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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 곳에 제비가 몰리는 이유
<;흥부놀부전>;을 보면 어느 날 커다란 구렁이가 처마에 있는 제비 둥지를 공격해요. 이 모습을 본 흥부는 재빨리 구렁이를 쫓아 버리지요. 하지만 새끼 제비 한 마리가 둥지에서 떨어져 다치고 말아요. 흥부는 이 제비의 다리가 나을 때까지 정성껏 보살핀답니다. 그런데 왜 하필 흥부네 집 처마 밑에 있는 둥지의 주인이 제비였을까요?
사람들이 살기 좋아하는 곳은 풀이 많고 탁 트인 공간에 나무가 듬성듬성 자라는 곳이에요. 그리고 근처에 물이 있어야 하지요. 제비가 좋아하는 서식지 역시 풀과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근처에 물이 있으며 탁 트인 곳이에요. 사람들과 제비가 좋아하는 서식지가 정확히 같지요. 그래서 도시가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경지나 가축들이 풀을 뜯어 먹으며 살 수 있는 목초지 주변에 사람들과 제비가 함께 살았답니다. 제비와 달리 대부분의 새는 은밀한 장소나,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둥지를 지어요.
또한 제비는 사람들이 지어 놓은 구조물을 이용해 둥지를 짓는 새로 잘 알려져 있어요. 유럽에서는 주로 헛간에 둥지를 짓는다고 해서 제비를 ‘헛간 제비’라고도 불러요.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처마 밑에서 제비 둥지를 볼 수 있었어요. 그래서 흥부네 집 처마에 둥지를 튼 새도 제비가 된 거예요.
계속해서 <;흥부놀부전>; 이야기를 살펴보면, 따뜻한 나라에서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에 우리나라로 돌아온 제비는 흥부에게 박씨를 물어다 줘요. 이 박씨를 심자 주렁주렁 박이 열리고 그 안에서 쌀과 돈, 비단 같은 보물이 쏟아져 나오지요. 그런데 만약 흥부가 제비가 아닌 다른 새의 다리를 고쳐 주었다면 부자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그 새가 박씨를 먹어 버릴 확률이 높기 때문이지요.
곤충만 먹는 제비와 달리, 우리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새들은 먹이를 가리지 않고 먹는 잡식성이에요. 그러니 까치나 참새 같은 새들이 박씨를 발견했다면 떨어뜨리지 않고 맛있게 먹었을 거예요. 흥부가 다리를 고쳐 준 새가 제비였다는 사실이 정말 다행이죠?
제비, 알고 보면 사람을 이용한다고?
제비는 ‘ㅁ’ 자 또는 ‘ㄱ’ 자 모양의 전통가옥에 둥지틀기를 좋아해요. 마당 위로 뚫린 공간을 통해 둥지를 드나들지요. 그렇다고 사람이 사는 집에 쉽게 둥지를 지을 수는 없어요. 제비 부모는 새끼의 배설물을 둥지 밖으로 버리는데, 그러면 둥지 밑에 배설물이 쌓여서 벌레들이 꼬이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은 제비 둥지를 달가워하지 않고, 아예 둥지를 부숴버리는 일도 많답니다. 이렇게 둥지를 잃은 제비가 둥지를 다시 지으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요. 그만큼 번식이 늦어질 수 있지요.
그렇다면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폐가가 둥지를 짓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아닐까요? 그래서 2014년, 이화대학대학교 에코과학부 정다미 대학원생은 번식한 제비 둥지가 있는 농가에서 반경 200m 이내에 있는 폐가 38채를 조사했어요. 하지만 폐가에 둥지를 튼 제비는 단 한 마리도 없었어요. 제비는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보다 사람이 살고 있는 가옥에 둥지를 짓고 사는 것을 좋아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제비는 왜 사람 가까이에서 사는 걸까요? 그 이유는 안전하기 때문이에요.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서는 제비의 포식자인 매, 황조롱이, 올빼미, 갈매기가 사냥을 하지 않아요. 네발짐승인 족제비, 너구리, 다람쥐도 접근하기 어렵지요. 또 뱀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잡거나 내쫒아요. 제비는 포식자들을 따돌리고 안전한 곳에서 새끼를 기르기 위해 사람이 사는 집을 선택한 거예요.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제비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셈이지요.
이렇게 강력한 상위 포식자를 이용해 방어를 하는 예는 종종 있어요.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인 ‘흰동가리’가 대표적이에요. 흰동가리는 말미잘과 같이 살면서 보호를 받아요. 말미잘은 독을 가진 촉수를 이용해 자신보다 큰 물고기도 잡아먹을 수 있거든요. 말미잘의 독에 면역을 가지고 있는 흰동가리는 말미잘 촉수 사이에 숨어 포식자의 공격을 피한답니다.
사람에게 은혜 갚는 제비
주로 곤충을 잡아먹는 제비는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해충을 없애는 기특한 새예요. 사람과 제비와의 관계는 서로 이익을 보면서 함께 사는 ‘상리공생’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제비는 아니지만 곤충을 잡아먹는 조류의 중요성에 대한 실제 사례가 있어요. 1958년부터 1962년까지 중국의 마오쩌둥 주석은 파리, 모기, 쥐, 참새를 없애는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어요. 이 중 참새는 곡식의 낟알을 먹어서 농부의 노동의 결실을 앗아간다는 이유였지요. 많은 사람들은 항아리와 냄비를 치고, 북을 두들겨서 참새가 놀라 땅에 내려앉지 못하게 했어요. 또 참새의 둥지를 뒤져 알이나 새끼를 없애고, 공중에 나는 참새를 총으로 사냥하기도 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참새는 중국에서 거의 멸종 위기에 놓일 만큼 줄어들었어요.
하지만 쌀 생산량은 예상과 정반대로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참새가 사라지면서 농사에 해를 끼치는 곤충이 급격하게 늘어났기 때문이에요. 곡물 생산량이 줄어든 결과,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배고픔에 굶주려야 했답니다.
제비는 참새보다 농사에 기여하는 점이 커요. 참새는 주로 곡물을 먹지만, 제비는 특히 농작물에 많은 피해를 입히는 파리목, 메뚜기목, 딱정벌레목, 나비목의 곤충을 잘 잡아먹거든요. 둥지에서 새끼를 한창 기를 때는 제비 부모가 하루에 최대 400번 정도 먹이를 물어다 줘요. 제비는 곤충 여러 마리를 잡아서 이것을 으깨고 뭉쳐서 작은 덩어리를 만들어요. 이 덩어리를 한번 입 안에 넣고 둥지로 돌아오면, 곤충 여러 마리를 잡은 셈이지요. 그러므로 제비는 농사를 망치는 해충을 없애는 데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는 거예요.
전래동화 <;흥부놀부전>;은 착하게 사는 사람이 복을 받는다는 교훈을 담고 있어요. 또한 동시에 농사를 위해 집안에서 둥지를 트는 제비를 보호하라는 숨은 뜻이 담겨 있기도 하답니다.