면서도 특이한 회피행동을 해요. 갑자기 땅으로 뚝 떨어지기도 하고, 소용돌이치며 떨어지거나 공중제비를 넘기도 해요. 비행 경로를 불규칙하게 만들어 박쥐의 추적을 따돌리려는 거예요.

일부 나방은 좀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박쥐의 초음파 소나에 대항해요. 불나방은 가슴에 있는 진동막을 이용해 초음파를 만들어 맞대응하지요. 불나방의 초음파 신호는 마우스를 ‘클릭’할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해요. 그래서 이 소리 신호를 ‘초음파 클릭’이라고 불러요.

나방의 초음파 클릭은 나방에 따라 사용하는 의미가 달라요. 첫 번째는 자신이 먹이로서 가치가 없음을 포식자에게 경고하는 거예요. 만약 박쥐가 독이 있는 불나방을 먹으면 쓴맛이 나고, 심할 경우 조직이 파괴되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요. 이렇게 몸에 품고 있는 독 때문에 먹이로서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리는 방식을 ‘음향 경계성’이라고 해요.

또 다른 방법은 박쥐의 초음파 소나를 ‘재밍’ 하여 나방을 탐지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거예요. 재밍은 군사용어로, 신호를 내보내 적의 통신을 방해하는 걸 뜻해요. 주로 독이 없는 나방들이 독이 있는 나방보다 화려한 신호를 내 박쥐의 초음파를 혼란시키고 박쥐의 공격에서 벗어나지요.
 

나방과 박쥐의 끝없는 생존 경쟁

박쥐가 밤하늘을 장악한 지난 6500만 년 동안 나방과 박쥐는 생존을 위해 공격과 방어무기를 지속적으로 개발해 왔어요. 박쥐는 초음파 소나를 개발해 날아다니는 나방을 추적해 잡아먹었고, 나방은 고막과 청각신경을 개발하여 박쥐의 초음파 소나를 탐지해 공격을 피할 수 있었어요.

이에 대응해 박쥐는 나방을 잘 잡을 수 있도록 초음파 소나를 더욱 더 개발하고 있답니다. 나방의 청각은 30~50kHz 주파수에서 가장 민감하고, 대부분의 박쥐가 이 주파수 영역의 초음파 소나를 이용해요. 그래서 일부 박쥐는 초음파 소나의 주파수를 30kHz보다 더 낮게 만들거나, 50kHz보다 훨씬 높게 만들어 이용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 나방은 박쥐의 초음파 소나를 잘 듣지 못하고, 박쥐는 이런 나방을 잡아먹을 수 있지요.

또 다른 방법은 박쥐의 초음파 소나의 세기를 아주 낮춰서 나방이 잘 듣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스텔스 박쥐’라고 불리는 ‘Barbastella barbastellus’ 박쥐의 초음파 소나의 세기는 보통 박쥐보다 10~100배 약해요. 나방이 박쥐를 탐지할 수 있는 거리를 매우 좁힌 거지요. 그래서 나방이 스텔스 박쥐의 초음파 소나를 들었을 때는 이미 박쥐가 나방 가까이에 접근해 있는 상태예요. 그럼 나방은 방어법을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박쥐에게 잡아먹히고 말지요.

나방과 박쥐의 경쟁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어요. 아직 우리가 모르는 박쥐의 공격법과 나방의 방어법이 있을 수 도 있지요. 나방과 박쥐는 지난 6500만 년 동안 밤하늘의 공중전을 벌였지만, 아직도 흥미진진한 경쟁을 하고 있답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5년 16호 어린이과학동아 정보

  • 장이권 교수
  • 진행

    이윤선 기자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환경학·환경공학
  • 화학·화학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