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꿀벌의 새 집 찾기
봄이 되면 벌집 안은 북적대기 시작해요. 일벌들이 채집해 온 꿀과 꽃가루가 쌓이고 여왕벌이 낳은 알들이 늘어나지요. 여왕벌은 하루에 1500개의 알을 낳는데, 그만큼 새로운 일벌들이 태어나요. 그럼 늦은 봄이나 이른 여름이 되면 벌집은 벌 무리가 살기에 비좁은 공간이 되지요. 이때 여왕벌은 일벌들을 데리고 벌집을 떠난답니다. 새 여왕벌이 되는 딸이 집을 잘 꾸리도록 어미 여왕벌이 새로운 집으로 이사 가는 거예요.
하지만 어미 여왕벌이 새로운 집을 미리 알아보고 나온 것은 아니에요. 근처 나무의 나뭇가지에 임시로 공간을 만들고, 무리를 이루면서 야영을 하며 지내지요. 이 기간에는 어미 여왕벌 무리를 보호해 줄 집도, 저장해 놓은 식량도 없어요. 일벌들이 먹이를 채집해 오지도 않지요. 따라서 어미 여왕벌 무리는 이사할 새 집을 3일 안에 구해야 해요. 꿀벌에게 새로운 집 찾기는 무리 전체의 운명이 달려 있기 때문에 신중하면서도 빠르게 결정해야 하는 문제랍니다.
꿀벌은 집을 지을 때 건조하고 햇빛이 잘 드는 장소를 선택해요. 따뜻한 햇빛을 받아야 추운 겨울에도 추위를 이겨낼 수 있거든요. 꿀벌은 다른 곤충들과 달리 겨울잠을 자지 않고 벌집 안에서 활동하며 겨울을 보내기 때문이에요. 또 집 입구를 10~30cm³ 정도로 작게 만들어 찬바람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한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벌집이 커야 한다는 거예요. 벌집의 용량은 최소 12L 이상 되어야 하고, 일반적으로 40L는 되어야 하지요. 그 이유는 벌들이 추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집안에 꿀을 보관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꿀은 오랫동안 저장해도 상하지 않아요. 먹이를 구하기 힘든 한겨울에 꿀벌의 식량으로 안성맞춤이지요. 게다가 꿀벌은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날개 근육을 움직여서 열을 발생시켜요. 겨울 내내 꿀을 충분히 먹어 체력을 보충해야 하지요. 따라서 꿀을 충분히 저장해 두지 않으면 벌들은 얼어 죽을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꿀벌이 새 집을 찾을 때 따져 봐야 할 조건은 매우 많고 까다로워요. 또 꿀벌 무리들이 만족하는 장소를 찾고 선택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지요. 그래서 꿀벌들은 집단의 지혜를 모아 최상의 새 집을 찾아낸답니다.
새 집이 맘에 들면 8자 춤을!
꿀벌의 새 집 찾기는 ‘탐색-토론-이사’라는 세 단계를 거쳐요. 탐색은 새 집 후보지를 찾는 과정이고, 토론은 여러 후보지 중에서 가장 훌륭한 새 집을 결정하는 과정이지요. 꿀벌들이 토론을 통해 새 집을 결정하면 어미 여왕벌과 꿀벌 무리는 야영생활을 마치고 새 집으로 이사한답니다.
새 집 탐색은 나이가 많고 경험이 풍부한 정찰벌들이 해요. 어미 여왕벌 무리가 근처의 야영지로 옮기자마자 정찰벌들은 새 집을 찾으러 떠나지요. 야영지에서 멀지 않은 곳을 중심으로 후보 지점을 검색하고, 맘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수십 번 왔다갔다하면서 꼼꼼하게 조사해요. 집의 크기와 위치, 포식자로부터의 안전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보지요.
정찰벌들이 새 집 후보지를 찾는 동안, 무리가 머물고 있는 야영지에서는 새 집 후보지에 대한 토론이 동시에 진행돼요. 정찰벌들은 야영지로 돌아와 자신이 찾아온 새 집 후보지가 얼마나 좋은지 설명하고 다른 벌들을 설득하거든요. 정찰벌이 후보지를 설명하는 방법은 ‘8자 춤’이에요. 8자 춤은 숫자 8의 모양을 그리며 추는 춤으로, 후보지의 방향과 거리를 무리에게 알려 줄 수 있어요. 후보지가 좋을수록 8자 춤을 여러 번 반복하지요. 예를 들어 훌륭한 후보지를 찾은 정찰벌은 8자 춤을 90번 돌고, 평범한 후보지는 30번 돌아요. 만약 후보지가 적당하지 않다면 벌집으로 돌아와 아예 보고를 하지 않기도 해요.
정찰벌들이 추는 8자 춤의 반복횟수는 새 집 후보지에 대한 지지자 확보에 중요해요. 꿀벌 무리들은 정찰벌들의 설명을 듣고 난 뒤 맘에 드는 곳을 골라 지지하거든요. 마치 반장 후보의 연설을 듣고 내가 선택할 반장을 결정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8자 춤을 반복하는 횟수가 많을수록 훨씬 더 많은 정찰벌들이 후보지를 확인하고, 8자 춤을 추는 벌들이 늘어나면 지지하는 벌들의 수가 늘어나지요. 가장 많은 벌들의 지지를 받은 후보지가 새 집으로 최종 결정된답니다.
조용하지만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여왕벌
새 집 찾기는 꿀벌 무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여기에 여왕벌은 참여하지 않아요. 실제로 여왕벌은 새 집 찾기뿐만 아니라 꿀벌 무리의 대부분의 의사결정에 거의 참여하지 않지요. 그러나 여왕벌은 꿀벌 사회를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답니다. 바로 알을 낳아 종족을 번식하고 ‘여왕 페로몬(Queen Mandibular Pheromone)’을 분비하는 일이지요. 여왕 페로몬은 여왕벌의 시중을 드는 일벌들에게 전해지고 점차 벌집 내의 모든 일벌들에게 전달돼요. 여왕 페로몬은 일벌들의 난소가 발달하는 것을 막고, 새 여왕벌을 준비하는 것도 막지요. 그래서 여왕 페로몬이 꿀벌 무리 내에 충분히 존재하면 일벌들은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한답니다.
그러나 여왕벌이 분비하는 여왕 페로몬의 양이 줄어들면 꿀벌들은 제대로 일을 하지 않고 불안해 하기 시작해요. 일부 일벌은 알을 낳으려고 시도하고 실제로 낳기도 하지요. 일벌이 알을 낳으면 미수정란이기 때문에 수벌이 돼요. 따라서 여왕벌이 없다면 꿀벌 사회는 유지될 수 없어요.
여왕벌이 새 집 찾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때가 있어요. 꿀벌 무리의 의견이 양쪽으로 갈렸을 때이지요. 훌륭한 새 집 후보지가 두 군데이고, 지지하는 꿀벌의 수가 충분하면 두 후보지 모두 새 집으로 결정돼요. 그러면 꿀벌 무리들은 각각 자신이 지지한 새 집 후보로 이사를 시작하지요. 무리가 둘로 나뉘어 두 개의 새 집이 생기는 거예요.
하지만 꿀벌들은 얼마 못가 공중에서 우왕좌왕하다 멈춰 버려요. 새 집에 여왕벌이 없기 때문이에요. 꿀벌들은 이사를 할 때 여왕 페로몬의 냄새를 따라 가거든요. 이때 여왕벌은 두 개의 집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고 근처의 적당한 곳에 내려앉아요. 그러면 양쪽으로 날아가던 벌들도 여왕벌이 있는 장소로 모이지요. 새 집 후보지에 대한 탐색과 토론을 다시 시작하는 거예요. 여왕벌의 중재를 통해 벌들은 최종적으로 한 곳을 선택하게 되고, 결국 여왕벌 무리는 안전하게 새 집으로 이사를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