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603/C201512012_11.jpg)
비는‘ 신이 흘린 피’ 냄새를 풍긴다?
비가 내리기 직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직후까지 나는 흙냄새는 세계 어디서나 맡을 수 있어요. 19세기에 나온 오래된 광물책에도 비 냄새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을 만큼, 오랫동안 알려진 현상이지요. 하지만 왜 비 냄새가 나는지는 한참 동안 아무도 몰랐답니다. 1960년대에 들어선 후에야 비 냄새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이 시작됐지요.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603/C201512012_13.jpg)
1964년 호주연방과학원의 이자벨 베어와 리처드 토머스 연구원은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비 냄새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어요. 이논문에서 두 사람은 비 냄새에 ‘페트리코(Petrichor)’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그리스어로 바위를 뜻하는 ‘Petra’와, 신이 흘린 피를 뜻하는 ‘ichor’를 합친 말이에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신이 흘린 피가 바위 틈에 스며들어 생명의 근원이 되었다는 이야기에서 따온 거지요.
하필 왜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요? 그건 두 사람이 비 냄새가 바위 틈에 있는 ‘기름’에서 나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바위나 흙 사이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틈이 많이 있어요. 이 틈을 ‘공극’이라고 부르지요. 베어와 토머스는 식물 같은 유기물에서 만들어진 기름이 공극에 모여 있다가, 내리는 비에 섞여 공기 중으로 나온다고 설명했어요. 이 기름의 냄새가 바로 독특한 비 냄새를 만든다는 거죠. 지금도 흙이나 바위의 공극에 있는 유기물이 냄새의 근원이라는 설명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페트리코에 대한 다른 설명도 있었어요. 천둥번개가 내리치는 날에는 공기 중에 오존(O3)이 생기기 쉬워요. 번개가 산소(O2) 분자를 산소 원자 두 개로 나누고, 홀로 떠다니던 산소 원자가 다른 산소 분자와 결합해 오존을 만들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아무런 냄새가 없는 산소와 달리 오존은 독특한 냄새가 나요. 이 냄새가 바로 비 냄새를 만든다는 거지요. 하지만 보통 비 냄새는 마른 땅 위에 약한 비가 떨어지기 시작한 순간 가장 강해요. 따라서 오존으로 비 냄새를 설명한 가설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답니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603/C201512012_12.jpg)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603/C201512012_14.jpg)
지난 1월,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기계공학과의 켈런 뷰이 교수와 정영수박사는 비 냄새의 원인이 비가 내릴 때 만들어지는 ‘에어로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어요. 에어로졸은 기체 속에 떠 있는 작은 액체나 고체 알갱이를 말해요. 파도의 표면에 생긴 거품이 터질 때 나오는 작은 물방울이 대표적인 에어로졸이지요.
에어로졸은 크기가 마이크로미터(㎛, 1㎛=10-6m) 정도로 작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구름을 만들거나 자연 속의 미생물을 옮기며 환경에 영향을 끼쳐요. 또 사람 호흡기로 쉽게 흡수될 수 있기 때문에 질병 감염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연구팀은 자연 흙 16가지와 인공 흙 12가지에 물방울을 떨어뜨리고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했어요. 그 결과 물방울이 땅에 떨어질 때 물방울과 땅 표면 사이에 아주 작은 공기방울이 생겨나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이때 흙 공극에 있던 공기까지 더해져서 공기방울이 점점 커지게 된다는 것도 확인했지요. 공기방울은 납작해진 물방울 표면으로 올라와 터졌고, 이 때문에 표면의 물이 에어로졸로 변해 튀어 나갔답니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603/C201512012_2.jpg)
빗방울과 흙이 맞닿을 때, 흙 속의 유기물이나 미생물 같은 ‘냄새 성분’이 빗방울 속에 녹아들게 돼요. 에어로졸은 이 성분들을 품고 바람을 타고 이동하며 우리 코에 닿아요. 그 순간 비 냄새를 맡게 되는 거랍니다. 에어로졸은 먼 거리를 빠르게 이동하기 때문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비 냄새가 퍼지게 되지요. 당연히 흙에 있는 유기물의 종류나 주변 환경에 따라 사람들이 맡는 냄새는 조금씩 달라져요.
실험 결과, 비가 갓 내리기 시작하는 정도의 작은 물방울이 마른 땅 위에 부딪혔을 때 에어로졸이 가장 많이 생겼어요. 정영수 박사는 “오랫동안 바싹 말라 있던 땅에 소나기가 내리는 순간 비 냄새가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이유”라고 설명했어요.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603/C201512012_15.jpg)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603/C201512012_4.jpg)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603/C201512012_5.jpg)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603/C201512012_16.jpg)
지난 3월, 미국 하버드대학교와 샌디아 국립연구소 공동연구팀은 40억 년 전의 비에서 흙냄새가 아닌 철냄새가 가득 풍겼을 거라고 발표했어요. 낡은 철봉을 잡았을 때 나는 조금 비릿한 냄새 말이에요. 왜냐하면 이 시기의 비는 철이 가득한 ‘철비’였기 때문이에요.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603/C201512012_6.jpg)
지구는 약 45억 년 전에 만들어졌어요. 초기의 지구는 아주 뜨겁고 물렁물렁한 상태였어요. 지구에 계속 운석이 쏟아져 내리고, 땅 속에서 용암이 펑펑 터져 나오고 있었거든요. 특히 약41억 년 전부터 38억 년 전까지 운석이 집중적으로 쏟아져 내린 시기를 ‘후기 운석 대충돌기’라고 불러요. 철비는 바로 이 시기
에 내린 거예요.
연구팀은 철비가 생긴 과정을 알아내기 위해 샌디아 국립연구소에 있는 방사선 장치인 ‘Z머신’을 이용했어요. 이 장치로 490GPa(기가파스칼) 이상의 아주 높은 압력을 만들었지요. 그리고 압력을 조금씩 높여가자, 507GPa에서 철이 액체를 거치지 않고 바로 기체로 변하는 ‘*기화’ 현상이 일어났어요.
연구팀은 운석이 땅에 부딪히는 충격파가 이 정도의 높은 압력을 만들었고, 이 충격 때문에 용암 속에 있던 철이 기화해 대기 속에 섞였을 거라고 분석했어요. 대기와 만난 철은 다시 식으면서 액체로 변하고, 마치 비처럼 지구로 쏟아져 내렸고요. 이 철이 지각아래의 맨틀과 섞이며 내려앉아 현재의 핵을 만들었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에요.
*기화 : 물질이 열이나 압력 변화로 인해 기체로 변하는 현상.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603/C201512012_7.jpg)
빗방울이 전염병을 퍼트린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603/C201512012_8.jpg)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603/C201512012_9.jpg)
빗방울은 냄새 성분뿐만 아니라 미생물도 옮길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식물의 전염병은 빗방울을 통해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져 있지요. 하지만 미생물이 어떻게 다른 식물로 전파되는지 밝힌 연구는 없었어요. 그런데 지난 1월, 미국 MIT 환경공학과 리디어 부루이바 교수팀이 이 과정을 실험으로 확인해 영국왕립학회지에 발표했답니다.
연구팀은 블루베리, 딸기, 토마토, 감귤의 네 가지 실제 식물과 15가지 인공 식물을 이용했어요. 나란히 심은 식물들 중 한 그루의 잎에 색소를 섞은 물방울을 올려두고, 그 위에 마치 실제 비가 내리는 것처럼 다른 물방울을 떨어뜨렸지요. 이 과정을 초고속 카메라로 관찰한 결과, 식물 잎에 있던 색소 물방울은 새로 떨어진 물방울의 힘에 의해 공중으로 바로 날아갔어요. 잎을 쳐서 그 반동으로 물방울을 튕겨 오르게 하기도 했고요.
이렇게 날아간 물방울들은 다른 식물의 잎을 차례로 적시기 시작했어요. 색소 물방울들 중 큰 것은 50cm 정도 떨어진 바로 옆 식물의 잎으로 떨어졌지만, 밀리미터 크기의 작은 물방울들은 최대 10m 떨어진 식물들까지 날아갔답니다.
부루이바 교수는 “잎에 있던 미생물이 빗방울에 녹아들어 있다가, 다른 빗방울을 맞은 뒤 멀리까지 튕겨 나가면서 지역 내에 전염병을 전파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잎의 탄력성과 비가 내리는 속도를 조사하
면 식물 전염병이 어떻게 퍼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앞으로는 비에 대한 연구가 식물을 살리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요.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201603/C201512012_1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